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18

#18 1602년, 가을의 어느 날

by 임경주

태일의 눈에 환상이 보였다.

덕지덕지 머리카락을 적신 피와 호두를 닮은 인간의 뇌. 귀가에는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일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사포로 온몸을 빡빡! 긁는 전율이 일어났다. 심장이 폭죽 터지는 것처럼 뛰고 있었다. 태일은 귀가 멍해져 왔다. 눈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숨은 쉬고 있는 것인지 정신이 없었다.

한참동안 돌처럼 꼼짝 못하던 태일은 숨을 들어 마신 후, 다시 읽어 내려갔다.


시게타메님도 시마즈영주처럼 상황에 따라 인간의 뇌가 변화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험자의 뇌를 직접 본 의원들은 보통 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실험자 역시 분노와 광기로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숨어있던 무인들에 의하여 제압되었다.

첫 번째 실험자와는 달리 두 번째 실험자는 양귀비진액을 먹인 상태였다.

그러나 그 자 역시 뇌의 변화는 없었다.

세 번째 실험대상은 일가족이었다. 그 가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명백한 역모 죄로 일가족 모두 참수형에 처한 상태였다.

우리는 제일 먼저 아비 되는 자를 죽였다. 망치로 머리를 때려 죽였다. 그의 아들은 십 오세로 건장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태일은 몹시 흥분되어, 눈앞이 노랗게 보였다. 위소가 겪은 강도사건에 대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실험자의 나이가 위소의 나이와 똑같았으며, 위소가 겪었던 공포와 실험자가 겪는 공포가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개새끼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태일은 힘을 내야만 했다. 읽기가 무서웠지만,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위소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게타메님은 다시 계획을 세웠다.

그 아이가 분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의원마저 내보내고 나 혼자만 현장에 남겨둔 것이었다. 그 때 내 나이 열 네 살이었다.

난 명령에 의하여 어미 되는 자를 죽여야만 하였다.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상황이었다. 난 죽고 싶지 않았다. 꼭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다.

난 그 눈빛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살려달라고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그 어미의 머리를 망치로 때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내려치고 있는 데 그 아이가 폭발하였다. 의자의 밧줄을 풀고 포탄처럼 몸을 날려 내 가슴을 머리로 들이 받았다. 무인들은 계획대로 그 아이를 제압해, 실험 대 위에 올리고 사지를 제압했다.

그 때,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 소년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누운 채로 밧줄을 끊어 버렸으며 무인들에게 덤벼들었다.

열 명의 무인이 한 소년을 제압하지 못했다. 두 명의 무인이 미친개와 같은 아이의 이빨에 귀와 허벅지가 물렸고, 칼까지 빼앗겨 치명상을 입었다. 상황은 소년을 쉽사리 생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그 소년은 시게타메님의 칼에 의하여 목이 날아갔다.

그 아이의 어미 또한 이미 죽어있었다.


태일의 손은 저절로 다음 장을 넘기고 있었다.

<의원들은 그 소년의 잘린 머리를 절개하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뇌가 전체적으로 하얗게 색깔이 변해 있었고, 거품이 부푸는 것처럼 잔뜩 부풀어 올라와있는 것을.

그러나 아주 잠깐이었다. 뇌는 곧 제 모양을 찾고 있었다.


(중략)


2년간을 계속, 같은 실험을 반복해오며 정확한 사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독한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들었던 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용기를 회복하게 되는 순간, 뇌는 하얗게 변하며 부풀어 오르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의원들은 그 상태를 백뇌상태라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변화된 뇌는 다시 원위치 되었다. 변화되어서 소멸되는 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의원들은 다시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백뇌상태가 소멸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태일은 일본에서 일어난 지금 이 끔찍한 기록이 중국의 ‘나선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태일은 계속 읽어 내려갔다.

