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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콜 포비아

공모전에 관하여

by 임경주


공모전은 안 되는 것이 맞다. 되는 게 신기한 거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거절당하는 직업이다.

여기에서 공모전이란 글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 어떤 공모전이든 나보다 뛰어난 작가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에 내 뼈를 갈아 넣어 준비를 해도 안 되는 것이 맞다. 나보다 더 뛰어난 필력에 뼈에 피에 영혼까지 갈아 넣은 작가들이 상을 타간다. 이거 뭐가 이상해. 잘못되었어. 내 작품이 안 될 리가 없어.

웃기는 소리다. 주최 측의 농단 따위는 없다. 공정하다. 노력이 결과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 수명을 10년 갉아 먹는 일이다. 그래도 다행히 동상이라도 되면 다시 수명이 5년 연장되는데 결국엔 5년 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공모전 도전이다.

그래서 공모전에 도전하려면 목표로 하는 한 곳에 올인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 어떤 작품을 넣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써서 많이 준비해야 한다. 내가 그 공모전에 넣었던가? 헷갈릴 정도로 준비를 해야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지도 않고 막상 결과가 나와서 내 글이 수상목록에 없어도 훌훌 털어낼 수가 있다. 어떨 때는 수상작발표를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 때도 있다.

어떤 공모전이든 수상이 되면 칼 같이 연락이 온다. 그러니까 애태우지 말고 그 시간에 한글자라도 더 써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공모전 준비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나는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콜 포비아에 걸렸다. 전화기가 울리면 식은땀이 쫙 나고 손에 들고 있던 유리컵을 놓친 것처럼 아찔하다. 그래서 내 전화기는 울리는 법이 없다.

내가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

이런 내가 진짜 머저리 같고 병신 같고 한심스럽지만 또 쇼크가 올까봐 무서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렇게 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을 준비할 때였다. 이 공모전은 상금이 어마무시해서 난다긴다하는 작가들 다 모여들어 경쟁률이 굉장히 높고 순위다툼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공모전인데, 결과적으로는 우수상을 2년 연속 받아 종합 4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받았다. 국가지원공모전이라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와 함께 공동작업을 한 글쓰기 스승이 있다. 이 훌륭한 스승 짜식은 한 때 공모전으로 먹고 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공모전의 귀재다. 지금은 드라마 작가에 각색 작업이 계속 들어와 형 나 지금 죽을 맛이네요. 좀만 기다려 주세요. 라고 말하고는 몇 달째 연락이 없는.... 아주 부러운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가 이 스승 짜식 때문에 왜 콜 포비아에 걸렸는지를 말하는 아주 조금 슬픈 이야기이다.


공모전 마감을 일주일 앞두고 회사에 휴가도 내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제2의 직장 탐탐, 스타벅, 홀? 뭐지 아무튼 커피숍 세 바퀴를 돌아 저녁 8시쯤에 글이 완성되었다. 아 이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자신 있게 이 짜식한테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운전을 해 집으로 오고 있는데 이 짜식 전화가 오네.

난 그 때 이 짜식 반응이 와! 형! 난 형이 해낼 줄 알았어! 이런 상상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형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러는 거다.

왜?

지금 이거 이대로 응모한다고?

어. 문제없을 텐데?

아 미치겠네. 형은 그동안 내가 말한 거를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은 거야?

이러면서 이 캐릭터는 여기에서 왜 이런 말을 하고 있고 이 캐릭터는 도대체 왜 존재해? 난 도대체 모르겠어. 형이 썼으니까 형이 대답을 해봐. 뭔가 있으니까 넣었을 거 아냐. 이러면서 전화기로 난리가 나는데....

이제 와서 가만 생각해보면 왜 대꾸를 못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무튼 그 때 난 차를 길가에 세우고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오바이트를 했고 앞이 노랗게 보여 도로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지나가는 차들 빵빵 거리고 나는 항문 괄약근이 저절로 풀려 큰 게 쏟아져 나올 것만 같고 일어설 힘은커녕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힘도 없었다.

그 상태가 3시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3시간이 조금 넘어가니까 조금 진정이 되었는데 난 여전히 일어서지 못하고 차들이 나를 조심히 피해가는 그 도로에서 펑펑 울었고 때려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 솔직히 연봉 높다. 근데 내가 왜 지금 이러고 있는지. 도대체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정신이 슬슬 돌아오니까 또 눈물이 나오는데 너무 외로웠다.

그 뒤로 전화기가 울리면 움찔하고 저절로 식은땀이 쏟아져 나온다. 저혈당 증세처럼 온몸의 힘이 쑥 빠지면 그 때의 그 어마 무시한 쇼크가 또 찾아올까봐 무서워 일단 가만히 숨을 죽인다.

제발 지나가기를... 쇼크로 이어지면 안 돼.... 이러면서.


그래도 오늘 또 글을 쓴다.

글을 쓸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싫고 외모에도 관심이 없다. 뭐 워낙 거시기해서. 가끔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 죽일 놈의 스승 짜식이다. 그 때 이야기 하면 자기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상 받은 거라고 그런다. 난 이제 머리는 하얗게 쇄였고 동네 미용실 가기도 귀찮고 염색할 돈 있으면 차라리 소주나 사먹을 생각으로 산다.

생긴 대로 살다가 갈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글을 위해서라면 전화도 받을 수 있고 자료조사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기꺼이 움직인다. 난 작가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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