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21

#21 철금성

by 임경주

박철웅은 상대를 모두 KO시키며 결승에 올라왔다. 위소 역시 상대들을 ‘나선탄’으로 무너뜨리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박철웅과 위소는 시합장 정중앙에서 만났다.

관중들과 심사관들은 술렁거렸다.

한국검도협회이사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모추용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괴멸적인 치열이 활짝 드러났다.

“표사범이 대단한 인재를 발굴해냈어요.”

협회총무가 모추용의 말을 듣고 물었다.

“헌데, 칼이 독특하군요. 저게 표사범이 중국유학시절 배워온 것인가요?”

“네, 나선검이라고 합디다.”

모추용이 대답했다.

“나선검이요?”

이사들은 모두 궁금해 모추용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협회가 썩었느니, 시합 칼 때문에 검도가 쇠퇴하고 있다느니 난리 법석을 떨고 중국으로 훌쩍 떠나더니만……. 저런 물건을 만들어냈네요. 자존심 굽히며 협회로 들어올 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모추용이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헌데, 그 아끼는 보검을 어떻게 주시려고 하십니까?”

“난 늙었고, 마사무네는 젊은 놈을 원합니다. 마누라가 싫다는데 떠나보내야지요.”

모추용의 장난 섞인 말에 모두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웃음을 삼켰다. 그들은 표사범과 모추용 그리고 그의 아내 박성은의 과거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두고두고 입방아를 찧을 것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우승자와 함께 하는 회식자리에서 마사무네를 젊은 주인에게 건네주려 합니다. 모두 빠짐없이 참석하세요. 이 모추용이 아주 큰 재미를 약속하겠습니다.”

“큰 재미라니요?”

총무가 물었다. 이사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 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헌데,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마사무네를 누가 차지할 것 같습니까?”

모추용이 묻자, 모두가 박철웅이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추용만이,

“아닙니다. 저 소년이 승리할 것입니다. 아니,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차려칼.

상호간 경례.

삼보전진 뽑아칼.

박철웅은 역시 상단이었다. 그에 맞서는 위소는 왼손 한 손 중단을 잡았다. 오른 손은 허리춤에 머물러 있었다. 그 자세에서, 왼쪽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곧장 죽도를 뻗으면 박철웅의 옆구리를 관통할 기세였다.

‘수수여여’를 변형한 자세였다. 표관장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위소 스스로 응용하고 있었다.

“저 녀석…….”

표관장은 위소의 중단 세를 보고 감탄했다.

체구차이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는 박철웅은 힘으로 밀어 붙여 꺾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상대가 연약한 계집애처럼 보였다.

1초, 2초, 3초, 4초.

위소는 죽도를 잡은 왼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몸이 굳기 시작했다.

침착해야 한다, 흥분하면 안 된다, 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야금야금 잡아먹어야 해. 하수가 먼저 움직인다. 하수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움직이면 빈틈이 보인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소는 보았다. 개구리가 뛰어오르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을!

아지랑이 같은 결계를 뚫고 들어오는 흐릿한 죽도의 끝.

굉장한 속도였다.

콰하앙, 위소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주심이 카운트를 세고 있었다.

위소는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싸울 수 있어요!”

주심은 다시 두 사람을 중앙으로 세웠다. 위소의 머리에서 피가 터져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관중석의 홍사범은 두 손을 꼭 쥐었다. 란코도 벌떡 일어났다. 주심이 시합을 정지시켰다.

표관장은 재빨리 달려 나와, 지혈시켰다.

“넌, 이길 수 있다.”

표관장이 말했다.

“상대가 안돼요.”

“뼈를 내주고, 목숨을 가져와. 놈은 시합 칼에 익숙해서, 널 죽이지는 못해. 하지만 네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야.”

표관장은 위소의 등을 탁! 치며 말했다.

“가라! 몇 대 더 맞아도 안 죽어.”

