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객잔에서
낙화객잔.
이곳은 이름 그대로 꽃이 떨어지는 객잔이라 불린다.
어떻게 저렇게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곳에 건물을 지어 올렸을까 두 눈으로 보면서도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절벽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고성(古城)과도 같은 객잔은 계곡 사이에 외줄을 타는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낡은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낙화객잔은 계곡건너편 거대한 불상을 마주하고 있다.
낙화계곡은 청강과 대도하가 합쳐져 물살이 센 계곡으로 송나라 때 부처님의 힘으로 물살을 잠재우고자 이 거대한 불상을 세웠다.
불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지붕, 겹겹이 쌓인 낙화객잔의 기와 위로는 이끼가 검게 내려앉았다.
층마다 걸린 퇴색된 홍등(紅燈)은 마치 핏발 선 눈동자처럼 밤안개 속에서 번들거렸다.
객잔 마당에는 누군가 일부러 뿌려놓은 듯 붉은 꽃잎들이 흩날린다.
살수들의 살기(殺氣)에 눌려 산새조차 숨을 죽인 그곳은 이미 산 자의 공간이 아닌 거대한 관(棺)처럼 보였다.
비파살검(琵琶殺劍) 곡무상.
객잔 구석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비파를 켜는 사내는 바닥까지 끌리는 긴 백발에 은색 가면을 쓰고 있다.
그의 비파 소리는 들리는 즉시 고막을 찢고 뇌를 파고드는 음공(音功)이다. 비파 속에는 수백 개의 가느다란 비침(飛針)이 숨겨져 있다.
거구의 도살자 황천귀.
객잔 중앙에서 생고기를 씹어 먹고 있는 삼 미터에 육박하는 거구다.
전신에 굵은 쇠사슬을 감고 있으며 등 뒤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거대한 파천도(破天刀)를 짊어지고 있다.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의 황금빛이며 그가 숨을 쉴 때마다 탁자가 파르르 떨렸다.
독안의 서생 청란.
부채를 부치며 단정한 차림으로 앉아 있으나 한쪽 눈 주위에 푸른 문신이 얼굴 절반을 덮고 있다.
그의 소매 안에서는 끊임없이 독사가 들락날락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목재가 독기에 절어 검게 변했다.
우아함 속에 감춰진 섬뜩한 잔인함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천수마녀(千手魔女) 홍령.
객잔 들보 위 붉은 비단 자락을 늘어뜨리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여인이다.
열 손가락 끝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강선(鋼線)이 연결되어 있어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는 것만으로 객잔 안의 모든 기척을 읽고 단숨에 목을 낚아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지금 보는 것처럼 낙화객잔의 분위기는 기괴했다.
한쪽에는 천하 명문 남궁세가의 남패(南覇) 남궁평이 오만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주변 탁자들에는 험악한 인상의 살수들이 제각각 무기를 끼고 앉아 있는 것이다.
남궁평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멸시가 담겨 있었다.
“똥파리들이 제법 많이 꼬였구나. 마교 놈을 잡고 가문의 수치를 씻으러 온 자리에 이런 잡배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객잔 안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아무리 남궁세가라지만 이곳에 모인 자들은 강호의 밑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기인들이다.
“말씀이 과하시군.”
비파살검 곡무상이 비파 줄을 툭 건드리며 말을 받았다.
“우리는 똥파리가 아니오. 그저 금화 백 냥짜리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냥개일 뿐인 게지. 하지만 남궁세가의 검술이 소문만큼 대단한지는 한 번 확인은 해보고 싶군.”
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살수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사냥감이 나타나기 전 절세무학을 자랑한다는 남궁평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
남궁휘가 벌떡 일어섰다.
“무모한 것들아. 그냥 닥치고 앉아 있어라. 우리 세가의 검은 너희 같은 잡배들의 피를 묻히기엔 너무나도 고귀하니까.”
“듣자하니 쥐어터지고 오줌까지 지렸다는 놈이 입만 살아서 말은 참 잘하네.”
객잔 구석에서 누군가의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누구야? 어떤 새끼야? 지금 어떤 놈이 감히 재수 없게 어느 안전이라고 구시렁거리는 거야?”
진천의 부하 4인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남궁휘의 시선을 외면했다.
