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천잰가?
요 며칠 아팠다. 몸이 아픈 게 아니고 머리가 아팠다. 잘 까부는 사람이 말 수도 줄었다. 의욕도 떨어지고.
원인이 없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글을 왜 쓰는 걸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나는 내 글로 너무나도 인정받고 싶고 너무나도 유명해지고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파격적인 글을 보고나면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정확하게는 주인공에게 왜 이런 선택을 하게 했는지 질문을 가장해 막 따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내가 그럴 만한 입장도 못되고 타인의 자유창작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짧은 문장 하나에도 담겨 있는 풍부한 글감에 사로잡혀 더 열심히 살고 내 남은 삶을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자고 다짐할 뿐이다.
근데 머리는 아프다. 너무 아프고 피곤하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와 이런 사람이 다 있구나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길 정말 잘했다는 게 바로 이런 때다. 글을 안 썼으면 평생 만나보지도 못했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갈 때가 참 좋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서 약간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남의 글을 평가하기에는 시각부터가 다르다고.
최대한 이성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균열을 일으키고 싶다고 한다. 자기가 쓴 글을 누가보든지 말든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한다. 감정적인 글쓰기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이런 말들은 나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픈데 덜컥 겁이 난다.
내 글은 과연 여기에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어떤 글을 읽든 행간파악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
분명 뭔가를 숨겨 놓았어. 그걸 찾아내고 싶었다.
글의 구조와 구성을 연구하며 어떤 장치가 사용되었는지 파악도 해보고 싶고 스토리의 전개를 어떻게 배치했는지도 알고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따라도 써본다.
히트한 유명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와 나만의 색깔을 입히는 레퍼런스 작업을 참 많이도 했었다. 그 중 몇 작품은 공모전에서 큰 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떤 때는 스스로 만족해 좋아 죽겠고, 어떤 때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이 다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머리가 아프고 힘이 쭉 빠지는 때가 바로 이 때다.
근데. 어쨌든.
모르겠다. 그래도 모르겠다. 여전히 모르겠다.
난 글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하는 걸까? 정말 모르겠다.
에메랄드 빛 술병에 담긴 단순해 보이는 분홍색 튤립꽃 그림을 떠올려본다. 동시에 아버지의 붓글씨도 떠올린다.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정성을 들이고 또 들여 색감이 풍부해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투박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꽃 그림이다. 어린 아이가 서툰 솜씨로 정성을 들여 그린 것처럼 보인다.
짧은 문장에도 글감이 풍부한 작가의 글처럼 보고 또 보며 다시 되새기게 된다.
붓글씨는 고도의 집중력과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노련하다.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다. 어떻게 여기까지 끌어 올렸을까? 삶의 무게가 전해져온다.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노력으로 살아온 어른의 모습도 보인다.
화선지 위의 붓글씨는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피부의 딱지 같다. 생채기가 났던 피부가 염증을 이겨내고 딱지로 굳어지는 과정이고 화선지는 그 글자 밑에서 새 살을 돋아내고 있다.
치유의 과정처럼 보인다.
하나의 작품은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화가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글은 어디에서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누가 잘 알아주지 않는다. 하긴 원래부터가 작가라는 직업은 거절당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공모전에서 상을 받게 되고 편집자에게 연락이 오면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게 맞는 거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을 때가 참 혼란스럽다. 이런 과정의 연속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앞으로 남은 시간 좋은 글을 몇 편 더 써낼 수 있을까?
프로와 아마의 경계를 구분 짓고 나누는 가장 큰 선은 컨셉이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콘셉트의 효율성이다.
그래서 모작가가 부럽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세상이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가벼운 행동과 시선 하나에도 그걸 받아내야 하는 당사자는 굉장히 괴롭고 힘들 수가 있다고도 했다.
이 작가 정말 이 세상에 균열과 혼란을 일으키는 파격적인 컨셉을 능숙 능란하게 다루게 되면 그 땐 정말 진짜 프로작가가 되어 원하지도 않는 유명세를 타고 돈도 많이 벌 텐데...
그 때 나를 보고 누구세요? 할지 모르니까 지금부터라도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