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아빠!
위소야, 민폐다. 시간 봐라. 민폐도 엄연한 죄다. 이 세상의 모든 죄는, 결국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거니까. 물론, 그 강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까.
위소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입술이 씰룩거렸고,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못 참으면 오열하리라. 울어 피를 토하고, 토한 피 다시 삼키게 되리라. 위소는 고개를 숙였다. 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쥐약 먹은 개처럼 울며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개처럼 살아왔지. 네 아버지보다 더 서럽게 살아왔다. 네 아버지는 그래도 엄마라도 있었지. 난 처음부터, 엄마도 없었다. 날 낳다 죽었거든. 공부는 포기해야만 했다. 숙식을 제공해주고 수업료를 면제해주기에 검도를 시작했다. 헌데, 네 아버지 본드환각상태라는 이유로 종신형에서 10년으로 형이 줄더구나. 허참, 더러운 나라지. 그것도 서러운데, 자식을 천재로 키워내는 건 또 뭐야? 난 검도에만 매진했다. 기억해봐야, 뭐 하겠어. 검도, 그것이 유일한 해방구였지. 하지만 젊은 혈기에……. 부당함과 부패를 견디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버리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조직의 마수에 걸렸지. 난 나선문의 두 아들을 죽여 혈액을 얻었다. 멍청한 늙은이는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믿고 ‘나선력’을 넘겨주더군. ‘마지막제자’라나? 킥킥! 조직은 내 몸 안에서 유전자변이를 일으켜보았지만 나에게 ‘나선력’은 두 아들처럼 그저 쇳덩어리일 뿐이었어. 난 살기 위해 ‘나선력개발프로젝트’라는 짐을 짊어졌다. 허, 하지만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더구나. 내가 그렇게도 이기고 싶었던 라이벌이 내 여자를 아내로 차지했고, 내 머릿속의 폭탄을 쥐고 있지 뭐냐. 그래, 모추용 그 자다. 더럽게 못 생긴 그 놈. 잘 나가더구나. 난 컨트롤러를 빼앗기 위해, 이미 놈하고 뒹굴어 더러운 살 냄새가 나는 여자를 다시 만났어. 살기 위해 살아왔다. 살기 위해 사람을 죽였고.”
“킥, 어이 살인마. 네 놈의 사연 따위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거든? 구질구질해.”
이건 꿈이야……. 현실이 아니야…….
위소는 자기도 모르게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통제가 불가능했다. 아니,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빠가 남의 가정을 짓밟은 살인자였다니.
“탁위소……. 잘 들어라. 난 네가 아깝다. 네 머릿속의 폭탄은 내가 쥐고 있다.”
표관장은 컨트롤러를 작동시켰다. 위소는 갑자기 찾아온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신적인 충격과 함께 구토가 밀려왔다. 배속의 모든 것이 입을 통해 빠져나오고 있었다.
“위소야. 나와 함께 하자. 너와 내가 ‘나선력’을 완성시켜 시간을 되돌리는 거야. 네가 나를 거부하면 나는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끝까지 올리면, 너도 저 기무라란코처럼 머리가 터져 죽는 거야. 그리고 네 놈이 죽으면, 나도 끝이다. 팡! 하고 말이야. 조직은 실패에 용서가 없거든.”
“잡소리 집어치워!”
위소는 이를 악물며 일어나, 소리쳤다. 연기는 무덤을 파헤치고 다니다가, 밖으로 빠져나와 표관장과 연결되었다.
표관장은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였기에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연기는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변화라고 했지? 무엇을 보고 있는 거냐? 그것을 내게 말해줄 수 없겠니?”
위소는 표관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머릿속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미스터리란 말이야. 어떻게 거리에 널린 살인자들을 찾아내 잡을 수 있었을까? 조직은 ‘나선력’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얻게 된 거야. 그것만으로도 넌 이용가치가 충분하다. 걱정하지 마라. 넌 죽지 않을 테니.”
표관장은 위소에게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머릿속의 고통은 심해졌다.
