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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22. 2016

[책] 기리노 나쓰오 - 아웃

2016년에 읽은 가장 무서운 소설

“얘, 인간 땅에 떨어지는 거 금방이구나.” 요시에가 중얼거리자 마사코는 가엾다는 듯이 요시에를 봤다.

“그래, 다음은 브레이크 망가진 자전거가 비탈길 굴러가는 것 같은 거지.”

“아무도 멈출 수 없다는 말이니?”

“부딪치면 멈춰.”

자신들은 무엇에 부딪치는 걸까. 앞으로, 모퉁이 너머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 요시에는 공포에 전율했다.


기리노 나쓰오 - 아웃

9점


저녁 늦게 알코올과 섞인 카페인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 때문이었을까. 밤은 나에게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춥지 않은 방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가끔 목덜미를 지나는 한기에 몸서리를 치면서 이 책을 삼켜나갔다. 그래 이것은 읽는다기보다 삼킨다. 혹은 삼켜진다.라는 설명이 적당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이 책은 미쳤다. 미친 사람들이 나오고 미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작가는 진짜 미쳤다!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이 작가는 살인자가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 걸까? 이것은 사랑에 빠져본 사람만이 사랑에 대해서 가장 잘 서술할 수 있다는 그런 아주 당연한 얘기다.


그만큼 이 책은 무시무시했다. 너무나 깊고 검푸르고 찐득거리는 인간의 심리를 낚아채 살육하여 남김없이 해체해놓은 느낌이었다.(마사코처럼)

 작가는 주요 인물들의 주변 인물, 장소 및 상황, 그들이 얽혀있는 역학 관계, 심리와 인격, 행동거지와 외모, 심지어는 평판까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입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일면 불필요해 보이는 이것들은 글이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하나의 퍼즐로 맞춰진다. 파멸이라는 퍼즐이다.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역학관계에 의해 알게 모르게 영향받고 다시 영향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아웃’의 무서움이 있다. 평범한 사람의 악의가 없는 최초의 우연적 범죄에 의해서 인간의 자기 파괴가 시작한다는 점과 공범이 있다는 점에서 ‘심플 플랜’과 비슷하긴 하다.


그러나 ‘심플 플랜’에서 등장했던 주요한 인물들이 다소 평면적이었으며 그 역학관계에 대한 치밀한 구조 없이 산발적이었다는 점에서 ‘아웃’은 ‘심플 플랜’보다 열 배는 더 무섭다. 왜냐면 ‘아웃’의 세계에서는 보다 더 엉망으로 엉기어진 너와 나의 관계가 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들은 단지 공범이 아니다. 너는 공범이라기보다 ‘인생’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무섭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인간에 대한 깊은 혐오와 불신을 기반으로 한 것 같은 이 캐릭터들 사이에 ‘가즈오’라는 숨구멍을 만들어 준 것이다. 심장이 아플 만큼 조여 오는 한계 상황에서 독자는 나도 모르게 가즈오의 순수함과 맹목적인 사랑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냉혈한 같은 작가가 사실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가슴에 품고 있구나. 하면서 위안을 얻고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이다.

아, ‘심플 플랜’과 마찬가지로 공권력이 사건의 실체를 알아내는 데 실패하는 설정 역시 흥미롭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세계 어느 나라의 공권력도 믿음직하지 않다는 불신 때문일까?


모르겠다 이 책은 그냥 재밌다. 너무나 재밌다.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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