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남편은 아기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렸고, 혼자 티브이를 켜놓고 핸드폰을 만지작대다가 이마저도 공허하여 다 꺼버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갑자기 아기 낳기 전까지 즐겨 듣던 인디밴드 음악이 몹시도 그리워져 음악을 켰다. 오밤중에 갑자기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마냥 동네 개천가를 걷기만 했던 그때. 가장 좋은 나이였던 20대 중후반 시절이었다.
가벼웠으나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순수하고 싱그러웠던 밴드 음악에 금세 빠져들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내 힘으로는 어쩌지도 못하는 문제들은 늘. 매일. 언제나 산적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걸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 저 생각을 내 걸음 뒤로 훌훌 날려 버릴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내 주변에 같이 걷는 타인들은 왜 이곳에 나와 걷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산책, 운동, 혹은 나와 같은 이유로 저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퇴근하고 을지로에서 안암동까지, 학원을 마치고 종로 3가에서 보문동까지,,
오늘은 이 골목으로, 내일은 저 골목으로 이리저리 겁 없이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저녁을 먹고 또 집 주변을 걸었던 거였다.
은행나무에 아주 조그마하게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하고, 개나리와 목련이 곳곳마다 가득 풍성했던 3,4월을 지나
개천가 분수가 켜져 아이들이 뛰놀던 풋풋한 여름을 지나고,
은행 가득 떨어지는 향기 뿜 뿜 가을을 지나고 개천 물마저 열려버린 차가운 공기의 겨울을 차례로 보내고 나면
나는 어느새 또 자라 있었다.
향긋하고 보기만 해도 좋은 활짝 핀 꽃들을 보며
나에게도 이런 시기가 있었나? 지나온 건 아닐까? 아직 이겠지를 늘 떠올리며, 목련이 빵빵 벚꽃이 빵빵 터지듯 그런 날이 내게도 와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이 한순간에 그렇게 터져버리길... 아 생각만 해도 후련해지는 것 같아.. 했던 그 시절.
이런 생각과 감성을 더해주었던 것은 늘 이 밴드 음악이었다.
그중에서도 페퍼톤스.
신나고 따뜻하고 행복해져.
우울했던 그 시절 함께 해줘서 그 시간들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