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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Feb 28. 2022

임이여, 나를 떠나지 마오

노는(遊)신부의 더 드라마, 길 잃은 양을 찾아 길 떠난 예수 (21) 


“날이 새니, 예수께서 나가셔서, 외딴 곳으로 가셨다. 무리가 예수를 찾아다니다가, 그에게 와서, 자기들에게서 떠나가지 못하시게, 자기네 곁에 모셔두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유대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누가복음서 4:42-44)


photo by noneunshinboo


이유 있어 왔고, 목적 있어 떠나가시는 예수가 있고, 저 나름의 이유 있어 소맷자락 잡고 저 나름의 목적 있어 바짓가랑 붙잡으며 제발 떠나가시지 말라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사람, 목적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러나 그 이유와 목적이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 서로가 너무 서운하다. 


이유 없는 삶, 목적 없는 삶이면 너무 슬플 것이다. 이유 없이 목적 없이 있는 사람이면 너무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 있고 그 목적 있는 삶, 그 이유 있고 그 목적 있어 여기 있는 사람이면 참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행복해야 할 우리다.  

이유 있는 사랑, 목적 있는 사랑이면 너무 외로울 것이다. 이유 있고 목적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또 그런 사랑을 받는 사람은 쓸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 없고 그 목적 없는 사랑, 그 이유 없고 그 목적 없는 그런 사랑을 하고 또 그런 사랑을 받는 사람이면 참 행복할 것이다. 그런 사랑이어야 할 우리다. 


각각의 그 이유와 그 목적은 있고 없고 같고 다르고 그리고 많다. 그러나 그 본디 이유를 잊고 그 처음 목적을 잃어버린 채로 채워가는 많은 이유들과 목적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그 빈 곳만 눈에 들어오니 도통 나갈 기색은 없고, 자꾸 채우고 채워도 몸과 마음은 고프고 지친다. 

그 시원함 그 톡소는 맛에 연거푸 들이킨 사이다는 그 갈증을 영 해결하지 못하니 콜라로 그리고 환타로 갈아탄다. 그래도 안되니 그 밋밋함이 내 몸에 빠른 수분 흡수의 댓가겠거니 하며 포카리스웨트와 게토레이로 한철 메뚜기 뛰듯 갈아타 열심히 수분을 공급해보지만 무얼 마셨는지 기억에서 가뭇하고, 그 갈증 해소의 종착지는 영 보이지도 않는 그때, 유레카! 겨우 찾아낸 무슨 천년의 비법이라도 되는 양, 온갖 탄산수와 이온음료와 주스로 가득한 배낭 내려놓고, 다 팔렸으면 어쩌나 없으면 어쩌나 급히 동네 수퍼 찾는 이의 마음은,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면 손에 쥐는 생수.  


결국 그 본디 이유와 그 처음 목적을 알아야 한다, 찾아야 한다. 그 떠나온 곳을 모르니 그 갈 곳을 알 수 없고, 그 떠나온 곳과 그 갈 곳이 다르지 않음도 영 알 수 없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이유, 당신 닮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그 이유, 사람이 혼자가 아닌 같이 살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이유, 당신의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신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그 이유, 그 이유는 우리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것이 본디 이유이고, 그리고 그 목적은 그 하나님의 사랑인 하나님 나라이고 그것이 처음 목적이다.* 


반겨주고 아껴주고 좋아해주고 나는 네가 필요하다 그냥 여기 계속 있어달라 애원을 하는 사람들 곁을, 편안하고 안전하고 너무 좋은 여기를 떠나는 것에 그 무슨 이유와 목적이 따로 있을까 싶어도,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 거기 그 아버지 곁을 떠나 여기 먼길 오신 것에 그 이유와 목적이 있고, 그것은 여기만이 아니라 저기 다른 동네에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것이요,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뜻, 그 이유, 그리고 그 목적을 알고 그 길을 걷는 예수 그리스도,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 .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요한복음서 6:35-40)




하나님은 ‘나’들의 하나님이고, 그 ‘나’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과 딸이고, ‘나’들인 우리 모두는 서로를 사랑하는 한 형제이고 자매인 나라. 하나님의 내리 사랑 받아 고이지 않게 옆으로 흘려 보내는 사랑으로 땅을 적시고 채우는 나라.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둘러싼 모든 것들이 서로를 사랑을 하고 서로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 나라. 

