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녀의 눈물
둘이 그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강일중이 결국 위소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란코와 어깨를 기대고 교량분수를 보며 음악을 감상하다가 강일중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위소는 란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공원에서 두 사람이 위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
위소는 란코를 들여보내고, 두 사람 앞에 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떠나라.”
강일중이 말했다.
“어디를요? 도장을요?”
“그래. 모두가 원하고 있다.”
“왜, 왜죠?”
“네가 도장 물을 다 흩뜨려 놓았어.”
“뭘 흩뜨려 놓았다는 겁니까? 전 인정 못합니다.”
위소는 두 사람이 유치했다. 강일중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달만, 일곱 명이 줄줄이 나갔어! 하나 같이 이유가 뭔지 알아? 네 놈 꼴 보기가 싫어서 나간데!”
“그것을 왜 선배들이 신경 쓰는 겁니까? 도장 운영은…….”
“너 죽고 싶냐? 야이 개새끼야! 어디 선배들이 말하는 데 꼬박꼬박 말대꾸야?”
강일중은 욕을 내뱉었다.
“날 후배라고 생각한다면 이러는 거 아닙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이 개새끼가!”
참다못한 일중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욕하지 마! 이 새끼야!”
위소의 목소리가 더 컸다. 고함소리가 공원에 메아리쳤다. 강일중은 앞으로 나서다가 주춤했다.
“많이 컸다.”
“조금만 있으면 너 보다 더 클 거다. 그리고 학교는 내가 먼저 졸업했으니까, 밖에서는 형님이라고 해라.”
위소의 말이 끝난 순간, 강일중의 몸이 솟구쳐 올랐다. 위소는 일중의 발차기에 가슴을 얻어맞고 그네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네 밑에는 땅이 움푹 패여 물이 고여 있었다. 위소는 그곳에 엉덩이부터 나자빠졌다.
“야, 강일중! 이게 아니잖아?”
박태일이 나서서 말렸다. 위소는 박태일의 태도에 의아했다.
“너 왜 그래?”
강일중은 박태일에게 따졌다.
“말로만 할 거라며?”
“너 지금 저 자식 편드는 거냐?”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고 뭐!”
강일중은 그대로 달려와 위소의 멱살을 붙잡고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위소는 고개가 좌우로 돌아가는 순간, 희열을 맛보았다. 일중의 어깨 힘이 어느 정도 빠졌을 때,
“다 쳤냐?”
라고 위소는 씩 비웃으며 말했다.
“개자식!”
일중은 위소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웅덩이에 머리를 쳐 박아버렸다. 그 순간, 위소의 발이 올라와 일중의 사타구니에 박혔다.
“오헉!”
위소는 몸을 일으켰고, 일중은 그대로 웅덩이에 머리를 박았다. 엉덩이를 들어 올린 상태로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아, 진짜! 그만들 해!”
박태일이 달려오고 있었다. 바로 그 때 홍사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들 한다.”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시소가 움직이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 홍사범이 앉아 있었다.
“야, 강일중! 박태일! 유치하게 뭔 짓이냐?”
바로 그 때였다. 강일중은 벌떡 일어나더니, 홍사범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서 솔직히 말해! 나야, 저놈이야?”
위소는 깜짝 놀랐다. 둘이 사귀는 사이였어? 라는 표정으로 박태일을 보았다. 박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하게 굴지 마. 위소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어.”
강일중은 홍사범을 한동안 노려보더니,
“좋아, 다 끝내자고. 나도 너처럼 키 크고 어깨 벌어진 여자별로였어.”
위소는 충격이었다. 홍사범의 표정을 살폈다. 홍사범은 강일중을 향해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소는 그들 모두가 다 유치했다.
“내일 도장에서 정식으로 붙어! 이런 데서 유치한 짓거리 하지 말고.”
위소는 뒤돌아 공원을 떠났다. 박태일은 멍한 상태로 위소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강일중은 사타구니를 붙잡고 벌벌 떨며 박태일에게도 따졌다.
“너도 저 놈이냐? 응?”
“일중아, 그러지 마라.”
“너도 저 놈이냐고!”
박태일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 먼저 들어간다.”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근데, 우리가 사귀었어? 너 웃긴다?”
홍사범의 말이 끝난 순간, 강일중은 손을 들어 뺨을 때려버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고개가 뒤로 돌아갔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져버렸다.
“걸레 같은 년.”
강일중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원을 떠났다. 홀로 남은 홍가연은 고개를 푹 숙인채로 오래도록 시소만 움직였다.
삐그덕, 삐그덕.
시소의 마찰음처럼, 홍사범의 가슴도 삐거덕거렸다. 눈물이 흘러나와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기무라란코는 욕실에서 옷을 모두 벗고, 거울을 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거울 속에는 전라를 드러낸 자신의 부끄러운 육체가 있었다.
기무라란코는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를 풀어헤쳤다.
길고 풍성한, 브라운계열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이 목덜미와 어깨를 덮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아…….”
며칠 전부터 찾아온 통증이었다. 허리와 배가 잘려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내장이 빠져나올 것만 같은 극심한 아랫배의 통증으로 인해 기무라란코는 인상을 찡그렸다. 기무라란코는 생리혈을 발로 쓱쓱 밀어, 욕조구멍으로 옮겼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뿌려 구멍에 흘려보냈다. 썩은 피가 부서지며 사라진다.
‘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기무라란코는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난 그의 감시자야. 하지만 사랑해.’
그녀는 위소를 이용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죽일 수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조직원끼리만 연락이 가능한 ‘Scm'을 통해 문자가 도착했다.
기무라란코는 피아노 앞에서 한참동안 레고를 만지작거리다가, 긴 한숨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