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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Sep 03. 2016

기호학으로 보면 더 흥미로운 친절한 금자씨[5]

박찬욱 - 친절한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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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구간 1:00:00

▶정확히 1시간이 흐른 뒤 이 골목의 조명이 전부 꺼진다. 그리고 이 장면을 기점으로 후에 등장하는 화면들은 서서히 색감이 제거되는 양상을 보인다. 후반부에는 거의 흑백영화로 보일 만큼 화면이 균일한 회색톤으로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제 2구간에서 색감이 제거됨과 동시에 일방향적이었던 금자의 복수가 백선생의 대응으로 쌍방향적이 되고, 이야기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편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조형적 기호의 빛과 색의 기호가 최소화되면서 오히려 수용자는 무언가 자신을 옥죄는 느낌을 받는다. 수용자로 하여금 온전히 파괴적인 행위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1구간에서는 표현의 방식으로 자주 등장했던 환상과 나레이션같은 제작자가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상적인 요소가 2구간에서는 완전히 배제된다, 오히려 급격하게 리얼리티를 살린 연출이 돋보인다. 즉, 이렇게 두 개의 구간을 나눈 기준점은 빛과 색의 기호가 사용되면서 비극적인 감정적 공시가 고조되는 시점이었다.




▶금자에게 찾아온 해결사들은 금자를 마구잡이로 폭행하고, 박이정은 백선생에게 포박 당한다. 복수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되던 그때 백선생은 수면제에 취해 잠이 들고, 금자는 해결사들을 죽이고 제니와 탈출한다. 그리고 드디어 재회하게 된 백선생과 금자, 

금자는 백선생을 묶어 폐교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금자는 백선생의 통역을 빌려 제니에게 자신과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용서를 구한다. 

여기서 금자와 제니, 두 인물의 대립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우선 나이라는 기준에서 어른과 아이로 나눠볼 수 있고, 나이에 따른 속죄의 방식 또한 대조적이다. 영화에서 제니는 금자에게 자신에게 사과하라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금자가 자신은 아이를 죽인 죄인임을 고백할 때에도 “내가 그 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대신 말해줄까?” 라고 대답한다. 제니의 세계에서 용서와 속죄란 ‘미안하다’ 라는 진심어린 말로 가능한 것이다. 단지 죄가 얕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적게 하는 것으로, 죄가 깊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속죄가 가능하다. 그러나 금자는 어떠한가. 그녀에게 속죄는 수 십 통의 촛불을 켜고 끄면서 기도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며, 금자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도 피를 보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제니는 금자의 방식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금자의 복수를 조금씩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제니를 보낸 후 백선생과 폐교에 남아 복수를 실행하려는 금자, 그러나 상상처럼 쉽게 그를 죽일 수가 없다. 그러던 중 백선생의 핸드폰 고리에서 또 다른 희생자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과거 담당형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백선생의 집에서 범죄를 기록한 비디오를 찾아낸 금자는 그길로 피해자 가족들을 전부 모아 백선생의 범죄를 폭로한다. 그리고 충격에 휩싸인 유족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인지, 개인적인 원한을 풀어낼 것인지 선택하도록 한다. 피해자 가족들은 직접적인 복수를 하기로 결정하고 백선생을 고문 살해한다.

백선생의 목에 깊숙이 꽂힌 가위는 그것이 곧 백선생의 죽음을 가리키는 지표기호로 쓰이면서 동시에 손녀의 이름표와 손때가 묻은, 즉 백선생에 의해 희생된 손녀를 상징하는 상징기호이다. 피해자를 상징하는 기호가 곧 가해자의 죽음을 가져오면서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일렬로 앉거나 서는 식으로 프레임과 수평을 이룬다. 이미지에서는 이렇게 인물들이 놓인 자리와 모양, 크기, 자세까지도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있다. 즉 ‘인물의 위치’ 그 자체가 기호인 것이다. 이처럼 얼굴부터 몸까지 전부 잡는 풀 샷으로 여러 인물을 균일한 크기로 배치하는 것은 결국 프레임 안의 그들이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즉, 인물들을 일렬로 '배치' 한 그 자체가 이면에는 화면에 잡힌 모든 인물이 같은 '패거리'라는 기의를 가진 기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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