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27

#27 게슈탈트의 세계

by 임경주

위짜앙. 위짱은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두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모르니까요. 죽음이 뭔지 알면, 전 죽을 수 있습니다. 모르니까, 죽음이 뭔지 모르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 말이 어딨어.

위짱은 두렵지 않습니까?

난 죽는 거 두렵지 않아.

음, 그럼 저 대신 죽어줄 수 있습니까?

으, 으응? 누가 괴롭혀?

호호호! 아니, 아닙니다.

누가 괴롭히면 말만해. 확, 혼내줄게.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위소는 란코를 안고 오열했다. TV에서 보았던 그녀의 얼굴, 나선도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밝은 표정. 감기는 정말 싫다며 재채기를 해대던 모습. 눈치 채지 못하게 백신을 주사해놓고, 깜짝 놀라던 표정.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주던 하얀 손. 자전거를 타고 졸졸졸 따라오던 모습. 피아노를 쳐 달라던 레고 글씨. 어설픈 입맞춤. 죽기 전까지도 자신을 걱정하며 백신을 투여하려던 그 모습…….

위소는 란코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신의 손에 얻어맞아 퉁퉁 부은 얼굴과 화산분화구처럼 터져버린 정수리를 보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위소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분노였다. 지독한 한과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위소는 울어 피를 토했다. 하늘에서도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내린다. 란코의 얼굴을 닦아준다. 위소는 손을 들어 란코의 뺨을 쓰다듬었다.

바로 그 때였다.

“케, 케켁!”

위소는 뒤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표관장이 살아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그는 몸을 비틀거렸다.

“호, 놀라워라. 나도 ‘게슈탈트’가 활동하는 건가?”

표관장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있었다. 한쪽 팔이 떨어지고, 정수리가 폭파된 그 모습은 악마가 따로 없었다.

위소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 잘 살아났다.”

위소의 의지에 따라 지팡이로 변했던 ‘나선력’은 망치로 변하고 있었다. 위소는 가면을 주워 들고, 표관장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깜빡했어. 되돌려주지 못한 것이 있었거든.”

위소는 표관장에게 가면을 착용시켰다. 가면은 표관장의 안면근육을 따라 얼굴전체를 감싸며 꽉 달라붙었다. 그것은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순간, ‘게슈탈트’가 실체화 되어, 표관장의 눈을 뚫고 빠져나오려하고 있었다.

“놈들을 붙잡았을 때, 한 놈이 왜 없나 했어. 내 가슴에 칼을 그은 바로 네놈.”

“케, 케케! 그래, 바로 나야. 불 지르지 않은 것만도, 고마운지 알아라.”

표관장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눈에서 괴물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만큼은 관음이요, 묘음이요, 무의식의 형상일 뿐이지만, 그 괴물은 일단 눈에서 빠져나오면 실체화된다.

표관장이 손을 들어, 눈에서 빠져나오는 괴물을 잡아 빼는 순간이었다. -괴물의 머리는, 표운삼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였다-

위소는 망치를 들어, 표관장의 안면을 향해 내리쳤다. 내리치고 또 내리치자, 광대뼈가 함몰되며 솜뭉치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구가 파열되고 뒤덮이며, 괴물이 몸부림쳤다. 괴물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 표관장의 뇌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래야 서로 비기는 거야!”

위소는 소리쳤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도해보자,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하는 거야! 잘못된 모든 것들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놓는 거야.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악몽을 꾸겠다.

순간, 위소의 손에 들린 망치는 또 다시 성게처럼 터져나갔다. 가시들은 위소의 손등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만나, 바닥에 선을 그었다. 선은 바닥을 넘어, 공간으로 번졌다. 그 선은 피아노를 완성하고, 창문을 완성하고, TV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창문이 만들어졌고, 이삿짐을 포장해두었던 박스도 만들어냈다.

‘나선력’에 의해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소의 선택이었다. 위소의 용기였다. 나약했던 시절,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제 위소는 깨달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용기를 내서 다시 시도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과거가 어쨌든, 악마에게 육체를 완전히 빼앗긴들, 피아노 밑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라도, -그런 것은 모두 어설픈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기에- 시도는 해야만 했다. 추락하더라도, 고무줄을 더 많이 감는 모험을 걸어야만 했었다.

