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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동댁 Feb 21. 2022

5세의 사회성

마지막이 좋아야 하는 이유

어제 감통 수업을 종결했다. 치료사의 입에서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내 임의로 종결했다.

그동안 많은 고민이 있었다. 웩슬러라는 아이 지능 검사 결과(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쓸 예정) 인지는 평균상으로 나왔고, 늦게 터진 언어치고는 상당히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사회성 저하, 상호작용 부족으로 나와서 이 부분을 다른 수업으로 보강해야만 했다. 웩슬러 검사를 담당하셨던 임상심리사는 놀이치료와 짝 치료, 그리고 pcit라는 조금 낯선 치료법을 소개해주었고, 아이 인지가 좋은 것은 그만큼 예후도 좋다는 뜻이니 지금껏 해왔던 대로 열심히 해주면 금방 좋아질 것이란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 길로 나는 놀이치료 수업에 아이를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짝 치료나 그룹치료를 해야 하는데, 4~5세에 짝 치료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가 아이의 수준에 상응하는 짝을 찾기도 어렵기에 일단 일대일로 하는 수업이라도 시작해야만 했다.

1회 수업에 12만 원이나 하는 pcit치료는 치료센터가 많지도 않았다. 아이 수업 전에 부모 단독 상담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어린이집 다른 반에 확진 아동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어서 가정보육 중이라 당장 상담받으러 가기 어렵다고 하니, 줌으로도 가능하다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직원의 말투에 나만 뭔가를 갖지 못한 것만 같은 이상한 불안함을 느꼈다.  아이와 분리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담이 가능이나 할까, 집중해서 대화나 나눌 수 있을까, 이 상담비용 또한 8만 원이라는데 본전 생각이 나서 엄두가 나지 않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좋지 않다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돈이야 들던 말던 기둥뿌리 흔들린다 해도 아이에게 좋다고 하면 달려드는 게 부모 아녔던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기존에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 센터여서 그런지 다행히 바로 놀이치료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감통 치료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대화를 남편과 나눴다. 아이가 아직 대근육이 또래만큼 완벽하게 올라오진 않은 데다, 워낙 좋아하는 수업이라 계속해주고 싶었다. 1회에 5만 원 하는 금액이 부담이 된 게 컸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근육이 그렇게 안 좋은 지는 몰랐고 촉감에 민감한 데다가 까치발을 드는 등 감각 자극하는 행동들을 자주 하는 게 신경이 쓰여서였다. 그리고 아이의 발달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신체 발달과 더불어 감각 처리하는 뇌 기관이 발달하면 언어도 그만큼 올라온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감통 치료사에게 그동안 배웠던 팁들, 유튜브와 도서관에서 관련 책들을 빌려 내가 집에서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치료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지능검사 결과부터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음 주까지만 수업받겠다고. 그걸 전하면서 주책맞게 눈물을 흘렸고, 그동안 선생님과 좋은 관계였기 때문에 나를 충분히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었다. 과제가 주어지면 잘 안되더라도 열심히 하는 아이 덕분에 자신도 많이 힐링이 됐었다고, 아이의 성격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발전하고 더 좋아질 거라고 그렇게 마무리지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치료사와는 얘기를 잘 마쳤고, 데스크에 그 얘길 했더니 대뜸 화를 냈다. 치료 전에 미리 한 달치를 결제하는 시스템인데, 적어도 4주 전에는 언질을 줘야 한단다. 가뜩이나 울고 나와서 감정도 좋지 않았는데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임의대로 종결을 했다는 문장에 사인을 하란다.  굴욕감마저 느끼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있었던 일들을 토해내듯 말을 했더니, 이제는 남편마저 뭐라고 한다. 내 돈 주고 하는 건데 왜 그런 소리를 듣고 오냐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좀 더 강하게 마음먹을 순 없냐고 소리친다.  남편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가장 속상까. 센터에서도 치이고 남편한테서도 한 소리를 들은 나일까,  당하고 있었던 나를 지키지 못한 남편일까, 아님 좋아하는 수업을 갑자기 참여하지 못하게 된 아이일까.

아이의 사회성을 말하기 전에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남편보다 더 길게 직장생활을 했던 내가 사회성이 더 좋은가? 아닐 거다. 아이를 키워낸 육아환경에는 큰 퍼센트가 차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쨌든 아이의 부족함에 내 탓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저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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