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냄새, 병풍과 세월의 무게
아버지의 냄새는 항상 독특했다.
먹물은 늘 모포와 화선지 그 사이에 잔뜩 묻어서, 아버지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묵향을 일으켰다.
어린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옆에서 먹을 갈았다. 하얀 화선지 위에 떨어져 내리는 붓 끝, 잔잔한 수면 위로 뛰어드는 개구리와 그 파장을 노래한 불꽃과도 같은 유명한 하이쿠처럼 붓글씨 끝만 집중해 보았던 것 같다.
묵향,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내 머리카락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
오래전 이 냄새가, 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나는 걸까? 착각일까?
나에게만 유독 너무 엄하셨던 분이라 좋은 추억이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든 그 냄새가 신기해서 천천히 먹을 갈듯 생각에 잠기고 벼루와도 같은 pc전원을 켜고 글을 쓴다.
다 지나간 일, 뭘 놓치고 싶지 않은 걸까?
나는 다시 그날의 창문과 햇빛 그리고 아버지의 조용한 숨소리를 마주해 본다. 뭘 놓치고 있는 걸까?
붓 끝의 움직임은 이제 그만 보자. 그 대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얼굴을 좀 보자. 흥얼거리는 아버지의 콧노래, 길 영永 이 한글 자에 서예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며 작품을 들어가기 전 항상 연습 삼아 따로 쓰시던 움직임에서부터 묵향은 피어오른다.
묵향은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아버지의 집중하는 모습이 묵향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르침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누구든,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집중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 같다.
묵향이 피어오르고, 그 날카로운 선을 유지하고 있는 붓 끝이 하얀 화선지를 채워나가는 모습은 우리 작가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여백을 채워 나가며 글을 써나가는 것과도 닮았다.
지금 갑자기 피어오른 묵향을 따라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고는 있지만 그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엄마는 사실 그립다. 항상 그립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 드리고 아버지를 보내 드렸는데 아버지 돌아가실 때 더 많이 운 것 같다. 몇 배는 더 울었을 것이다. 그냥 남자들은 그런 게 있다. 더 슬프고 덜 슬픈 그런 차원이 아니다. 뭐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붓글씨 하나로 육 남매를 어떻게 키웠을까. 잘 나가는 경찰생활을 접지 않았으면 서예를 접으셨을까?
아버지가 작품활동을 하던 시대는 일명 병풍 뒤에서 향 내 맡는다고, 지금의 장례식장 문화와는 굉장히 다르다. 병풍제작 의뢰가 한 달에 몇 건만 들어와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대 없는 집 사람들은 한 번 상 치르기 위해 8폭 병풍을 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빌려 쓰고 했겠지. 이런 생각을 해보면, 아무리 병풍 뒤에서 향 내 맡는 시절이라고 해도 유명하지 않으면 돈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과연 유명한 화가였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의 글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날카로운 선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수많은 퇴사 유혹에 시달릴 때마다 나를 붙잡고 버티게 한 건 가난에 대한 뼈 아픈 기억이다.
가정에 대한 책임, 자식에 대한 부양… 뭐 밖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일들과 무거운 짐과도 같은 시간의 무게와 그 세월을 같은 남자로 공감하는 것일까.
어디선가 또 묵향이 피어오른다. 묵향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다.
어쨌든 묵향은 서예가였던 아버지의 냄새다.
그렇다면 작가의 향기는 무엇일까?
내 아들은 내가 가고 난 다음 어떤 냄새로 날 떠올리게 될까. 담배 냄새와 술만 기억할까?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름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글 몇 개를 가지고 있고 그 글 속에는 따뜻한 커피 냄새라도 남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