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26

#26 꿈의 대화

by 임경주

위소는 소리쳤다. 그러나 아빠는 듣질 못했다. 메뚜기를 잡은 아빠는 뒤돌아 위소를 불렀다.

“위소야, 위소야?”

작은 꽃 사이에서 아기 위소가 나타났다. 아장아장 기저귀를 착용한 아기는 뒤뚱뒤뚱 걸어 아빠다리에 안겼다.

“와, 봐라. 아빠가 메뚜기 잡았네.”

“메뚜, 메뚜!”

“옳지, 메뚜기!”

위소는 아름다운 부자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아기 위소를 들어 올려 목에 태운 아빠는 붉은 노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자, 위소야. 집에 가자. 엄마가 기다리겠다.”

위소의 눈앞에서 아빠가 사라지고 있었다. 위소는 다시 불렀다. 한번만이라도, 딱 한번만이라도 안길 수만 있다면.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

아빠는 듣지 못했다.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기 위소도 듣지 못했다.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청이 터져라 불렀지만, 아빠는 붉은 노을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위소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바로 그 때였다. 아빠가 뒤돌아섰다. 붉은 태양을 등지고 아빠는 말했다.

“위소야, 이놈아. 뭘 그리 고민하고 있냐? 그 가면은 이제 벗어라. 우리 아들 못 알아 볼 뻔했잖아.”

위소는 가면을 벗었다.

“아빠…….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 그 때처럼…….”

아빠는 대답대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빠의 목 위에 올라타 있는 아기 위소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빠, 아빠.”

아기 위소는 엄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파란 하늘 위로, 고무동력비행기 한 대가 하늬바람을 타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위소는 힘없이 웃었다.

“아빠, 저 거짓말을 했어요. 전 아빠 말대로 모험을 걸지 않았어요.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더 감지 못했어요. 전 용기가 없었어요. 그 날 이후로, 그 거짓말을 둘러댄 이후로……. 여기가 계속 아팠어요.”

위소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알고 있단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우리 사이에.”

“아빠…….”

“그래, 나 역시 널 속여 왔단다. 천벌을 받은 거지.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괴로운 것은 어쩔 수 없었어. 그래, 괴로웠단다. 네가 크면 클수록 더욱 아팠단다. 너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미안하구나. 그냥 그렇게 묻히길 바라고 살았어.”

“아빠…….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어요. 왜 이렇게 잔인한가요. 아빠가 원망스러운 적은 처음이에요. 전 지금 아무 것도 선택할 수가 없어요. 아빠의 죄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전 아무 것도 해낼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내가 죽였어요. 사랑한다고 말만 했어도 란코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녀를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 그녀의 말을 믿었지만 그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빠를 위해, 오직 아빠를 위해 복수를 해야 했기에 그녀를 이용했고, 결국은 죽였어요. 그런데 이게 뭔가요. 이제 와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 저 악마는 시간을 되돌려주는 대가로 내 몸을 원하고 있어요. 싫어요, 정말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잖아. 사실은 그게 아니잖니.”

“아빠…….”

“아빠는 네 맘 다 안다. 다시 그 끔찍한 시간으로 되돌아가기가 무서운 거지? 이 못난 애비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해도, 또 무력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까봐 그것이 두려운 거지?”

위소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위소야 괜찮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렴.

하지만 말이다.

한번쯤 용기를 내서, 모험을 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시도는 해보는 거야.

추락하면 어때?

괜찮아.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음.

어설픈 추진력은 양력에 무리를 주지만, 강력한 추진력은 모든 것을 극복할 거야.

하하하,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된 다고?

아빠는 물리 모르거든?

그래서 아빠는 말이야.

하늘 높이 날이 오를 거라 믿어.

봐라,

바람이 불잖니!


말을 끝으로, 위소의 눈앞에서 아빠는 사라졌다. 위소는 벌떡 일어났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표관장과 마주한 처음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다. ‘나선력’은 위소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것도 마사무네의 형태로 변형된 모습이었다. 손잡이와 코등이는 일체 사라지고, 시커먼 쇳덩어리 검신만 남은 형태였다.

위소는 표관장을 노려보며 검을 겨누었다. 표관장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쥐고 있던 금속이 검의 형태로 변해 위소의 손에 들려 있기 때문이었다. 표관장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기무라란코는 여전히 죽어 있었다. 표관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위소가 사준 양복은 그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위소는 가면을 벗어 던졌다.

표관장의 표정이 돌변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눈가에 광기가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네 놈에게 말할 수 없다. 궁금해 죽는 꼴 보고 싶거든.”

“하, 정말 궁금하군. 궁금해 죽겠어. 시간을 되돌린 거지? 맞지? ‘나선력’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없겠니?”

표관장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위소도 앞으로 나왔다.