“하……. 별 지랄을 다 했지. 별 지랄을 다 했어. ‘나선력’을 얻어 살아남기 위해 별 지랄을 다 했다. 하긴, 3도 놈들과 협력하길 잘 했어. 인간의 뇌파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한 감마파에서 알파파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거야. 노인네도(표운삼의 스승), 나선문의 두 아들들도 이런 조화는 부리지 못했어.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선력’에 관한 최초기록처럼, 똑같이 재현을 해보았지. 그것이 네놈에게 지독한 분노와 공포를 심어준 이유다. 물론, 복수도 해야 했고.”
위소는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표관장이 컨트롤러를 높이고 있었다. 순간, 란코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주사한 것은 백신이었다는 말.
“언제지? 언제 우리 몸에 그런 것을 집어넣은 거지? 기무라란코를 통해서가 아니었나?”
위소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만 했다. 표관장은 위소의 말을 딱 잘랐다.
“멍청한 녀석. 아직도 모르겠어? 아니면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냐? 그 계집애가 반기를 들고 일어선 7도 놈들에게 모든 정보를 빼돌리고 백신을 얻어냈어. 페노메논웨이브연구소는 애브젝트 3도의 하수인들인데, 그곳에 7도 놈들이 잠복해 있었던 거야. 기무라란코는 네 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목숨을 걸고 백신을 얻어냈단 말이다. 외계바이러스 ‘게슈탈트’는 네 아비가 죽고 네 어미가 강간당할 때 그 때 들어갔다. 나노폭탄과 함께, 네 놈이 똥을 질퍽하게 싸대고 정신을 잃었을 때 말이야! 알겠냐? 이 멍청한 녀석아.”
위소는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의문이 모두 풀리니 오히려 침착할 수가 있었다. 위소는 웃었다. 어둠의 끝은 어디까지일까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오늘 여기가 바로, 어둠의 끝이었다.
“키킥, 위소의 말을 전하마. 운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는 군. 누군가가 자신을 질질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제는 다 싫대. 모든 것이 다 추악하다는 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하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군.”
그래, 맞아.
위소의 돌변한 태도에 표관장은 의아했다.
“네 놈, 화나지 않아? 완전히 미쳐버린 거냐? 우리?”
“하지만 말이야. 난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데.”
“무슨 미친 소릴 짓거리고 있는 거냐! 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해! 넌 ‘나선력’을 위한 ‘게슈탈트’의 숙주! 어서 분노해! 그것을 다시 터트려봐!”
“흥,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이 녀석이 꼼짝하지 않는 걸?”
“충격이 너무 커서 미친 거냐? 위소. 그렇게 여유 만만할 때가 아니다. 넌, 선택해야 한다. 나와 함께 살 테냐? 죽을 테냐?”
“시끄러워!”
위소가 소리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표관장의 손에 쥐어진 나선력은 성게처럼 터져나갔고, 그 중 한 가닥은 표관장의 심장을 뚫었다.
표관장은 짐승처럼 비명을 토해냈다.
나선의 가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표관장의 몸과 용해되고 있었다. 표관장의 몸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선력’에 흡수되고 있었다.
표관장은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머리만 남아 위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은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넌 나를 뭐로 보는 거냐?”
위소가 표관장의 머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가면이 위소의 얼굴에 착 달라붙어, 안면근육과 함께 일그러지고 있었다.
“너, 너는 대체…….”
“흥, 인간들이란 누구나 다 두 얼굴을 가지고 있더군. 너희들은 그동안 내게 깊은 잠일 뿐이었어. 이제는 충실한 하녀가 되어야겠지.”
“넌, 위소가 아니구나. 넌 누구냐?”
“네놈들이 말하는 ‘나선력’의 주인이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지. 깨워줘서 고맙구나.”
표관장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비명을 내질렀다. 바보 같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자기 자신을 향한 조소 섞인 웃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은 뭉크의 작품 중 다리 위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의 몸은 이미 성게의 가시에 흡수되었고, 머리만 남은 상태였다.
“크하하,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
미지의 힘을 건드린 대가였다. 너무나 혹독한 대가였다. 표관장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늦었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위소도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모든 것이 싫어졌다. ‘나선력’의 보호막, 그 중심에서 위소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빠가 살인자라니.
위소는 지금, 잔혹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위소는 태아처럼 몸을 말고 웅크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 이 거대하고도 잔혹한 운명과 진실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집어삼키고 수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게슈탈트’라는 악마가 자신을 영원히 지배할 것이다.
