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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집이 죽어 간다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아이

by 임경주



어렸을 때 가장 싫은 것 중에 하나가 성묘였다.

남도의 수많은 섬 중 하나가 내 본적이고 외워도 외워도 헷갈리는 선산의 묘는 굴채에서 올라오는 말린 멸치 짠내와 함께 얼굴에 달라붙는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거미줄만 기억하게 한다. 그 거미줄은 바닷바람이 보내오는 것인데 선창가 배 떠나는 호루라기 소리가 세 번 들려오면 이 지긋지긋한 섬을 어떻게 탈출해야 하나 그 고민만 했던 것 같다. 당시 가구수가 50 가구였고 지금은 더 줄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섬이다.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면 감옥에 갇히는 기분이었고 산을 따라 성묘에 나서면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묘에 가까워질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버지가 누구 묘냐고 묻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들려오는 소리는 혀 차는 소리다.


아버지가 태어난 집에는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형 그러니까 나에게는 큰아버지의 딸인 사촌누나가 사는데 딸만 넷이다.

그 집 밑에는 아버지의 육촌 동생 그러니까 나에는 팔촌 당숙? 맞나? 암튼 가까이 살지 않으면 먼 친척 되시는 작은아버지가 태어난 집이 있는데 아들이 넷이다.


성묘를 가면 알코올 중독자인 매형과 함께 딸 넷을 키우며 살고 있는 사촌누나의 집, 즉 내 아버지의 집은 항상 죽어갔다. 반대로 아들이 넷인 작은 아버지의 집은 해가 갈수록 번창했다. 집이 신식으로 바뀌어 나갔다.

난 이 집이 좋았다. 아버지는 당신 집을 방치했다.


회사에 내 새끼들이 넷 있다.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딱 한 명이 불안 불안하다. 이 친구는 어디가 항상 아프고, 나에게는 평생가도 일어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큰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확인해 보면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아프고 진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 이 친구를 오늘도 힘들게 한다.


다른 새끼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 듬직하다.

난 이 친구가 정말 신경 쓰인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정직원이 되기까지 지각에 무단결석에 근태가 너무 안 좋아 정규직심사에서 떨어질 뻔 한 걸 아직 젊고 어려서 그러는 거다. 사람 실수로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락바락 우겨서 정직원이 되었다.

근데 7년이 넘어가도록 똑같다. 항상 어디가 아파서 지각하고 무단결석하고 큰일이 일어나 어디선가 그걸 해결하고 있다.

돈도 단 한 푼도 모으지 못했고 빚만 잔뜩 늘어난 상태인데 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


내 새끼 중 큰아들과 같은, 우리 집사람이 너무 좋아하고 예뻐라 하는 이 강원도 친구에게 최근 천만 원을 빌렸다고 한다.

이 강원도 친구는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이 3억을 넘어가고 있다. 다른 새끼들도 나름 돈을 많이 모았는데 탑이다. 그래서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사람이 이 친구 너무 착실하고 예쁘다고 집에 초대해 밥도 잘해준다. 장가만 가면 되겠다고 좋은 여자 알아봐 주겠다고 난리다. 그러면 이 친구는 형수님 같은 사람이면 뒤도 안 보고 결혼할 거라고 예쁜 소리만 골라해서 집사람에게 더 예쁨을 받는다. 이 친구는 형수님 드시라고 강원도 감자와 두릅을 보내준다.

그리고 이 친구는 나보다 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깊다.

그래도 자기 실속 다 차리고 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요즘 젊은 친구들 조금만 싫은 소리 해도 확 티를 내니 불안불안 친구에게 무슨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돈을 빌렸다는 말에 열이 너무 받아 불러다가 사정없이 뭐라고 해버렸다.

나라는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다. 하지만 한번 내린 결정은 절대로 번복하지 않는다. 그만큼 심사숙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날 이 친구를 내 새끼에서 빼기로 결심했었다. 한데 강원도 친구가 그러면 안 된단다. 정신 차리겠죠. 이러면서.