위소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추용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사진들의 표정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위소는 대기실로 돌아간 표관장을 보았다. 표관장의 입은 이, 길, 수, 있, 어! 라고 말하고 있었다. 위소는 사실 두려웠다. 가슴 속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너무도 큰 벽이었다. 실력 차가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박철웅이 웃고 있었다. 순간,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락하면 어때?

추락할 땐 하더라도, 일단 모험을 거는 거야.

남자가 그런 배짱 하나 없으면 안 돼.

아빠 말 믿고 날려 봐.

알았지?

1등해서 전국대회 나갈 수 있을 거야.

뼈를 내주고, 목숨을 가져와라.

위소는 몸을 날렸다. 목을 내주었다.

‘네 죽도가 내 목을 뚫지 못한다면 내 죽도는 네 심장을 뚫으리라.’

박철웅의 죽도가 위소의 목을 찔렀다. 동시에 위소의 어깨가 회전하며 ‘나선탄’이 터져 나왔다.

우!

관객들 모두가 일어섰다. 앞에서 일어서니, 보이지 않는 뒷사람이 일어섰고 결국엔 모두가 일어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너무도 놀라 휘둥그레져 있었다.

위소는 뒤로 날아갔고, 박철웅은 그 자리에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위소의 죽도가 가슴에 박혀 있었다. 박철웅은 눈이 뒤집어지더니, 고목처럼 뒤로 떨어져버렸다. 위소는 시합장 밖으로 날아갔지만, 오바이트 몇 번과 기침 몇 번을 한 뒤 벌떡 일어났다. 위소의 승리였다.

위소는 응급차에 실려 가는 박철웅을 보았다. 저 사람, 살아나도 폐인이 될 것이리라. 표관장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만 위소는 회의감이 일었다.

위소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내 상대가 아니야. 이들은…….’

관중들은 환호하고 있었지만, 위소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아빠가 기뻐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울부짖고 있는 저 아이와 아내는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위소는 홍사범과 눈이 마주쳤다. 위소는 알 수 있었다. 홍사범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피해자 이전에 가해자였다.

“위짱! 우리가 해냈습니다!”

란코가 옆에 와서 기뻐해주었지만, 위소는 힘없이 웃고 말았다.

진검도봉황기쟁탈전이 시작된 시간,

일본 도쿄, 한 사설감옥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렸을 때,

“이런 잡녀르새끼들, 내가 무슨 올드보이야? 3년 동안 가둬두고, 만두만 먹이게? 머리 수술해주고 평생을 하와이에서 놀고먹게 해준다더니…….”

라고 한 남자가 문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남자는 검정색정장을 입은 또 다른 남자에게 조인트를 당했다.

바로 위소의 원수 강태식과 그의 동생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3년 동안 외부와 철저히 차단당한 상태로 갇혀 있었다.

조인트를 당한 강태식은 그대로 쓰러졌고, 동생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검은색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강태식은 그들에게 감히 덤빌 수가 없었다.

“강태식, 우리와 함께 한국에 간다.”

강태식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왜? 왜 한국에 간단 말이야?”

남자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태식과 그의 동생은 남자들에게 어깨를 제압당했고, 비명을 내지르며 개처럼 끌려갔다.

강남의 유명술집 ‘이화요정’.

위소와 표관장 그리고 기무라란코는 한국검도협회이사들과 만찬을 가졌다. 위소는 가방을 표관장의 차에 두고 내리려 하다가, 문득 알 수 없는 예감에 가방을 챙겨들었다.

“가방을 왜 들고 나오냐? 그냥 두지.”

“누가 가져갈까 봐서요.”

위소는 농담을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위소는 중앙에 앉아 사람들의 머리수를 세어보았다. 모두 53명이었다. 위소 오른쪽에 표관장이 앉았고, 왼쪽에는 기무라란코가 앉았다. 위소 건너편에는 회장모추용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모추용의 아내 박성은이 앉아 있었다.

“자, 모두 여기를 주목해주십쇼.”

모추용의 비서관이 식순에 의해 회식을 진행해나갔다.

“자, 식순에 의해서…….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장관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장관님?”