열다섯 번째 실험자는 바다 건너 대륙에서 넘어온 이방인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하려다 붙잡혀 참수형을 선고 받은 자였다. 그런데 이자는 지금까지 실험자와는 다르게 칼솜씨가 매우 뛰어난 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실험자에게서 예측불허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 실험자의 경우는, 뇌 자체가 하얗게 변화되어 소멸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의원들은 다른 시도를 했다. 실험자에게 다량의 아편을 투약하였다. 아편을 투약한 이유는, 아편중독자들의 광기어린 난동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아편이 투약되자 뇌가 갑자기 열 배로 부풀어 올랐다.

그의 변화된 뇌는 소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바로 다음 날이 되자, 실험자의 뇌에 악성종양이 생긴 것이었다. 악성종양은 곧 전신으로 퍼졌고, 실험자의 목숨은 위태로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편과는 다르게 뇌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자극제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우리의 실험은 결국, 더 이상 진척 없이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글을 읽어 내려가던 태일은 이방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가 ‘나선문’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선문’에 관한 기록은 없었다.

의원들은 전국방방곳곳을 돌아다녔다. 이름난 약초꾼들과 산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모두 수소문하여 자극제가 될 만한 약초나 물질을 찾았지만 의원들의 노력은 모두 허사였다.

뇌를 자극하는 것은 모두 독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초꾼 중에 하루마라는 자가 뜻밖의 실마리를 제공해왔다. 3년 전, 하늘에서 불타는 별이 떨어진 날, 산속에 죽어있는 기이한 생명체하나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는 것이었다.

의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지형이 수십 번 바뀌어있었다. 의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산을 뒤졌는데, 기이한 금속조각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다섯 달을 더 뒤졌지만, 얻은 것이라곤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는 금속조각 뿐이었다.

여섯 달을 넘기던 어느 날, 해는 어두워져 모두가 포기하고 산을 내려오던 때에 약초꾼 하루마가 소리쳤다. 그가 소리치는 곳으로 가서 땅을 파보니, 실로 기묘한 생명체가 잠들어 있었다.

기묘한 생명체는 죽었다고 말하기 어려울정도로 그 상태가 매우 깨끗했다. 실로 기묘한 일이었다.

의원들은 이 기묘한 생명체의 뇌를 갈라, 직접 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년이 넘도록 썩지 않는 이유는 뇌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원들은 그 기묘한 생명체의 두개골을 갈랐다. 한참을 들여다본 의원들은, 우리 인간의 뇌와 다를 것은 없었지만, 크기가 무려 열배는 크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기묘한 생명체를 통해 얻게 된 것은, 크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의원 중에 뛰어난 침술을 지닌 시게오라는 자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악성종양이 전신에 퍼진 실험자를 대상으로 시침한 결과, 독맥과 임맥을 따라 침을 맞는 그 시간만큼은 변화된 뇌의 상태가 연장되고 있었다.

의원들은 결국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을 2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하며 밖에서 찾아 헤맸다고 한탄했다.

시게오는 침을 놓아 사람을 마취시켜 큰 수술을 해내기도 하였는데, 시게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 침을 맞을 때면 뇌가 어떤 분비물을 내보내 진통과 마취의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분비물은 인체에 매우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시게오 본인 역시 이번 실험을 통하여 침술의 효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의원 시게오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몇 달간을 끙끙 앓으며 침술에 몰두하더니, 뇌에서 분비물이 다량으로 계속 쏟아져 나오는 곳을 찾아내게 되었다.


(중략)


무슨 이유인지, 실험자가 기력을 회복했다. 시게오 의원의 침술 때문인지, 아니면 옆에 누워있는 기묘한 생명체의 마력 때문인지 실험자는 벌떡 일어났고, 난동을 부렸다. 시게타메님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칼솜씨가 높은 자가 광기에 휩싸이니 제압할 수가 없었다. 실험자는 실험실을 뛰쳐나와 우리가 거처하는 곳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그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지독한 공포였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의원 중에 한 명이 겁에 질려 물건을 집어 던졌다. 집어던진 물건 중에는 산속에서 주워온 금속도 있었다. 미친 실험자가 그 금속을 잡는 순간, 그 금속이 거짓말처럼 길어졌다.

시게타메님께서는 그 신비한 금속에 옆구리를 관통당하셨다. 실험자는 곧 정신을 회복했다.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외모가 젊어지고 있었다.