어설픈 추진력은 양력에 무리를 주지만, 강력한 추진력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봐라, 바람이 불잖니!

위소는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가 잃어버린 용기를 회복하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3년 전, 5월 5일 어린이 날.

위소는 잠에서 깨어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에 귀를 기울이니, 낯선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뭐야, 잠겼네? 아니구나? 이런, 허허! 문고리를 잡고 있었네?”

위소는 안에서 고장 난 문고리를 꽉 잡고 있다가, 그대로 밀려 나가 떨어졌다.

“이런, 잡녀르새끼가.”

위소는 머리카락이 잡혀, 질질 끌려나왔다. 끌려오는 중에 피아노덮개를 잡고 버텼다가 복부를 얻어맞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위소는 뻘뻘 기어 피아노 밑으로 숨었다.

“킥! 이 새끼 쥐새끼처럼 숨는 거 봐라?”

위소는 이빨이 덜덜덜 떨렸다. 두려움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잘 들어. 네 엄마는 창녀였고, 네 아비는 킥! 본드쟁이에 노름꾼에 인생개차반이었거든?”

위소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순간, 손목에 채워진 끈이 보였다. 이게 뭐지? 언제 이런 것이 손목에 채워져 있었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손등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위소의 콧구멍 속으로 흡입되어 뇌에 도달했다. 순간, 3년간의 기억이 폭풍처럼 위소의 뇌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위소는 책을 사진 보듯 찍어본다. 1분에 일 만자를 처리하는 뇌의 정보능력처럼, 3년간의 기억은 활자의 폭풍과도 같았고, 매스컴의 폭풍과도 같았다.

위소는 1초 동안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정리되지 않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용기를 내라는 것.

“위소야, 위소야!”

아버지가 머리채를 붙잡히는 순간, 위소는 옆집 아저씨가 생각났다. 자신의 피아노소리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던.

위소는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났다. 피아노덮개를 열었다.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열손가락이 88개의 건반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이런 잡녀르새끼가!”

위향을 향하던 망치는 위소의 정수리에 적중했다. 잘 익은 수박이 벌어지는 것처럼, 두개골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타격이 이어졌다. 망치가 눈 밑에 적중했다. 광대뼈가 솜뭉치처럼 함몰되었다. 망치가 귀 밑을 때렸다. 어금니 두 개가 부러져 목구멍에 걸렸다.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목구멍에 걸려있던 이빨은 식도를 통해 넘어갔다.

망치가 눈을 때렸다. 번쩍! 하며, 왼쪽 눈에 불이라도 붙은 기분이었다. 안구에 출혈이 발생했다. 실명한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위소는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위소는 피아노건반을 계속 휩쓸며 소리쳤다.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고서, 피아노건반에 이마를 찍었다. 쿵! 쿵! 쿵!

위소는 계속 피아노건반을 휩쓸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울려 퍼진다.

“피아노에서 떼어내! 병신들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위소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내질렀다.

몸이 붕 떠올랐다. 창문에 내던져졌을 때, 유리창이 부서지며 날카롭게 날이 선 부분이 등을 찔렀다.

못다 운 피아노여운이 계속 들려왔고 위소는 벽에 다시 내던져졌다. 망치에 턱이 산산조각 났다. 힘없이 부서졌다. 발끝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뚫고 들어왔다. 다시 창문에 내동댕이쳐졌다. 튀어나온 못이 허리를 찔렀다. 지독한 고통이었다.

“이런 잡녀르새끼.”

위소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뻘뻘 기었다. 피아노의자를 잡고 일어서, 배를 깔고 누웠다. 피아노의자에 뻗어 누워 있자, 눈에서 피가 쏟아져 방바닥에 수직으로 떨어졌다. 통증이 배를 훑고 지나가 폐를 쥐어짰다. 위소는 생각했다. 내가 언제쯤 다시 숨을 쉴 수 있을까. 아버지가 비명을 질러댄다. 엄마가 비명을 질러댄다. 할머니가 울부짖는다. 위소의 얼굴 한쪽이 놈의 발끝에 채였다. 손가락들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들어와 움켜잡는다. 머리를 뒤로 제친다. 망치가 얼굴을 덮었다. 코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고통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틀니처럼 이가 몽땅 빠져버린 것만 같았다. 다시 발로 걷어 채이자, 엄마가 비명을 내질렀다.

