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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4. 2016

기호학으로 보면 더 흥미로운 친절한 금자씨 [3]

박찬욱 - 친절한 금자씨

▶출소 

다음날 금자는 자신이 유괴한 아이-원모-의 부모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손가락을 칼로 자른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특징적인 기호는 바로 폭력에 대한 지표기호이다. 직접적인 폭력의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절단된 신체나 혈흔, 멍자국과 같이 폭력과 상해의 인과관계를 드러내는 지표기호가 영화 곳곳에 가감 없이 등장한다. 이것은 폭력이 자행된 영역을 수용자가 스스로 상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보다 큰 심리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잘린 손가락을 봉합하고 다음날 금자는 빵집 나루세에 첫 출근을 한다. 그곳에서 근식을 만난다. 그리고 출소한 교도소 동기들을 찾아가면서 금자의 과거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 보여 진다, ②우소영 (1990-1996)에게 신장을 떼어주고, ③고선숙 (1967-1991)의 치매간병을 도맡아 하며, ④오수희 (1993-1994)를 괴롭히던 마녀를 뇌진탕에 걸리게 한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과거 금자가 도왔던 인물들은 모두 금자의 조력자가 된다. 우소영에게서 총기제작을, 고선숙에게서 총의 설계도를, 오수희에게서 총기 장신구를 받은 금자는 백선생에 대한 복수에 한발 한발 다가간다.

기호는 항상 체계속의 차이에서 의미를 드러낸다. 따라서 이것을 사용하면 교도소에서 상당히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복잡다단한 관계를 맺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차이를 통해 명백히 분리된다. 즉, 그들이 함께 존재했던 교도소라는 공간의 외시의미는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행위로 인해 교도소의 공시의미가 개인적으로 변함으로써 행복과 불행이라는 상태가 나뉜다. 이와 같은 차이로 인해 금자와 그 외의 교도소 동기들이 대비된다.                    


뒤에 또 설명하겠지만 금자는 교도소에서도 사람을 죽였다. 모두가 마녀라고 부르는 절대적인 악의 존재를 물리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금자에게 교도소가 살인이라는 새로운 죄악이 발생한 참혹한 공간으로 변한 것을 의미한다. 복수를 위한 발걸음에 죄악은 점점 더 커지고 금자는 여전히 불행하다. 반면에 교도소의 동기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기틀도 잡히고 제법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언제 죄를 지었냐는 듯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그들이 감옥에서 말끔히 죄를 씻어내고 나왔기 때문일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금자를 제외한 동기들은 사실상 금자의 살인을 방관했다는 점이다. 금자가 마녀에게 3년 동안 락스를 먹일 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켜봤을 뿐이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살인이 일어나는 동안 그 누구도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 죽었으므로, 또 그 자신의 손이 직접 더럽혀지지 않았으므로, 

이 지점에서 금자가 자신이 원모의 유괴를 돕고 죽음을 방관한 것이 죄라고 여기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즉, 죄의 방관자들은 똑같이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진실로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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