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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동댁 Jan 06. 2022

10년 만의 면접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 당연히 직장으로 복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주변 지인들도 그랬고, 직장동료들도 그래 왔기에.

그런데 나는 되돌아 갈 곳이 없어졌다. 첨부터 알고 출산휴가를 들어왔다면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 텐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지 않을 수 없었다.

직장은 지금 기업 회생절차 개시 상태이다.  한 달 안에 답이 나긴 날 것이다. 파산 일지, 아님 고! 를 할 수 있을지. 파산이라면 이제 정말 끝이지만 파산이 아닐 시 또 끝없는, 그리고 답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어 그 끝은 미련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집에서 아기 돌보며 그 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직장동료 몇은 월급도 밀린 채 힘겨운 싸움을 하며 그 지리멸렬한 출근을 이어가고 있다.  

아,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절대 어려운 이 일은 좀처럼 끝이 나질 않는다.



아이 재우다 같이 잠들어 버린 남편, 친정엄마 역시 일찍 잠에 드셨다. 밤 10시.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  없는 시간을 쪼개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이력서에 넣을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었는데 그 사진관에서 보내준 사진 파일을 열어보았다.

아이 낳고 백일 무렵부터 어디 아픈 사람처럼 숭숭 빠져버리던 머리카락이 하나같이 죄다 일정한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 잔디인형 마냥 삐져나온 머리카락과 드문드문 나던 흰머리카락도, 임신 호르몬으로 짙어진 기미는 화장을 해도 그 흔적이 남아 참 우울했었다. 하지만 수정본 파일엔 생기 있고 흰머리카락은 검게,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온데간데 사라진 모습의 나 아닌 내가 있었다.

우습게도 더럭 겁이 났다. 이 사진을 업로드해도 될까. 다들 이렇게 하는 거겠지? 하는 마음이 스쳤다.

온라인 입사지원서는 처음인 데다가 이력서를 거의 10년 만에 쓰다 보니 뭘 적어야 하는지, 왜 이리 헷갈리게 만들어 놨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력서 한 통을 보냈고, 이틀 후 연락이 왔다. 내일 면접 보러 오라고.

다행히 이번 주는 친정엄마가 계셔서 아기를 맡겨놓고 면접을 보러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제법 큰 회사였는데 오너가 면접관이었다. 핸드폰 메모장에 구구절절 적어놓은 자기소개, 지원동기, 경력 관련 등등이 무색하리만큼 하나도 말하지 못했다. 실무진인 만큼 솔직하고도 직선으로 들어오는 질문들에 당황하긴 했지만 조금씩 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곳 사정은 녹록지는 않았다. 직원들 팀워크에 문제가 생겨 몇 달 전에 전부 교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나보고 나이도 많고 경력도 있으니 이 곳에서 실장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그게 아니라면 8살 어린 실장에게 오더 받으며 직장생활 가능하겠냐고.

나를 좋게 봐준 것은 감사한 일이나 그것은 내가 일을 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 이력이었다. 한 곳에서 1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한 데에 대한 대우.

하지만 15년간 나는 고작 주임 딱지 하나 달았을 뿐이지, 막내 수준에서의 시키는 일들만 해왔을 뿐이었다.

부담이 됐다. 이 회사의 일은 실로 어려운 일들은 아닌 것 같았으나 나는 부서를 옮긴 적이 있어서 십여 년 전에 했었던 일들을 기억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몸으로 익힌 일들이라 막상 또 해보면 터득할 것이나, 경단녀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공백이기에 두려웠다.

당황하기도 했고 어물어물 고민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3일의 시간을 줄 테니 남편과 상의하여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연봉협상도 하지 못하고 명함 한 장 받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고민이 이어진다. 그리고 아기를 바라본다. 얘를 놓고 일하러 어떻게 가지,, 워킹맘의 고민이 내게도 시작된 것이다. 실장으로 갈지 아닐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나는 직장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집 매매를 하느라 대출금도 많아서 일을 해야 하는데, 아직 10개월도 안된,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이제 조금씩 배밀이를 하는, 조금 늦는 이 아기를 두고 일하러 나갔다가 더럭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비빌 언덕도 없는데.

순간 서럽더니 이내 눈물이 뚝뚝 흘러버린다.


이제 이틀의 시간이 남았다.

내 직장이 거기가 맞을까? 내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우리 아기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업급여라도 받으며 조금 더 버텨볼까?

그렇게 버티고 나면 내 나이만 한 살 늘어나 취업이 더 어렵진 않을까? 집 팔아 대출금 털어버리고 맘 편히 경기도로 이사 가서 아기를 좀 더 키울까?

오만가지 글로 채 적지도 못한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켜있다.

이 모든 고민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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