그런 사랑과 그런 하나님 나라, 그것이 이유와 목적이고, 그러나 나중에 생긴 것일 수 없고 처음부터 있던 것이고, 그렇다고 처음 것이기만 하지 않아 나중 것이기도 하고, 또한 처음과 나중 그 사이에 틈 없이 있어 채운다.  


문제라면 그 이유를 그 목적을 잊고 잃고, 그리고 없이 사는 것이 문제이다. 그 답은 그래서 그 처음과 나중, 그리고 그 모든 사이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다. 그분은 우리가 있는 이유이고 목적이고, 우리가 다시 찾고 회복하고 사는 본디의 이유이고 목적이고 또 나중의 이유이고 목적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사는 이유이고 또 목적이다. 그 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오셨으니, 우리가 그분을 따라 나서는 것이 그 이유와 목적에 또한 부합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  

‘임이여, 같이 갑시다’ 하며 같이 떠나면 될 것을 ‘임이여, 나를 떠나지 마오’ 할 일이 아니다. 쥐고 있는 것 놓고 갈 수 없고, 아끼는 것 두고 갈 수 없고, 애정하는 것 버리고 갈 수 없고, ‘나 좋다 하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나, 나도 또한 너무 좋은데 너무 편한데 어찌 여기를 떠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하며 갈 수 없고, 그러다 어느새 여기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여기가 내가 사는 이유 되어버렸고, 그래서 여기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photo by noneunshinboo


어렴풋이나마 눈치챈 그 이유와 목적을 그냥 그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소맷자락이라도 부여잡고 바짓가랑이에라도 매달린다. 그러나 그런다고 떠날 임이 안 떠날 임 되어 영원히 내 곁에만 머물 것도 아니고, 그 임 지금 떠나가시니 여기가 아니라 저기가 목적이고 여기가 아니라 저기가 본디 있던 곳이고 난 곳이고 다시 가야 할 곳이고, 거기서 아버지께서 나 그리고 너 또한 기다리시니, 그 가는 길에 여기저기 다른 동네들 들려 다들 같이 가자고 해 볼 참으로 우리의 임 되신 예수께서 지금 여기를 떠나가신다. 복음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여기와 저기를 적시고 또 흘러 채우며 먼 길을 가신다. 


그 속도 모르고, 그 맘도 모르고, 그 본디의 이유도 목적도 모르고, 자기들 눈에서 멀어지면 자기들 마음에서도 멀어질 것을 아는지, 자기들이 있는 동네 밖으로는 차마 한 발도 떼지 못하면서 그저 속절없이 동동거린다. 시대는 바뀌어 떠나려는 몽룡이 보다 앞서 떠나는 춘향이가 아름답고, 우유부단 머뭇거리는 로미오 다그치며 나 따라오라 하는 줄리엣이 멋지고, 그분 예수 앞서 가진 못할 망정 떠나시는 그분 따라 길을 나서면 좋겠다. 함께 앞 동네 뒷 동네 그리고 옆 동네를 찾아다니며 그 기쁜 소식 전하고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그 겨우 찾은 그 처음 이유와 목적을 다시는 잊지 않고 잃지 않고, 지금 여기 사는 이유와 목적으로 그리고 거기 먼 나중의 이유와 목적으로 같이 걷고 놀고 살면 참 좋겠다. 


photo by noneunshinboo


지금 배 떠난다. 서둘러 그 배에 올라타야 한다. 저건 내가 탈 배가 아니다 먼 산만 쳐다보지 말고, 조금 가다 큰 파도에 분명 돌아올 거라 뒷짐에 헛기침만 하지 말고, 어느 정도 가다 말겠지 돌아오겠지 오지 않으면 어쩌나 조바심만 내지 말고, 이것 저것 급히 챙기며 큰 짐 꾸리다 늦지도 말자. 그러다 그 배는 ‘저기 떠나가는 배’가 된다. 배 떠난 빈 나룻터 거기 주막에 놓인 평상에 하나 둘 모여 걸터 앉아 뉘엇뉘엇 지는 해로 붉게 물들어가는 강물 쳐다보는 신세,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늘은 예수께서 붙잡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가시지만, 머지않아 제자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그 예수의 떠나갈 것이고,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 하신 물음에 남은 제자들은 ‘아니오’ 하면서도 나중엔 다 떠나갈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처럼 기쁜 소식은 여전히 흐르고, 그 강물따라 떠나가려는 배 아직 우리를 기다린다. 



* 요한복음서 3:16 

** 마태복음서 6:9-13 

*** 마태복음서 28:18-20 

**** 요한복음서 6: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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