“언젠가 나에게 말했지? 놈들을 사로잡으면 죽이지도 못할 미지근한 놈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아니야. 난 지금 여기서, 당신을 죽이겠어.”

“그게 네 아버지가 원하는 복수냐?”

“아니, 내 아버지는 원하지 않아.”

“그런데 왜? 왜 그런 막장의 길을 가려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란코도 원하고 있지.”

“허허……. 넌 나를 못 죽여. 이 컨트롤러를 올리면 넌 펑! 하고 머리가 터져 죽어.”

“그렇게 되면, 당신도 죽겠지. 우리처럼 머리가 펑! 하고 터져서 말이야. 차라리 그게 더 나아.”

“왜? 내가 왜 죽어?”

“다 알고 있어. ‘나선력개발’은 실패로 돌아갔으니 당신 직속상관이 컨트롤러를 올릴 테니까. 왜 내말이 틀렸어?”

표관장은 웃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어디까지 알게 된 거냐? 정말이지 너무 욕심이 나. 위소야, 우리 함께 하자. 함께 ‘나선력’을 개발해 시간을 되돌리고,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키자. 네 머릿속의 폭탄을 제거해주겠다.”

“아니, 틀렸어. 시간 따위 되돌리지 않아. 난 여기서 당신과 함께 죽겠어. 그게 내 아버지가 당신에게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이고 내 운명이야. 내가 마지막으로 해결해야할 숙제인거지.”

“뭐라?”

“왜,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까? 시간 따위 되돌리지 않을 거라고. 난 지금 여기서 당신과 함께 죽는다. 그러면 서로 비긴 거잖아? 맞지? 우리 저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서로를 미워하지 말자고.”

위소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나선탄’을 뿌렸다. 힘이 없어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힘이 있어도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또 어떤 잔혹한 운명이 나를 비웃으며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니, 함께 가자! 어둠의 끝으로.

“이런 멍청한 자식!”

콰하아앙!

나선탄이 터지는 순간, 표관장은 몸을 틀며 컨트롤러를 올렸다.

표관장은 왼쪽 어깨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고, 위소는 머리를 땅에 박고 쓰러졌다.

“커, 컥.”

표관장은 피를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왜…….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고 싶은 거냐! 왜! 왜! 왜!”

표관장은 악에 바쳐 소리를 내질렀다. 컨트롤러를 맥시멈까지 올리지 못한 그였다. 위소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래, 같이 가자……. 같이 가는 거야.”

표관장은 뻘뻘 기어, 떨어져나간 어깨를 주워들었다. 꽉 쥐어져 있는 컨트롤러를 빼내서 끝까지 올리는 순간이었다.

“이, 이럴 수가! 아, 안 돼!”

표관장은 자신의 뇌 속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나노로봇에 의해 눈이 커다래졌다. 표관장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직속상관이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아, 아직 안 죽었어! 놈이 안 죽었다고! 사, 살려줘! 살려줘! 제, 제발!”

펑! 하며 표관장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위소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무덤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쓸모없는 놈의 자식.”

모추용이었다. 모추용은 표관장의 팔에서 컨트롤러를 빼냈다. 위소의 손에서 ‘나선력’을 빼앗은 뒤 버튼을 낮추었다. 위소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네 놈의 손에 ‘나선력’이 들려 있었지? 형태도 변형되었어. 시간을 되돌린 거냐? 말해라. 말하면 살려주겠다.”

모추용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다시 컨트롤러의 버튼을 잡아 돌렸다. 위소는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시작된 고통에 바닥을 구르며 몸부림쳤다. 지옥을 몇 번이고 넘나들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교한 기계소리. 그 소리와 함께 모추용 역시 무릎을 꿇었다.

“커, 컥! 왜, 왜 나를!”

모추용은 무릎을 꿇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괴멸적인 치열, 매서운 눈매. 그의 눈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컨트롤러를 조작하고 있는, 자신의 직속상관을 찾고 있었다. 봉긋한 처녀가슴과도 같은 무덤의 지평선 끝, 붉은 태양을 등지고 산 능선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너, 너는……. 운삼의……. 마,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나의 직속…….”

그 말을 끝으로 모추용의 머리는 펑! 하고 터져버렸다. 위소 앞에 컨트롤러가 굴러 떨어졌다. 위소는 팔을 뻗어 컨트롤러를 잡았다. 살고자 하는 위소의 손은 그 희망만큼 떨렸다. 나노로봇의 움직임을 해지했을 때는, 산 능선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위소는 보았다. 다리를 절며 사라지는 실루엣을.

위소는 모추용의 손에서 ‘나선력’을 빼내,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나선력’은 위소의 의지에 따라 지팡이로 변해 있었다.

위소는 절뚝거리며 기무라란코 앞에 섰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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