“음, 일어나야 하나?”

“앉아서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래.”

하더니, 모추용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아내가 웃었고,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위소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이가 55세라고 하기에는 20년은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배와 허리에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야생에서 거칠게 살아온 오크. 사람을 잡아먹는 오크가 바로 저렇게 생겼을 것이리라.

“하하하. 제가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해야 하는데, 나라일이 뭐가 그리 바쁜지 죄송합니다. 검도로 청춘을 보낸 옛 동지들 그리고 신성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모두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모추용이 자리에 앉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 다음 식순에 따라 진검도봉황기우승자에게 부상을 수여하겠습니다. 장관님.”

“음, 그래. 앉아서 해도 되나?”

“시상식은 일어나셔야 합니다.”

비서관이 웃으며 말했다.

“음, 앉아서 하겠네.”

라고 말하며 모추용은 다시 일어났다. 또 웃음바다가 되었다. 표관장은 위소의 엉덩이를 쿡 찔렀다.

“자, 수상자께서도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위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상은 모두 아시다시피, 일본의 명검 마사무네 입니다. 장관님의 보물 제1호! 여사님보다 더 사랑하고 애지중지하셨던 세컨마누라! 마사무네라하면 일본에서도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명검 중에 명검입니다. 자, 축하합니다.”

“멋진 경기였네.”

모추용은 두 손으로 검을 넘겼다. 위소가 마사무네를 받는 순간이었다.

“아, 나. 이런 잡녀르새끼들…….”

위소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목소리, 그 낮고 가는 철금성의 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위소는 눈을 번쩍 뜨고, 탁자 맨 끝에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보았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환호성도 터져 나왔다. 박수와 환호성 속에서도, 위소의 눈과 귀는 오로지 놈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선명하게 들려오는 놈들의 목소리.

“아, 시팔. 3년 동안 사람 가두어 두더니. 여기서 뭐 하자는 거야? 코흘리개 상 받는 거 가까이에서 보라는 거야 뭐야?”

“형님, 거시기 오래 묵혔으니까 계집 맛 좀 보여 주려나 본데요?”

위소는 보고 또 보았다. 놈들이 확실했다. 놈들이 건너편 맨 구석에 앉아 있었다. 위소의 심장은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곧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런 큰 식당에 계집들이 있나? 형님도 이런 곳은 처음이죠?”

“이 잡녀르새끼가 날 뭐로 보고. 옛날에 와봤어 새끼야.”

“형님, 계집 맛은 아무래도 스릴이지 않나요? 아무래도, 스릴이 있어야지.”

“이런 잡녀르새끼……. 스릴, 그렇지. 스릴이 있어야지. 아주 잘 아네. 그래야 여자는 꽉꽉 조이거든. 옛날에 좋았어.”

“옛날? 그 창녀말인가요?”

“그래, 그년 닳고 닳았을 텐데도 아주 맛있었단 말이야. 상황이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계집이 원래 맛있었는지 모르겠어. 그런 계집 또 없나 몰라?”

위소는 마사무네의 검병을 쥐었다. 그렇게도 간절히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위소는 오히려 침착해졌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로지 두 놈만 보이고, 두 놈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자, 수상자 소감 한마디 들어볼까요?”

모두 위소가 말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위소는 검을 잡아 빼고 있었다. 놈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다가, 은빛이 반사되자 위소를 보았다. 위소는 놈들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위소의 눈은 검신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뭐야? 저 새끼. 칼 자랑하는 거야? 야, 너도 칼 좀 빼봐.”

“망치는 있는데요?”

“됐다 자식아.”

위소는 검을 빼들어, 얼굴에 수직으로 가까이하고 자세히 보았다.

검은 대체적으로 깔끔했다. 흔히 있을 법한, -검을 장식하는- 기이한 주문과 기호 따위는 일체 없었다. 조형적인 장식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몸매가 빼어난 여인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특유의 선으로 신비감이 넘쳐흘렀다.