위소는 외롭고, 고독했다. 두려웠다.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자체가 두려웠다.
위소는 웅크린 채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외로움과 고독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순간, ‘나선력’은 위소의 의지에 따라 시공을 뚫었다. 아빠와 곤충을 잡으며 다정한 시간을 보냈던 유아시절이었다. 나선의 회전에 따라 그 구멍은 커지고 있었다.
“케케, 바로 이거야. 이것을 보아라. 이것 또한 ‘나선력’의 작은 부분이다. 어때 환상적이지 않아? 어서 봐! 어서 일어나 보란 말이다! 네가 원한다면 시간을 되돌려주겠다. 대신 네 육체는 나에게 넘겨주어야겠지.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표관장은 목만 남은 괴물이 되어 위소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이미 표운삼이 아니었다. 위소의 몸에서 기생하고 있던 ‘게슈탈트’가 표관장에게 옮겨간 것이었다.
위소는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태아처럼 다리를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이 멍청한 녀석아! 어서 일어나서 보아라! 네놈들이 그렇게도 원했던 ‘나선력’의 위대함을! 모든 것을 되돌려주겠다. 넌 나에게 그 육체만 넘겨주면 돼!”
위소는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았다.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고,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3년 전 그 날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거대한 힘 앞에서 자신의 존재는 너무도 미약했다. 강도들 앞에서 너무나 약했던 것처럼.
“위짱! 위짜앙!”
기무라란코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위소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덤을 헤치며 자신을 찾아오는 기무라란코의 모습.
“이곳으로 되돌려줄까? 아니면 사랑 고백하던 이 순간으로 되돌려줄까? 나의 충실한 하녀여, 말하라.”
“저를 사랑하십니까?”
“묻잖아, 사랑 하냐고 묻잖아. 어서, 대답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이야!”
위소는 입을 꼭 다물었다.
널 사랑해.
라고 말하면, 또 어떤 진실이 나타나서 자신을 넘어뜨릴지 두려웠다.
“몰라요! 모릅니다!”
위소는 더욱 더 몸을 웅크렸다. 란코의 목소리가 들려와, 괴로워 버틸 수가 없었다. 악마가 란코를 협박해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난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란코, 더 이상 말하지 마. 제발 그만! 사악한 놈! 너는 지금 란코를 이용하고 있는 거야!
시끄러워! 나약한 놈, 넌 잠자코 있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어쨌든 저 년도 살기 위해 널 이용한 건 마찬가지잖아.
“보세요, 제발 보세요! ‘게슈탈트’는 위짱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그 모습으로 성장해 위짱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빼앗을 것입니다!”
“시끄럽군! 그놈이 누구인지 말해! 위소는 그놈만 원해!”
나를 위해서인 척 하지 마!
너를 위한 척? 이런 젠장! 알았어. 그만 두겠어. 다 그만 두겠어. 혼자서 잘해봐.
…….
왜 아무 말 못하지? 이봐,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고. 넌 나 없인 아무 것도 못해. 네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건 바로 나라고. 지금 저 년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가 없단 말이야. 좋아, 진정으로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 이대로 사라지겠어. 영원히. 말해봐. 내가 사라질까? 저 년의 입을 열까?
위소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넌 지금 가면을 벗을 수 있어. 어서, 벗어.
위소는 꼼짝하지 못했다. 오른손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봐, 네가 원하고 있잖아. 다 끝났어. 다 끝났으니까 넌 가만히 있어. 그러면 돼.
위소는 두 다리를 더욱 더 끌어 당겼다. 괴로웠다.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엔 그녀를 이용했고, 죽음으로 몰아갔고, 죽였다. 그래서 얻어진 결과가, 아빠의 두 얼굴이라니.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빠가, 남의 가정을 파괴한 살인자였다니.
위소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위소는 몸을 더욱 더 웅크렸다.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손끝 하나라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악마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위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악마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다 내주고 끝내야만 했다.
바로 그 때였다.
“위소야, 위소야?”
아빠가 부르고 있었다. 위소는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틀림없는 아빠의 목소리였다.
아빠?
위소는 아빠와 함께 곤충을 잡았던 앞동산을 헤매고 있었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빠가 곤충을 잡느라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