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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an 20. 2016

고통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말하면 저는 슬퍼요.

오늘은 아주 아주 겨울이었다. 그동안은 12월, 1월이 다 가도록 겨울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들만큼 춥지 않았다. 늦가을 혹은 초봄 즈음으로 느껴질 만큼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나는 문밖을 나설 때 마다 김이 좀 새는 듯 했다. 이게 무슨 겨울이야. 겨울 같지 않은 겨울 중에서도 가끔씩 한기가 돌때는 나는 어쩐지 진짜 겨울을 만난 듯 해 은근한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겨울에게 뻐기고 싶어졌다. 이것 봐! 나는 겨울인데도 이렇게 안 춥다!   그리고 오늘 문밖에 나서면서 나는 아 이것이 진정한 겨울이로군! 하면서 처음 맞는 한파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춥긴 춥네.


 그렇게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7권 빌린 뒤 롯데마트에서 맥주를 5캔 사서 버스정류장에 섰다. 바람이 살을 에인다는 표현 말고는 어울리는 말을 찾을 수 없다. 정말 추웠다. 귀와 코가 아파왔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센 바람이 그러나 아주 날렵하고도 예리한 바람이 불어왔다. 빈공간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바람 앞에서 나는 겁 없이 외출을 감행한 나 자신을 잠시 원망했다. 그래도 은평 09번 마을버스는 간격이 길지 않다. 아무리 길어야 10분 안쪽이고 내 앞에는 서너 명의 사람이 서있으니까 버스는 5분 내로 오지 않을까 하는게 내 계산이었다. 하지만 코너를 도는 초록 마을버스의 모습이 아주 오래도록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내가 코너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오지 않는 듯 했다.


아 너무 춥다!!!!!!!!!

 

 이런 날씨에 붕어빵이라니 나는 그 정류장 옆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아저씨에게 ‘아저씨! 집에 가세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붕어빵이라니 적어도 오뎅 정도는 팔아야 되지 않나? 붕어빵이라니, 그 흔해빠진 붕어빵을 이런 한파에 누가 사먹는다고. 아저씨는 그리고 그 허접스러운 천막의 이음새만이라도 촘촘하게 붙일 생각은 못하는 듯 했다. 찍찍이로 포갤 수 있게 된 천막의 양 옆은 힘없이 늘어져 있어서 바람이 불때마다 휘청거렸다. 아저씨를 추위에서 지켜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천막이 날아가지 않게 지켜주는 것은 고작 돌덩이였다. 아저씨는 천막이 휘청거릴 때마다 수시로 나와서 천막 밑을 누르고 있는 돌덩이를 확인하고, 옮기고,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붕어틀을 확인하고, 허리를 굽혀서 앞쪽 천막을 확인하고, 그러고도 옆에 늘어진 천막을 붙일 생각은 못한 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치겠다. 아저씨는 심지어 붕어빵도 못 구웠다. 휴지통을 보니 까맣게 탄 붕어빵이 몇 개 보였다. 환장하겠네. 그리고 아저씨 저기 붕어빵 날아가요.

 

 아저씨는 옷을 두껍게 입은 것도 아니었다. 아저씨들의 옷은 잘 모르겠지만 검정 바지에 검정 상의. 확실한건 거기에는 마땅히 단열이 될 만한 소재가 별로 없어보였다. 한마디로 아저씨는 아주 추워보였다. 아저씨는 오늘 이렇게 추우리라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저씨 오늘은 아무도 붕어빵에 관심 가져주지 않을거에요.


내 앞에 서있던 아줌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줌마가 흘깃흘깃- 아무도 찾지 않지만 무척이나 혼자 바쁜 붕어빵 아저씨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못본 척 버스가 오는 쪽을 쳐다봤다가 아저씨를 쳐다봤다가 했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팔리지 않식어갈 붕어빵들 중에서 천원어치 쯤 을 사줄까. 하는 고민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공기중에 떠도는 싸늘함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니 갈피를 잡지 아니하고 모든 살아 숨쉬는것의 체온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버리려는 듯 맹렬하게 파고든다. 그렇게 체온에 파고든 싸늘함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얼린것이 마음인지 몸인지 차마 모른다. 그래서 추위는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외로운 사람들은 회색 도시의 회색 하늘을 부유한다. 그러다가 늘어난 외로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사람들은 땅밑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은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아줌마도 아마 그것을 알고있을것이다.


그래도 아줌마는 결국 붕어빵을 사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에는 롯데마트에서 산 라면이며 과자가 이미 너무 많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금이 없었다. 현금이 있었다면 붕어빵을 샀을지도 모르겠다. 사면서 아저씨에게 얼른 집에 들어가시라는 말을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사실 나는 절대 집으로 돌아가시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히 모르고 싶던 인생의 절박함을 이제 조금 알게 된 나에게 아저씨의 모습은 너무 바보 같고, 답답하고, 안쓰러웠지만 그만큼 강렬했다. 아저씨라고 해서 추위를 모를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 것처럼.

 

 나는 겨울다운 겨울이 온 것을 반겼던 내가 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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