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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2. 2016

기호학으로 보면 더 흥미로운 '친절한 금자씨' [1]

박찬욱 -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 박찬욱(2005)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금자'(이영애)는 스무 살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된다. 어린 나이,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검거되는 순간에도 언론에 유명세를 치른다. 13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보내는 금자. '친절한 금자씨'라는 말도 교도소에서마저 유명세를 떨치던 그녀에게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열심히 도와주며 13년간의 복역생활을 무사히 마친다.

  출소하는 순간, 금자는 그 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해온 복수 계획을 펼쳐 보인다. 그녀가 복수하려는 인물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백선생(최민식). 교도소 생활 동안 그녀가 친절을 베풀며 도왔던 동료들은 이제 다양한 방법으로 금자의 복수를 돕는다. 이금자와 백선생. 과연 13년 전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복수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복수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1. 낯설게 보기

낯설게 보기라고 번역되는 데페이즈망이라는 예술 기법이 있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낯익은 대상을 낯선 공간으로 떼어내는 방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그저 무심코 바라보고 지나치던 일상적 대상물을 낯설게 봄으로써 허를 찌르는 것은 예술에서는 미와 쾌의 새로운 차원을 열게 해준다. 그리고 기호학에서도 낯선 시선은 현실에 새로운 차원을 열게 해준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은 좋은 것이다. 원래 그러하던 것처럼 흘러가게 두어도 당장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문제의식이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모난 것으로 여겨진다. 모난 것은 정 맞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러우면 안 될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에서조차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확히 무엇이, 왜 부자연스러운 것 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자기 세계를 구성하는 의미와 해석의 주체성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생활 세계에서 기호학적인 관점은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바로 저 ‘문제적 자연스러움’의 패거리들, 모든 기호와 코드를 낯선 시선의 영역으로 몰아내기 때문이다. 그들의 비자연적인 속성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바꾸어내면서 자기 세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호학의 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이글은 이데올로기의 집약체라고 불리는 영화를 분석대상으로 삼고 낯설게 보기를 시도해 보았다.


2.1 선택

평범한 사람들은 살면서 복수라는 것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 복수는 언제나 고통과 나락에서부터 시작되므로 매우 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복수를 동경하고는 한다. 막연한 동경은 상상을 낳고, 상상은 이야기를 낳는 법이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유이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는 그 수많은 복수의 홍수 속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대한 감상이 굉장히 선명한 것과 대조적으로 영화의 의미가 굉장히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가 매우 스타일리쉬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대번에 알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영역을 기호학적인 영역으로 치환하여 보다 과학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고 싶었으므로, 복수에 대한 모호하고 “예쁜”영화 -“예쁜”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본론에서 밝힌다- <친절한 금자씨>를 분석 대상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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