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남궁휘가 발걸음을 멈췄다.
폐가에서 도망쳐 마을 초입을 벗어나 큰 길로 이어지는 좁은 길목이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이 달빛 아래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킁킁.
지린내를 일부러 찾아 맡고 있다.
바지춤에서 올라오는 지린내를 한번 맡고 나니 계속난다.
오줌이 손에 묻고 코에도 묻은 것처럼 지린내가 풀풀 났다.
도대체가 가시질 않는다.
머리가 다 지끈거려왔다.
천하의 남궁세가 대공자가 이름 없는 떠돌이 앞에서 오줌을 지리고 개처럼 굴러다녔다.
기절까지 했다.
이것만으로도 일생일대의 큰 사건인데, 더 큰 일은 따로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지옥과도 같은 시간에 갇히게 된다.
가문의 수치로다.
경멸로 가득 찬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번 당했나?
항상 고요하고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아버지는 한번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로 번복하는 일이 없었다.
그만큼 신중하고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남궁휘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떤 징벌이 내려지기까지의 시간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때리고 혼도 내주길 얼마나 바랐던가.
나이를 먹고 사천당가의 여식과 혼사가 오가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입에서 어떤 처분이 떨어질 때가지, 숨도 못 쉬고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은 지옥이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대공자님… 몸은 괜찮으….”
송철이 송구한 터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순간, 남궁휘가 전광석화처럼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주저 없이 자신의 목 줄기에 검 날을 갖다 댔다.
“대공자님! 왜 이러십니까!”
송철과 청운검대 8인이 경악하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살아서 뭐 해. 이 꼴을 하고… 내가 어떻게 가문으로 돌아가!”
남궁휘의 눈은 이미 초점이 풀린 채 핏발이 서 있었다.
검날이 목 가죽을 파고 들어와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그 피는 검신에 새겨진 단조의 무늬를 타고 흐른다.
완벽했다.
누가 보아도 진심인 것처럼 보이니까.
“이 치욕을 씻을 길은 죽음뿐!”
“죽여주십시오!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제발 검을 거두어 주십시오!”
검대 전원이 머리를 땅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다.
그들의 처절한 통곡 소리가 산을 울릴 때, 남궁휘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뒤틀렸다.
“그래… 정녕 그리 생각하는 게냐?”
“예…?”
송철이 고개를 들기도 전이었다.
남궁휘의 검이 자결이 아닌, 조아리고 있는 검대의 목을 갈랐다.
서걱-!
가장 가까이서 머리를 조아리던 검대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남궁휘는 멈추지 않았다.
광기에 젖은 검무가 시작됐다.
무방비 상태로 용서를 빌던 청운검대원들이 하나둘 핏덩이가 되어 나자빠졌다.
순식간에 일곱 구의 시신이 산길을 메웠다.
남궁휘는 피 칠갑이 된 채, 송철에게 피가 뚝뚝 흐르는 자신의 검을 내던졌다.
“송철. 네 놈의 검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너의 검은 나의 검. 나의 검은 곧 아버지의 검이거늘 마교 놈에게 가문의 검을 잃은 놈 따위, 더 이상 청운검대를 이끌 자격이 없다. 이 큰 죄를 어찌 할 것이냐?
할 말이 없다.
가문의 검대를 속여 학살한 자가 오히려 청산유수다.
송철은 지금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저 놈은 미친놈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자결하라. 너는 죽음으로 이 큰 죄를 갚아야 할 것이야.”
도대체 뭔 속셈인 걸까?
송철의 동공이 멍해진 상태로 떨린다.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아서 잘 안다.
뱀처럼 간사한 저 세치 혀의 위력을….
저 혓바닥에 자신이 당하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남궁세가에 충성하며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내성을 스스로 단단히 쌓아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놈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왜 죽기 싫으냐? 그러면 검을 들어 네놈의 부하를 베어라. 송 대장. 이 모든 짓은 바로 그 마교 놈의 짓이다. 넌 가문을 지키려다 홀로 살아남은 영웅이 되는 거고, 네 가족은 평생 호강하며 살겠지. 그게 아니라면 당장 죽여주마. 저승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야. 네놈의 처와 자식도 함께 보내줄 테니까 선택해!”
송철의 떨리는 손이 검을 붙잡았다.
생명의 끈이다.
가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남궁휘를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아 잘 안다.
저 간사한 세치 혀로 인해 죽어 나간 멀쩡한 가신들이 도대체 몇이던가.
그의 가족까지.
서걱-.
마지막 동료의 숨통을 끊는 소리가 산의 정적을 깼다.
새들이 날아올라 자리를 이동한다.
남궁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팔을 스스로 베어 상처를 냈다.
그리고 산 아래를 향해 짐승처럼 포효했다.
