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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동댁 Jan 26. 2022

지방 살이 서울 살이

회사 다닐 때 문 과장님은 명절에 차 막히며 시골 내려가는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평소에 내게 다정한 말 한마디 없다가도 명절 전날이 되면 반차 쓰고 내려가라며 성화였고, 오가는 길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묻고는 배시시 웃으시곤 했다. 무언가의 사정으로 더 이상 명절에 갈 곳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명절에 아무 데도 안 가는 게 소원인데, 나도 나이가 들고 갈 곳이 없어지면 저런 기분이 들까 싶었다. 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을 보는 시선이 참 낯설었다. 


19살까지 강원도 시골에서 살면서 서울에는 딱 두 번 와봤었다. 초등 5학년 때 아빠 회사에서 자녀들을 서울로 며칠간 연수를 보내 관광명소 몇 곳을 방문했었다. 서울 도심에 들어선 버스 안에서 63 빌딩과 8차선 도로, 긴 다리들, 몇 분후면 바뀌는 신호등을 보며 도대체 어디서 사람들이 저리 나오는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었다. 방학이면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 간다며 자랑하던 친구가 갔던 곳이 여기는구나, 벌어지는 입을 속으로 삼켰다. 

두 번째 방문은 고2 때 담임선생님이 휴일에 버스를 대절해 서울 소재 유명 대학교를 탐방하러 왔었다. 시골에서 자라 살기에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으니, 예쁜 캠퍼스가 있는 대학을 보고 나면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쩍 생길 거라 하셨다. 새벽 6시에 출발해 아주대, 고려대, 경희대만 찍고 밤늦게 내려왔는데, 서울대 갔다고 학교 정문 플래카드에 커다랗게 이름이 붙었던 선배가 길을 안내했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시골에 살며 서울을 떠올리는 건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저녁에 멀쩡히 재밌게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보는 사람에겐 선택지도 없이 갑자기 지역민방으로 넘어가고, 라디오도 여지없이 지역별 밤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두 시의 데이트를 듣다가도 마지막엔 을지로가 꽉 막히고 양화대교 소통이 어렵다는 등의 서울의 도로교통 정보를 들어야만 했다. 서울 인구가 아무리 많다 쳐도, 차가 도대체 얼마나 막히길래 전국 방송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서울이란 궁금하면서도 못마땅한 곳이었다. 

고2 담임선생님의 대학 탐방 효과로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었고, 큰언니와 함께 오피스텔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과 친구들 셋이 자취방에 놀러 와 언니가 햄버거를 사 먹으라며 돈을 주었는데,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를 가본 적이 없던 나는 시킬 줄 몰라 세트메뉴 4개를 주문해 다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냥 알아서 줄 것이지, 사이드 메뉴에 음료는 뭘 할 거냐, 먹고 가냐 가져가냐면서 쉴 틈 없이 빠르게 묻던 직원에게 그만 질려버렸다.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친구 마중 가려 영등포역에 갔는데, 초행길이라 잘못 내리고 말았다. 도무지 길을 모르겠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여럿에게 저기요 하며 말을 걸었으나, 전혀 쳐다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뿐. 덕분에 한동안 근처를 헤맸던 생각이 난다. 우악스러운 말투를 쓰는 시골 사람들과 달리 서울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다고 했는데, 내 목소리가 작았을까, 왜 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리고 두려웠다. 도무지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곳에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지가. 


분명 일자리도 많고, 다양한 문화, 복지시설, 교육 인프라 등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대출금에 허덕일 때면, 고된 서울 살이에 지쳐 아이 키워놓고 지방에 가서 살자고 남편과 얘기하곤 한다. 나도 안다. 그냥 삶이 지치는 거지, 어디든 사는 거야 고만고만하지 않겠냐고. 시골과 서울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각각 같아진 날이 왔는데도, 여전히 시골을 그리워하는 서울 쥐 마냥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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