남궁휘가 폐가에서 지존보에게 당한 과정을 살수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현장의 살아 있는 느낌 그대로 전한 그들이었다.
“나다 새끼야.”
거구 황천귀가 천장이 닿을까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몸을 일으켰다.
남궁평이 흥,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찻잔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서서히 날아가던 찻잔이 어느 순간 갑자기 상승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황천귀의 이마를 강타했다.
찻잔이 이마에 박혔다. 황천귀가 그대로 뒤로 무너진다.
동시에 천수마녀 홍령의 은색 강선들이 사방에서 남궁평의 사지를 묶기 위해 뱀처럼 날아들었다.
남궁평의 눈에 서늘한 안광이 스쳤다.
출수.
검이 빠져나온 순간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창궁무애검기(蒼穹無涯劍氣)가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갔다.
콰콰쾅!
홍령의 강선들은 검 끝에 닿는 순간 불꽃을 튕기며 갈가리 찢겨 나갔다.
곡무상이 당황하여 비파를 튕겨 음공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남궁평은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 진동을 소멸시켜 버렸다.
“이것이 정종 무학의 위력인가…!”
독안의 서생 청란은 소름이 돋았다.
남궁세가의 사패 중 남패 남궁평이 순식간에 일류 살수 넷을 압살하고 있는 것이다.
“더 확인해보고 싶은 놈이 있느냐?”
남궁평의 서늘한 물음에 객잔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살수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괴물과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죄송합니다! 절세무학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까불어서 죄송합니다!”
기인들은 금화 백 냥의 꿈을 접고 서둘러 뒷문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남궁평은 그 꼴을 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다들 어딜 가는 게냐? 돌아와 앉아라. 자리를 지키고 앉아 이 남패 남궁평이 마교 놈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보아라.”
살수들이 굽실거리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때였다.
객잔의 열린 문 사이로 밤안개를 뚫고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지존보와 그의 옷자락을 꼭 쥔 설아였다.
남궁휘가 지존보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저놈입니다! 숙부님! 저 마교 놈이 청운검대를 몰살하고 저를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송철! 맞지? 저 놈이 맞잖아?”
송철이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남궁평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놈인가. 우리 가문의 식솔들을 죽인 것이.”
지존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객잔 안이 정리되지 못한 모습과 남궁평을 번갈아 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어이 점소이. 빈방 있나?”
“뭐라?”
“하루 종일 산을 탔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좀 자려고 하는데.”
남궁평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살수들을 쫓아내고 기세가 한껏 올라있던 그에게 이 무심한 태도는 그 어떤 욕설보다 큰 모욕이었다.
하지만 남궁평은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어른스럽게 행동한다.
“마교는커녕 사연이 있는 자로군.”
남궁평이 봉인된 검을 보았다.
사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청운검대의 시신을 살펴보았었다.
마교의 검이 아니었다.
조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묵인하고 있는 그였다.
나라가 망하고 있다.
강남행성의 성주부터 시작해 관리라는 것들은 군비랍시고 죄다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내며 사리사욕만 채우고 있다.
황산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철혈성의 대천회가 급부상해 무림맹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천회주 천검의 제1제자 신비가 무림맹주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도발을 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혁부터 시작해 나머지 4패들은 무림맹의 고위간부들이다.
신비의 도발에 남궁세가의 가주와 4패가 모조리 덤볐지만 가주가 내상을 입고 말았다.
신비는 조롱하며 자리를 떠났다.
이런 상황에 마교의 출현은 대천회주와 손을 잡을 수 있는 타협의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보니 마교의 소행이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이 있지만 일단 눈감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정치적으로 가져가야하는지 궁리중에 있는 것이었다.
“삼촌! 저놈은 마교 놈이 맞습니다!”
남궁휘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지존보를 가리켰다.
지존보가 슥 훑어본다. 이 새끼가 죽고 싶나?
이런 눈빛이었다.
“힉.”
개방의 방주 모추용과 진천이 화들짝 놀랐다. 눈빛만 보아도 소름이 돋아났다.
남궁휘도 순간 쫄렸지만 삼촌이 있으니 삼촌 믿고 까부는 어린아이처럼 목소리가 커졌다.