“마교다! 마교의 고수가 나타났다! 청운검대가 몰살당했다! 거리곳곳에 현상수배를 알리는 방을 붙이고 가문에 전하라! 남궁사패에게 전하라! 마교가 세상을 또 다시 어지럽히고 있다!”
검을 움켜쥔 송철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가고 있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산을 넘었다.
산을 오르던 지존보의 발걸음이 멈췄다.
자청보검의 매듭에 미라처럼 말라붙은 단풍낙엽 하나가 떨어져 있어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산을 넘는 길은 험했다.
설아의 거친 숨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지존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거리를 조절해준다.
험한 산이다.
아이가 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산도 험하지만, 산 밖의 세상은 더 험하다.
거친 숨을 이겨내며 꾸준히 뒤를 따라오는 저 아이는 이 산속에서도, 밖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
“근데 있잖아요. 무사님… 그 검, 왜 묶어놓은 거예요?”
설아가 낮은 바위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지존보는 멈추지 않았다.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설아가 보기엔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다.
“…”
“…”
착각이었나보다.
설아는 앞서가는 지존보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았고 지존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보호자와 연결된 유아의 애착고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쳤다.
조금만 쉬어 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가시다는 이유로 버려질까 두려웠다.
폐가 주변에서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로 버려져 있는 검을 챙겨왔을 때도 꾸중을 들었었다.
주인이 찾으러 올 것인데 남의 것을 왜 함부로 가져 오냐고.
이걸 내다 팔면 조금이라도 돈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고아가 되어버린 절 지켜주시는데 저도 어떻게든 보상을 해야 맞잖아요? 라고 되묻는 것처럼 은근슬쩍 따졌다가 차가운 눈을 마주하고는 슬그머니 제자리에 돌려놓았었다.
앞서가던 지존보가 발을 멈추었다.
설아는 휴, 다행이라며 땅바닥에서 사람모양의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옷소매를 찢어 옷을 만들고 입혀주고 나뭇잎을 꽂아 머리를 만들었다.
조잡한 인형을 지존보의 등 뒤에 대고 설아가 소곤거렸다.
“나무 무사님, 진짜 무사님은 너무 무뚝뚝하죠? 이제 우린 친구니까 우리끼리만 얘기해요.”
지존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나무 무사님. 근데 저 진짜 진짜 궁금하거든요? 왜 검을 그렇게 꽁꽁 묶었어요? 네? 뭐라고요? 안 들려요. 나무 무사님?”
설아가 다시 나무 무사님을 부르는 그 때다.
“너.”
“네?”
설아가 화들짝 놀랐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검을 챙겨왔을 때보다 더 차가운 눈빛이었다.
“잘 들어. 난 너랑 친구 할 생각 없어.”
단호한 말에 설아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착각하지 마라.”
입술을 꽉 깨문 설아가 바위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지존보를 앞질러 달려 나갔다.
삐진 게 아니다.
화난 것도 아니고 놀란 것도 아니고 속이 상한 것도 아니었다.
뭐랄까?
숨기고 있던 뭔가를 갑자기 들킨 마음이랄까? 그 뭔가가 뭔지는 설아도 모른다.
“야.”
지존보가 불러 세워도 설아는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기분이 정말 이상해진 탓에 뛰고 싶어졌다.
설아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러다 이끼를 밟고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고는 비탈로 휘청거렸다.
휘익-!
어느새 지존보가 설아의 뒤를 받치고 있었다.
손이 아니었다.
천에 싸인 자청보검의 검집이 설아의 허리를 단단히 지탱했다.
“무사님…”
“앞이나 봐라.”
검집으로 설아의 등을 밀어 올려 세워준 지존보는 다시 무심하게 앞장섰다.
설아가 점점 멀어져 가는 지존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서서 바라보다가 인형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나무 무사님? 방금 봤어요? 진짜 무사님 있잖아요… 입만 차갑지 손은 따뜻해요.”
설아는 혼자 조용히 속삭였지만 지존보는 다 듣고 있었다.
후.
인연이란 것.
그것은 무겁고 소중한 것이다.
끝까지 지키지 못할 인연이라면…
지존보는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에도…
현상수배 마교의 흉적.
거리마다 방이 붙었다.
지존보와 설아의 목에 무려 금화가 100냥이나 걸렸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난다 긴다는 살수들과 현상금사냥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천의 부하 4인(불을 피우고 토끼를 구어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준 4인)이 개방의 방주 모추용에게 쥐어터지면서 살수들의 길잡이가 되어 함께 객잔으로 향했다.
남궁사패 중 남패 남궁평이 진천의 안내를 받고 남궁휘와 함께 낙화객잔으로 향한다.
낙화객잔에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