엄마의 비명소리는 무척 크고 길었다. 위소는 순간 빛을 보았다.

옆집의 불이 켜졌다.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틀렸어, 철수해!”

“젠장!”

두 놈이 먼저 거실창문을 부수고 도망쳤다. 한 놈이 위소 앞에 남아있었다. 위소는 웃음이 나왔다. 무너진 정수리, 함몰된 광대뼈, 부러진 어금니 두 개와 부서진 턱뼈와 코뼈.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얼굴로, 위소는 웃었다. 자신이 강도들을 물리치고, 가족을 살린 것이었다. 위소는 너무도 기뻤다.

“우습냐?”

대통령가면을 착용한 범인이 물었다. 그는 홀로 남아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

범인이 다시 물었다.

“네, 표관장님.”

위소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저절로 튀어나왔다. 위소의 대답에 범인은 꼼짝하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범인은 머리를 쥐여 잡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범인은 거실바닥을 벌벌 기다가, 머리가 펑! 하고 터져 죽고 말았다. 위향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위향은 아내와 어머니를 가슴에 꼭 안고 눈을 가려주었다.

위소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두 범인 역시 마당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죽어 있었다. 위소는 대문을 열고, 도로 밖으로 나갔다. 모퉁이를 돌자, 응급차가 있었다.

응급차에서부터 어떠한 기운이 위소에게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위소는 알 수 없는 힘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발을 박찼다. 응급차 문을 열자, 한 명의 사내가 있었다. 바로 모추용이었다.

“어, 어떻게 여길 알고?”

위소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꿈인지 생신지.”

모추용은 재빨리 검을 빼들어 위소에게 겨누었다. 마사무네, ‘나선력’이었다. 바로 그 순간, 모추용의 눈은 위소의 머리 뒤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안 돼! 제발!”

모추용은 마사무네를 떨어트리고 머리를 부여잡더니, 무릎을 꿇었다.

“이럴 수는 없어! 기회를 줘!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모추용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그에게 기회는 없었다. 모추용의 머리가 펑! 하고 터지는 순간, 위소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위소는 뒤돌아보았다. 언덕 위, 다리를 절며 사라지는 실루엣이 하나 있었다. 위소는 그 실루엣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도로 건너편, 청계천에서부터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위소는 마사무네를 집어 들었다. 마사무네를 집어든 순간, 또 다시 모든 기억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위소는 휘청거렸다.

두서없이, 한꺼번에 출현한 3년간의 기억은 뇌에 강력한 임팩트를 주었다.

“위소야, 위소야? 너, 몸이……. 괜찮은 거냐?”

아빠가 물었다. 위소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기분은 좋아요. 너무 너무 좋아요.”

위향은 위소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난장판에 기분이 좋다니.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위소는 범인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냈다. 거기에는 표관장이 머리가 터져 죽어있었다. 위소는 그 얼굴을 한참동안 내려보다가, 몸을 뒤졌다. 상의 안주머니에서 컨트롤러 하나를 발견했다. 위소는 그것을 손에 꼭 쥐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은 안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위향도 위소를 따라 표운삼의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다가 눈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더니,

“위소야, 아무리 봐도 너 상태가…….”

위향은 아들 걱정에 어쩔 줄을 몰라, 뒤가 마른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아빠, 꼭 할 말이 있어요.”

“위소야, 말을 아껴라. 여기 누어라. 119를 불렀으니 금방 올 거야.”

위소는 피아노의자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아빠, 지금 꼭 말해야 해요. 저, 오랜 전에 거짓말을 했어요.”

“무슨 말이냐?”

“옛날, 초등학교 때. 고무동력비행기 날리기 시합했었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 때, 나 사실 아빠 말대로 하지 않았어요.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내 머리만 믿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가 탈락한 거예요. 아빠 말대로 했어야 하는 건데. 후회 돼요. 그 뒤로 여기, 가슴이 계속 아팠어요.”

위향은 아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아빠도, 할 말이 있다.”

위소는 아빠의 두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눈 안에는 진실을 고백하려는 용기가 담겨 있었다.

“아빠가 너 만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했단다.”

“아빠……. 저 졸려요. 나중에 들을 게요.”

“으, 응? 그러냐. 그래.”

위향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위소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기억이 꿈이든, 현실이든……. 그것은 무척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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