변화하는 것은 그의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위치가 바뀌었다. 실험자가 난동을 부리기 전 상태로 되돌려졌다.

그리고 그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기묘한 생명체와 금속도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실험을 더 이상 순조롭게 진행해 나갈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을 뿐더러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나의 주인 시게타메님은 이시다 미쓰나리가문과 사쓰마의 영주인 시마즈가문에 합류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합류한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시게타메님이 이끄는 오백여명의 사쓰마 시현류부대의 가공할만한 위력의 내려치기는, 그 칼을 막아 내는 상대의 칼까지 부러뜨려 쇠테를 이마에 박아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하였으며 압도적인 기세로 진군해 나갔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적군을 상대로 싸움에서 승리할 수는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싸움에서 승리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사쓰마의 영주 시마즈님께서 운명하셨고, 살아남은 사람은 나와 나의 주인 되는 시게타메님을 포함한 시마즈가문의 무인 이십 여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시게타메님께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서 회생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살아남은 시마즈가문의 무인들마저 붙잡혀 사형 당하였다.

영주 시마즈가 없는 사쓰마 땅은 옛날의 사쓰마가 아니었다.

새로운 사쓰마의 번주 야쓰무리는 세끼가와라 싸움에서 시게타메님의 용맹과 뛰어남을 인정하였기에 가신으로 두길 원했다. 그가 비록 이 빠진 호랑이일지라도.

시게타메님께선 의원 시게오를 찾았다. 나 역시 시게타메님을 살리기 위해 시게오의원을 찾았다.

2년의 세월동안, 시게오의원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시게타메님은 결국 임종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게오의원이 번을 탈출해 대륙으로 도망쳤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시게오의원을 찾아 번을 탈출할 계획이다. 시게오의원은 틀림없이, 대륙에서 그 암살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기묘한 생명체와 신비한 금속을 만나기 위해 번을 탈출했을 테니…….


1602년, 가을의 어느 날 조선인 김석돌 쓰다.


태일은 맥이 빠졌다. 절단신공도 이런 절단신공이 없었다. 어느새 네 권의 기록을 모두 읽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다음 기록은 없었다.

“이게 뭐야?”

김석돌의 미완성기록은 일본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실험의 기록이었다.

“도대체 이 기록을 왜 관장님에게 보낸 걸까?”

태일은 중국인노부부와 일본소녀를 생각하며, 애브젝트가 언급된 표지를 다시 보았다. 이 미완성기록과 애브젝트 그리고 중국의 ‘나선문’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것을 표관장은 보았을까? 태일은 머리를 쥐어짜 봐도 답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위소와 어떤 연결고리를 느꼈다. 그것은 확실했다. 태일은 위소에게 알리기 위해 도장을 나섰다.

새벽 2시 20분.

밤거리는 조용했다. 태일은 발을 빨리 움직이며 위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버튼을 막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서는 순간, 어둠 속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태일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상대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태일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정작 보아야할 사람은 보지 않고…….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어.”

태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목소리 어디선가 들었다. 상대가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왔을 때, 태일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신은?”

지독히도 못 생긴 얼굴. 때에 따라선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보이는 얼굴. 괴멸적인 치열. 사나운 눈매. 큰 키, 큰 덩치. 모추용이었다.

문화부장관에 한국검도협회 회장이나 되는 저 사람이 왜?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은빛을 반사시키는 금속이 머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태일은 피하지 못했다. 벌어진 호두처럼, 태일은 머리가 절개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뒷이야기가 궁금하겠지. 하지만 그게 끝이야. 우리도 더 이상 찾지 못했거든. 다음 내용을 찾다가 포기했는데, 중국에서 실제로 물건을 발견하고 말았지 뭐야. ‘나선력’ 말이야.”

모추용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위소가 아침에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도장열쇠가 발밑에 놓여 있었다.

“뭐야, 여기에 이렇게 두고 가버리면…….”

그날로부터, 위소는 도장에서 태일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자, 강일중을 따라 도장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


난 그 녀석이 천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문제아도 그런 문제아가 없었죠. 사정이야 이해하지만, 허구한 날 싸움이었어요.

