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동댁 Jan 04. 2022

아무튼,인디밴드




강원도 삼척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나고 자랐다. 시골이라 중, 고등학교 편가를 것도 없이 친구라 하면 기본 10년이다. 이 고향친구 중 서울에서 자주 만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 둘이 있다. 오랜 우정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에,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그래서 이들이 내게 뭔가 하자고 하면, 새로운 것에 선입견이 많은 나지만 무조건 고였다.



 한번은 고향친구가 뮤직 페스티벌을 가자고 했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이라고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건데, 도시락을 챙겨 잔디밭에서 인디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노는 거란다. 그게 뭔지 알 리 만무하나 친구와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며 수다 떨며 놀 수 있다는 생각에 거금 7만원을 투자했다.

친구는 내게 숙제를 내줬는데 라인업이 이러이러하니 틈나는 대로 많이 듣고 와야 더 재밌을 거라 했다. “라인업은 또 뭐야, 야 그냥 니가 알아서 해.” 고구마를 쪄갈까, 참치김밥을 쌀까, 사먹는 커피는 비싸니 보온병과 카누를 챙길까 등 내 머릿속엔 온통 도시락 생각뿐이었다.

 


 공연 날이 왔다. 놀이공원에서나 볼법한 종이 팔찌를 손목에 채우고 나니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듯 기쁘고, 기분은 한층 더 들뜨기 시작했다. 가족 소풍이 열리는 가을 운동회 마냥 우리는 돗자리를 펴고 주섬주섬 먹을 것부터 펼쳐놓고 주변을 탐색했다. 사람들은 눕기도 하고, 일어나 점프를 하고, 탄성을 지르며 그다지 잘 추지도 않는 춤을 추기도 했다. 몸놀림이 촌스럽든 아니든 남 신경 쓰지 않고 즐기는 모습이 퍽 낯설었다. 나는 이런 공연이 처음인데, 서울사람들만 아는 문화인가?

저렇게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 이번이 몇 번째일까,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만난 것만 같았다.

 

 자극적인 노래가사가 난무하는 대중가요와는 달리 인디밴드 음악은 가창력보다는 가사가 남달랐다.

괜찮지 않은 내 삶을 응원한다 하고, 취미는 사랑이라 하질 않나, 특별할 것도 없는 가사 내용이 꽤 심심한데 자꾸만 듣고 싶었다. 밍밍했던 평양냉면에 빠진 후로는 스텐 그릇 바깥에 서린 물방울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냉면 국물이 푹 우린 사골육수인 마냥 끝까지 들이키게 되듯 말이다.

 

 그렇게 공연을 통해 인디밴드를 만난 이후 닥치는 대로 그들의 인기곡 모음부터 MP3 플레이어에 담았다. 출근길에는 물론, 회식 후 적당히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도, 토요일 근무 후 버스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듣는 인디밴드 음악은 나의 더없는 친구가 되어 약속 없는 주말의 외로움을 달래 주곤 했다.

 

 이후로도 여가를 즐기는 삶의 모습은 조금씩 바뀌었다. 전에는 카페나 서점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여가시간을 보냈었다면, 기타를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인디밴드 콘서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동료와 탈의실에서 나누는 대화 중 주말에 뭐했냐는 인사는 늘 빠지지 않는데, 콘서트 다녀왔다고 하면 누구? 하며 적극적으로 묻다가도 이름을 얘기했을 때 알아봐 주지 않는다 해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년을 누구에게도 그 기쁨을 뺏기지 않을 듯 살았으나 임신과 출산, 육아가 휘몰아치며 오프 공연 관람은 중단되었다. 대신 요즘엔 아이를 재우고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보거나

‘슈퍼밴드’ 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비록 라이브 공연은 아니어도 둥가둥가 튕기는 베이스 기타소리와 칭칭챙챙 땅이여 꺼져라하며 힘차게 내리치는 드럼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행복해진다.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내 시간이 된다 해도 공연을 갈 수가 없는 실정이다.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기라도 한다면 내 원 픽은 인디밴드 공연 가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길고 긴 터널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