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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2. 2016

기호학으로 보면 더 흥미로운 '친절한 금자씨' [2]

박찬욱 - 친절한 금자씨

2.2 1구간 0:00:00

기승전결의 구조를 띄지 않고 있으므로 기승전결의 구분은 맞지 않고, 내용 구성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대로 기술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분석하다보니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눌 수 있는 변화의 기호가 있었고 이것을 기준으로 러닝타임 0시간 0분부터 1시간 0분까지를 제1구간으로 나누었고 1시간 0분부터를 제2구간으로 나누었다. 구간 분할의 기준이 된 기호는 제2구간에서 밝힌다. 

▶오프닝은 손과 칼, 백색의 밀가루를 적시는 새빨간 시럽을 클로즈업 화면에 담으면서 시작한다. 이것을 보면서 관객은 쉽게 피를 떠올린다. 그것은 피가 가진 색과 질감의 속성을 시럽이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붉은 시럽은 피를 가리키는 표상체로서 후에 등장할 여러 가지 폭력적인 혈흔의 자국들과 밀접성을 갖는다. 또 여인의 눈에 흐르는 눈물로 오프닝이 끝나면서 피와 같은 시럽, 눈물, 빨강 등의 계열체들이 비극의 암시라는 통합체로 형성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금자의 출소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금자를 마중 나온 전도사가 내민 두부를 땅에 떨어트린다. 그런데 이때 정작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땅에 떨어진 것은 심벌즈다.

이것은 마치 문장에서 언어의 어휘소들이 서로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형성해 내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미지는 어휘소에 완전히 해당하는 단위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어휘소가 정말 같은 대상을 의미하는지 장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단순하게 이미지에서 나타난 개별 물체 한 가지 한 가지를 이미지의 어휘소라고 가정하면, 화면이 전환되면서 ‘바닥에 떨어진 두부’가 ‘바닥에 떨어진 심벌즈’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가대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고도 그들이 받은 심적 충격이 충분히 표현된다. 또 원인과 결과를 ‘추락’이라는 연접의 관계로 묶음으로써 인과관계를 명백히 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비슷한 양식이 또 한번 등장하는데 유괴당한 ‘아이가 의자에서 추락하는’ 장면이 아이의 ‘할머니가 의자에서 추락하는’ 장면으로 대체된다.


▶출소한 금자와의 대면으로 전도사는 금자와의 만남을 회상한다. 금자는 아이를 유괴하고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러서 수감되었다. 그러나 너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서는 그 누구보다 종교에 독실했으며, 모범적인 죄수였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금자는 교도소 동기 ①김양희 (1998-2002복역)의 도움으로 거처를 얻는다. 그런데 이 공간은 기호학적으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집은 대개 아늑함과 편안한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금자의 집은 집을 구성하는 조형적인 요소는 이것과 상당히 대립된다. 우선 이 집을 구성하는 ‘색’은 절망과 불안을 상징하는 검정바탕에 거무죽죽한 빨강이 가득하다. ‘형태’는 마치 뿔처럼 기괴하게 꺾인 곡선과 분리된 도형들이 가득하다. ‘빛’은 실내를 비추는 자연광이 거의 없으며 촛불과 등과 같은 인공광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형적 기호가 집이라는 도상적 기호의 의미를 파괴하면서 금자가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집의 세부 계열체 선택에서 이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위의 사진을 구성하는 계열체중 좌우로 펼쳐진 3단 거울은 과거 3단 구성의 회화들이 제단의 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단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흰 옷을 차려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금자는 마치 목회자인 듯하다. 이것은 집이 끝나지 않을 절망과 불안, 고통의 공간이자, 금자가 자기 영혼의 구원을 바라며 제의식을 행하는 상징적인 공간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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