위소는 검병(손잡이)을 꼭 쥐었다. 걸레를 짜듯, 쥐고 비틀었다. 미지의 누군가와 악수하는 것만 같았다. 검신은 은빛을 퉁겨내고 있었다.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것 같기도 했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면서도, 섬뜩하리만큼 강해 보였다.

위소는 검신을 거울삼아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아빠의 얼굴로 보였다. 위소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하, 하고 입김을 불어보았다. 입김이 사라지며, 더욱 맑아진다. 위소의 고른 치열과 선홍빛 잇몸을 반사하고 있다. 위소는 숫돌자국(하몬)도 발견했다. 숫돌자국을 따라 날이 섰다. 그 숫돌자국을 따라, 무엇인가가 기어 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사념과 넋 그리고 눈물이었다. 칼은 베어야 할 대상이 명확하면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마사무네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위소는 란코의 등 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모두가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숨을 죽이고 소년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위소는 구석에 밀어둔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도복 아래, 가면이 눌려 있었다. 위소는 가면을 꺼내어 뒤에 감추고, 놈 앞에 섰다.

“너!”

하며 마사무네를 놈의 입에 겨누었다.

“뭐, 뭐야, 이 새끼.”

위소의 얼굴에 야누스처럼 미소가 생겨났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위소의 어깨가 회전했다. 그 회전은 손목을 중심으로 나선을 이루었고, ‘나선탄’이 터져 나왔다.

마사무네는 놈의 입을 파고 들어가 혀와 이빨을 따내버렸다. 입안을 도려내버린 것이었다.

“커헉!”

놈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빨이 소고기등심위로 떨어져 내렸다. 혀는 불판위로 떨어져 치익, 하며 익고 있었다.

“이, 이 새끼 봐라? 형님? 형님! 괜찮으세요?”

강태식의 동생이 벌떡 일어나 위소에게 덤벼들었다. 한국검도협회이사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옆으로 피했다. 위소는 달려든 놈의 오른손가락을 날려버렸다. 나선탄은 정확하게 손등을 파고들었고, 다섯 손가락만 도려내버렸다. 잘린 손가락 다섯 개는 뿔뿔이 흩어졌다. 각각 소금 기름장과 된장에 떨어졌다.

“크, 크악! 뭐, 뭐야! 이, 이 새끼가! 아이고, 나 죽네.”

놈들은 뒤로 물러났다. 검도를 평생 했다는 사람들이 꼼짝 못하고 굳어 있었다. 그들은 지금 막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대처능력 또한 발휘되지 않았다.

위소는 손가락을 날려버린 놈에게 다가가 목을 겨누었다. 칼끝이 목에 닿자 툭, 하고 피가 터졌다.

“왜, 왜 그래? 너, 너 뭐야?”

놈은 허수아비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위소는 상의를 찢어 벗었다. 상반신이 드러나자, 왼쪽가슴에서 갈비뼈까지 상처가 드러났다.

“내 이름은 탁위소다.”

“그, 그게 뭐!”

“이 상처를 보고도 날 몰라?”

“네, 네가 누군데?”

“내 아버지 이름은 탁위향! 내 어머니 이름은 박혜진!”

“뭐, 뭐! 그래서 뭐!”

“네 놈들이 망치로 때려죽인!”

위소는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킥, 이렇게 만날 줄이야.”

목소리가 바뀌었다.

“으악!”

놈들은 그제야 위소를 알아보았다. 두 놈은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부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위소는 고함을 내질렀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쌓여있던 한과 분노는 핵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은 화산의 폭발이요, 재앙이었다.

위소의 고함소리와 함께 뇌 안에 기생하고 있던 외계바이러스 ‘게슈탈트’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창문이 모두 터져 나갔다. 접시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음식물은 공중에서 분해되어 버렸다.

“위, 위짱!”

기무라란코가 위소를 부른 순간, 위소의 몸은 고양이처럼 뛰어 올랐다. 터져 나간, 창문 틀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위소는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놈들을 보며, 위소는 씩 웃었다.

타항, 위소는 발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이마 위로 한 방울 비가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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