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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May 16. 2022

와서 아침을 먹어라

노는(遊)신부의 더 드라마, 시(詩)가 되고 길(道)이 되는 예수


함께 읽고 걷는 요한복음서


“. . .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 . . ‘못 잡았습니다.’ . . .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 . .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 . .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 . .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 . .” (요한복음서 21:1-14)  


photo by noneunshinboo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곳에서 보자고 하셨을까? 굴욕과 패배와 고난과 죽음의 장소, 그러나 이젠 승리의 장소, 영광의 장소가 된 거기 예루살렘이 왜 아닐까? 무슨 대단한 것이 나올까, 무슨 선한 것이 나올까 했던 왜 굳이 여기 갈릴리일까? 제자들은 도통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오시는 걸까? 배신하고 부인하고 숨고 도망치고 했던 우리를 이제 그만 잊으신 걸까? 혹시 지난 번처럼 그런 험한 일을 또 어디선가 당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우리까지 그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우리가 잘 못 본 것은 아니었을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 하는 동료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도마(Thomas)도 가까스로 털어냈던 그 의심, ‘이젠 더는 없다’, ‘나에겐 아예 없었다’ 죽었던 의심이 어느새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이젠 불만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조금씩 자라나 서로에게 옮은 듯, 그러나 차마 누구에게도 묻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마음은 간절히 원하지만, 몸이 그리고 상황이 그렇질 못합니다.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그럴 수 없습니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해야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에는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야속하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제자들 역시 하는 수 없이 어제의 나로, 어제의 일터로 돌아갑니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쉬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먹을 게 없으면 구해야 하고, 구하다 없으면 구걸이라도 해야 하고. 목이 마르면 우물이든 물웅덩이든 찾아야 하고, 찾다 없으면 삽으로든 맨손으로든 땅을 파야 하고. 너무 고단하고 피곤하면 조금 잠짓이라도 해야 하고, 조금 짬이라도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담아 눈짓 손짓 말짓이라도 해야 하고. 그게 우리 사는 삶이요 이치입니다. 


게다가 지금 여기는 다시 갈릴리입니다. 제자들이 나고 자란 곳이고 또 사는 곳입니다. 마냥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는 초라하고 야속한 현실, 그러나 여기가 제자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여기를 벗어나겠다고, 여기 다시 그런 꼴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세상을 바꾸고, 바뀐 세상에서 폼나게 살겠다고 메시아이신 주님을 따라 여기를 떠나 거기로 갔었는데. 그러나 결국 다시 갈릴리입니다. 그 갈릴리 호수, 물고기 잡겠다 어둠을 가르고 배 띄워 그물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주님을 따라갔던 그때나 그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보자하신 지금이나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물에 걸리라는 고기는 좀체 걸리지는 않고, 생각의 그물에 의심과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제자들의 마음을 채우고, 갈릴리 호수를 채우고, 빈 배를 가득 채웁니다. 




제자들이 돌아온 갈릴리, 그 호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찬 폭풍우와 거친 파도는 여전하고, 만선의 꿈은 그저 꿈일 뿐. 빈 그물에 빈 배, 그리고 허기진 배와 지친 팔다리로 돌아오는 춥고 배고픈 현실은 문 앞에서 돌아갈 기색이 없이 여전히 서성이며 조만간 집 그 안으로 아예 들어설 기세입니다. 


바로 그때, 


“무얼 좀 잡았느냐?”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 말씀대로 했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갈릴리, 그물에는 물고기가 가득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알고 있습니다, 잡은 물고기들로 그물이 찢어지고 안 찢어지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역시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마낭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질 수는 없다는 것을. 배 왼편에도 물고기 많이 있을지 모르니 이번엔 배를 돌려 왼편을 오른편에 두고 그물을 던질 수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느닷없이 나타나신 주님께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생업이고 그 분야에서 나름 전문가들인 제자들에게 지금 생뚱맞게 물고기를 잡는 법이나 가르치고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photo by noneunshinboo


“저분은 주님이시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 우리가 꾸려가는 일상의 자리를 아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당신께서 부활하시어 여기 우리 곁에 계셔도, 아직 우리의 몸의 필요는 여전하다는 것을, 몸만 약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여전히 약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가실 때 혹은 나의 탄 배를 지나치실 때, ‘유령이다!’** 하며 놀라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신께서 내가 탄 배 안에, 그리고 나의 곁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그 당신을 찾을 생각도 않고, 깨울 생각도 않고, 허둥지둥 이리저리 그러지 말라고, 혼자 끙끙거리지 말라고. 

우리의 삶의 터인 갈릴리를, 일상의 자리인 그 호수를 망망대해에 떨어진 낙엽처럼 더는 그렇게 흔들리며 살지 말라고. 무엇보다 나의 안에 속절없이 이는 근심, 걱정, 불안, 그리고 두려움의 세찬 바람과 거친 파도를 이제 고요하고 잠잠하라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너의 주를 찾고, 너의 주의 도움을 구하고, 그리고 너의 주께 깨어 기도하라고. 그래서 부활의 예수를, 부활의 삶을 살라고 주님께서 지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얼른 와서 아침 먹어라. 여기 빵도 있고 구운 생선도 있다. 그리고 여기 불도 쬐어라.”


주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그 갈릴리의 예수, 그 나사렛 예수, 나는 그런 예수를 모른다’ 했던 배신과 부인의 죄책감을 그만 벗어라, 저 혼자 살겠다 꽁무니 뺏던 그 일도 이젠 잊어라 하십니다. 거기 대제사장 뜰에 피워 있던 시기와 증오와 광기의 불 곁을 어슬렁거리지 말고, 대신 여기 갈릴리 호숫가, 나를 위해 피우신 모닥불이 있으니, 얼른 여기로 와서 그 고단하고 곤고한 삶의 추위를 녹여라 하십니다. 불만과 불안과 의심과 걱정과 근심으로 허기진 나의 배를 여기 구운 물고기로 달래고, 절망과 좌절과 실패와 두려움으로 고픈 나의 배를 여기 넉넉한 빵으로 채우라고 나를 부르십니다. 

여기 와서 함께 먹고 쉬고 기운차려, 너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날을 함께 살자고, 거기 제자들을, 그리고 여기 우리를 지금 부르십니다. 


“여기 와서 같이 아침 먹자.”



* 누가복음서 5:1-11 

** 마가복음서 6:45-52, 참조/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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