“눈깔 착하게 똑바로 안 뜨냐? 이 마교 놈아!”
“야. 너 그러다 피똥 싼다.”
지존보의 말 한마디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남궁패와 살수들을 제외한 모두는 알고 있다.
더 까불다가는 진짜 피똥 싼다는 것을.
그 때다.
“마교의 무위가 얼마나 높은지 이 독안의 서생 청란이 먼저 상대해보겠소이다.”
청란의 양쪽 발목에서 뱀들이 무더기로 빠져나왔다. 스스로 탑을 쌓더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던 뱀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지존보를 향해 아가리를 벌이며 몸을 날렸다.
설아가 징그럽고도 신비한 현상에 뱀들의 움직임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위험을 감지하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꺅!”
그 때다. 지존보가 자청보검을 땅바닥에 버리는 것처럼 내팽개쳤는데 그 검이 다시 튀어 오르면서 첫 번째로 공격해오는 뱀의 머리를 때려 방향을 비틀었다.
“아.”
뱀이 황천귀의 팔뚝을 물고 늘어졌다. 황천귀의 두 눈이 하얗게 뒤집어지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자청보검이 지존보의 손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 이번에는 가볍게 제기차기를 하는 것처럼 툭 차서 걷어 올렸다.
핑그르르.
그 과정에서 회전과 함께 두 마리의 뱀이 또 다시 머리를 얻어맞고는 공격방향을 비틀었다.
살수들이 기겁해서 뒤로 물러섰다.
개방의 방주 모추용이 몸 안의 모든 진기를 끌어 올려 항룡십팔장으로 다시 맞서볼까 고민을 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기둥 뒤로 숨었다.
진천도 지존보를 다시 상대한다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궁평이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자청보검이 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청보검 안에는 기본적인 내공이 실려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특급살수의 공격을 저딴 식으로 가볍게 막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하지만 저런 잔재주 따위 무시할 때 철저히 무시해줘야 했다.
남궁평이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연이 있는 자여 잔재주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그것은 무학이 아니다. 여봐라! 진정한 무학이 무엇인지 다들 똑똑히 보아라. 내 먼저 남궁세가의 절대무학을 보여주겠다. 특히 너. 사연 있는 너. 그래 너 말이야, 너. 잘 보아라!”
진짜 절세무학이란 천지자연을 호령하는 압도적인 기상이어야 한다.
“잘 봐 이 새끼들아!”
남궁휘가 가만히 있을 것이지 한 마디 보탰다.
남궁평의 몸에서 푸른 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창궁무애(蒼穹無涯)!”
남궁평의 신형이 객잔의 난간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대도하의 계곡을 단숨에 가로질렀다.
마치 푸른 유성처럼 한 줄기의 빛이 밤하늘을 갈랐다.
객잔에 있던 살수들과 진천의 무리는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찌 인간의 몸으로 저 거대한 계곡을 단숨에 건넌단 말인가. 그것은 이미 신선의 영역이었다.
폭포수가 압도적인 장관을 연출하며 거세게 흘러내린다. 그 폭포수 뒤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대도하의 불상 얼굴에 남궁평이 도달하는 순간 검을 뽑았다.
챙-!
단 한 번의 섬광.
남궁평은 다시 불상의 머리를 밟고 회전하며 객잔으로 날아 돌아왔다. 그가 난간에 가볍게 착지하는 순간 뒤편 불상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콰콰쾅!
집채만 한 불상의 왼쪽 눈 부위가 사선으로 정교하게 잘려 나가며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
아! 부처님이시여!
부처의 얼굴은 순식간에 기괴한 애꾸눈이 되어버렸다.
남궁평은 검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지존보를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보았느냐? 이것이 남궁의 검이다.”
객잔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살수들은 공포에 질려 숨도 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침묵을 깬 것은 뜻밖에도 너무나 무심하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어이, 점소이.”
지존보였다.
그는 남궁평이 하늘을 날든지 말든지 불상의 눈을 뽑든지 말든지 관심조차 없었다.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저 넋이 나가 있는 점소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방금 물었는데 대답이 없네. 여기 빈방 있어?”
“...”
남궁평의 얼굴이 경련하듯 일그러졌다.
평생 공력을 쏟아 부은 무학의 절정을 완벽하게 무시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