내가 봤을 때 너 그 돈 못 받아. 너한테까지 손을 벌린 건 갈 때까지 간 거야. 빌려주지 말았어야지.

알아요. 최고로 예뻐하실 때는 언제고 손절하신다고 그러세요.

이 강원도 순둥이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녀석들 눈에는 내가 이 불안 친구만 예뻐하고 감싸는 걸로 보였다고 한다.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아이가 있다.

우리는 이 아이의 엄마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은 사패다.

하지만 이 사회는 아이의 마음까지 공감할 것을 강요하는 것 같다.

아니 도대체 이 아이의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공감할 수 있단 말인가?


많다면 많고 부족하다면 턱없이 부족한 내 책 읽기 그 어느 철학서와 종교서적에도 아이의 마음에 관해 논하는 부분은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아닌 아이의 행동과 마음 그리고 심리에 대해 신을 찾고 철학적 논증법을 제시한다.


내 인생 처음으로 첫 책을 출판했었다. 장르소설 판타지였다. 서울문화사에서 빠져나온 레이블? 회사로 2년 가까이 담당편집자와 쌍코피를 터트려가며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다. 솔직히 보여주기 싫었다.

역시나 너 왜 이런 짓을 하냐고 하셨다. 이게 책이냐? 세상에 이런 책 같지도 않은 건 또 처음 본다. 너 돈도 많다. 이런 쓸데없는 짓 하는데 돈 얼마 들었어? 이러신다.

군자는 가슴에 꽃을 다는 게 아니라면서.

내가 내 돈 주고 자비로 책을 만든 줄로만 아신다. 도대체 이런 생각을 왜? 어떻게? 하시는 걸까?


난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날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구나.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농협에 가서 아버지 통장정리를 하는데 잔고를 보고 기가 차서 펑펑 울었다.


625 참전용사라 보훈대상자로 나오는 연금이랑 국민연금도 있었고 가족들이 보내주는 용돈까지 합하면 월 2백은 넘는 돈이 들어오자마자 다 빠져나가 있었다. 대부분이 식당이고 술을 사는데 지출하셨는데 난 그 술을 아버지 집에서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누군가에게 밥을 사주고 비싼 술을 선물하시고 그런 거다.

내 아들, 당신 친손자에게 옷 한번 사준 적이 없고 만날 때 용돈 한번 주지 않으신 분이다.

근데 남들에게는 천사였나 보다.


섬에 하나 남은 집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얼굴도 모르는 남들한테만 잘해주는 삶을 사시고 가신 거다.


통장을 손으로 구기면서 오열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남자 대 남자로 한 남자 인생이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지 화가 나고 분하고 슬프고 그랬던 것 같다.

사실 기대도 안 했었다. 그래도 돈이 얼마라도 있으면 누나들에게 전화 돌려서 전세금이랑 통장의 돈 얼마 있으니까 당장 급한 사람 있다면 보내줄 생각이었다.


내 집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일단 등이 전체적으로 어둡다. 분양받아 살 때부터 벌레가 없는 집이라 만족했고 아들도 잘 커주었고 사는 동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었기에 고마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베란다 문은 바닥레일이 닳고 달아서 힘을 엄청 주어야 열린다. 손을 봐야 하는데 글만 쓰고 있다.

어쩌면 나 역시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몇 달 전부터 갈아달라고 말한 전구를 지금도 갈아주지 않고 있다. 늘 화가 나 있을 만도 하다.

철학에 철자도 모르는 내 막내처남은 효자다. 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효라고 생각한다. 하늘이 내리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막내처남은 서울에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시골을 자주 내려간다. 내려가면 집 어디든 수리를 한다. 샤워기도 바꾸고 낡은 전등도 새 걸로 교체한다. 처갓집은 항상 밝고 살아 있다.


처남은 평소에도 말이 없다. 내 말을 경청해 준다.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아이를 보고 놀라는 엄마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친구다.

날 무척 좋아한다. 자기 누나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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