항상 미친놈처럼 웃고 다녔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죠.

한동안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기에 어디 다른 곳에서 사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녀석을 다시 보았을 때…….

난 악마를 보았어요. 놈은 악마였어요. 놈이 분노했을 때 정전이 일어났죠. 놈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어요. 여기 사진 보세요. 자동차 뒤집어진 거랑 건물 유리창 터져 나간 것을요. 자동차 네 대가 동시에 날아가 양쪽 건물에 박혔어요.

놈이 한 거예요. 손을 휘두르지도 않았어요. 놈이 손에 들고 있는 꽈배기모양의 금속은 자유자재로 늘어났어요.

-애브젝트 7도 보고서, 폭주소년 담당형사와의 인터뷰 중에서-



위소는 ‘나선탄’을 완성했지만,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나선탄’을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그만큼 빠르고 강력해야만 했다. 중요한 것은 체력이었다.

양쪽 발목에 3킬로그램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서 전력질주를 반복하던 어느 날, 수원경국대학교 코스프레이벤트동아리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위소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동아리회장은 위소의 연락처를 받아두었고, 혹시라도 실마리 같은 단서라도 잡히면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었다.

“대통령가면을 훔쳐간 놈들을 잡았어요.”

위소의 귀가 번쩍 뜨였다.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들려오는 말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애들이에요.”

“애들이요?”

“네, 중학교 2학년 애들인데 동네에서 소문난 꼴통들이에요.”

위소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냥, 돌려보낼까요?”

위소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요. 제가 지금 갈게요.”

위소가 수원경국대학교에 도착했을 때 코스프레이벤트동아리학생들은 중학생 세 명을 붙잡아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녀석들이에요. 그 뒤로도 몇 번 도난사고가 있었는데, 오늘 현장에서 잡았죠. 모두 자기들이 한 짓이라고 실토하네요.”

위소는 실망했다. 이런 어린 녀석들이 아니지 않은가.

“잘못했어요! 처, 처음에는 어떤 아저씨들이 시켜서 했어요!”

위소의 눈이 동그래졌다. 위소는 아이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놈들이 누구야?”

“모, 몰라요.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돈을 주기에……. 잘못했어요! 우왕! 경찰서 안가고 싶어요!”

“자세히 설명해봐. 어떻게 생겼어? 어디에 있었어? 어디서 어떻게 시킨 거야? 말해봐!”

위소의 눈은 붉게 충혈 되었다. 안구가 돌출될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말하지 못했다.

“저기, 제가 말해볼게요.”

위소는 동아리회장의 말에 뒤로 물러섰다.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제발, 제발 내 앞에 나타나라. 위소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아이들은 현장검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위소와 동아리회장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그 때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숨어서 담배피우고 있는 데, 아저씨 두 명이 저기서 담배 피우면서 형아들하고 언니들 보면서 막 웃었어요.”

동아리회장은 그 때의 상황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맞아요. 누가 옆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어린이날 행사가 있었어요. 우리는 행사를 끝내고 돌아와 여기서 잠시 쉬고 있었죠.”

위소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잘 들어. 그놈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 혹시 이런 말투로 이런 말을 자주 사용했어?”

“뭐요?”

“잡녀르새끼들…….”

위소는 놈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숨을 죽이며, 철금성을 내뱉었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라고.

위소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악연도 인연.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다고 했겠다.

“종이와 연필 좀 구해주세요!”

위소는 동아리회장에게 소리쳤다. 위소는 아이들의 말을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했다. 위소는 어렸을 때부터 사물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곤충그림을 많이 그렸다. 수준급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표현이 가능한 그림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세 명의 몽타주가 완성되었을 때, 위소는 놈들을 거의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서에 의뢰했지만, 일치하는 전과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경찰들은 몽타주를 토대로 현상수배를 시작했다.

위소는 하루하루가 갈증이 났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지만, 시민제보는 없었다. 위소는 허탈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위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위소는 가면을 쓰고, 경국대학교동아리건물옥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상처에서 연기가 회오리처럼 피어오르는 순간, 위소의 눈에 환상이 보였다. 중학생들로부터, 가면을 건네받은 놈들이 바라본 세상.

