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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4. 2016

지은2

추상화가 생겨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되는 밤의 이야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살.

나는 모든 글을 0과1의 세계에 새기었다.


그때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온 세상이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고 아무때나 말을 걸었다.

그러다가 내가 듣지 않는 것 같으면 나를 흔들고 밀치고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며 악다구니를 써댔다.

시끄러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세상의 얘기를 휘갈겼다.


나의 감각이 그렇게 예민했던 때도 없었다.

슬픔의 감각은 특히나 오롯했다.

새벽이 아닐 때에도 나는 새벽의 눈물을 보았고

아침이 아닐 때에도 나는 아침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가슴속에 살고 있는 뱀이 요동을 칠 때면 정신을 잃고 또 아무이야기를 휘갈기고는 했다.

눈물속에 살고 있는 새가 지저귈때면 가만히 숨을 참고 침대로 파고들었다.


이렇게 침잠하는 것은 의외로 나의 적성에 맞았다.

내가 내 자신을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라고 믿으며 내 안으로 가만히 침잠하고 나면

시끄러운 세상이 조금은 조용해졌고, 나는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한가지 나쁜일이 생겼다.

나를 미워하게 된 것이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10년이 흐르고 어른이 된 나는 아주 아주 오래 글을 쓰지 않아도 살만하다.

슬픔의 감각도 다 무디어 졌다.

어른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고통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쓸만한 단어를 주으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텅 비게되었다.

순간 순간의 고통과 슬픔을 모두 길가에 내버리며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가벼워진 것은 생명이 없는 것들에 의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나는 다시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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