위소는 주먹을 꼭 쥐었다. 놈들은 여기서 어디로 갔을까.

위소는 연기가 움직이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정문을 떠나 도로로 나왔을 때 택시가 앞에 섰다. 위소의 눈에 놈들이 택시를 타는 장면이 보였다.

“아이고, 박대통령님! 어디로 모실까요?”

“서울. 청계천.”

“네, 모시겠습니다.”

택시가 출발했다. 위소는 창밖을 보았다. 놈들이 보는 세상을 보고 있었다.

위소는 옛날 집 앞에 섰다. 여전히 가면을 쓴 상태였다. 가스배달트럭이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모퉁이 전봇대 앞에서 놈들처럼 서성거렸다. 담배냄새가 났다.

위소는 밤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서성거렸다.

밤이 되었다.

담을 넘는 순간, 이웃집 신고로 잠복해있던 형사들이 달려와 위소의 다리를 붙잡았다. 위소는 형사들의 손을 뿌리치고, 담을 훌쩍 건너뛰었다. 위소의 발은 화단을 짓밟았다.

“저, 새끼! 저거 잡아!”

형사들이 담 밑에서 소리쳤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다가, 위소를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위소는 옛날 집 현관문 앞에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위소는 가면을 이마 위로 들어 올려, 다시 보았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아빠……. 엄마…….”

죄송해요, 죄송해요. 라고 무릎을 꿇었다. 위소는 오열하며 울부짖었다. 울어 피를 토하고, 그 피를 다시 삼키며 위소는 울부짖었다.

형사들이 들어와 위소를 붙잡았을 때도 위소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새끼! 잡았다.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하는 진술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거든?”

형사들은 위소의 손을 뒤에서 제압하며 피의자의 권리를 말했다.

“병신새끼들! 범인 하나 잡지도 못하는 것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머리를 숙이는 순간, 가면이 착용되자 위소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목소리가 두꺼워졌다. 뒤돌아서는 순간, 제압된 어깨가 탈골되어버렸다. 위소는 통증보다는 쾌감을 느끼며 머리로 형사의 얼굴을 들이받아 버렸다.

“커억!”

형사는 앞 이빨 두 개가 부러지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 자식이!”

옆의 형사가 발을 차올리는 순간, 위소는 그 발을 붙잡았다.

“어, 어? 이 새끼가! 이거 안 놔?”

“버러지 같은 놈들!”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발을 붙잡힌 형사는 위소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서기도 전에, 형사는 위소의 발에 안면을 짓밟혔다.

위소는 형사 둘을 돌아가며 마구 짓밟았다.

“버러지들! 버러지들!”

이러지마! 경찰들이라고!

무의식의 수면 아래로 잠겨버린 위소가 소리쳤지만, 행동은 멈추질 않았다. 한참을 짓밟다가 경찰차사이렌소리가 들려오자, 발을 멈추고 달아났다.

모퉁이를 돌아서 달리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소야, 괜찮다. 잊어버려라……. 이미 일어난 일과 지나간 일은 다 잊어버리는 거야.

아빠는 잊으라고 말하지만, 위소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위소는 달리는 도중, 전신에 찾아오는 피부의 통증을 느꼈다. 손등을 보니 곤충의 가시가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피부는 이미 갑각의 상태로 변화되어 있었다.

위소는 밤만 되면 기무라란코가 잠들었는지 확인 후, 밖으로 나갔다.

가면을 쓰면 전혀 다른 인격으로 돌변했다. 기무라란코는 잠든 척 하고 있다가, 위소가 떠나면 미행을 했고 모든 기록을 애브젝트에 보고했다.

밤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각종 언론에서 떠들어댔다. 청계천 폭주족과의 싸움장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강도강간용의자로 수배중인 자들이 반시체가 되어 경찰서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 중에는 새롬유치원여아 강간살해범과 전국을 돌며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 후 살해한, 자칭 악마파라는 범인들도 4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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