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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Sep 16. 2022

내가 걷는 길

사도행전, 그리고 교회다움 (15-2)

“. . . 바울은 . . . 몇몇 제자를 만나서,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울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슨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바울이 말하였다. ‘요한은 백성들에게 자기 뒤에 오시는 이 곧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했는데,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사도행전 19:1-7)


photo by noneunshinboo


1.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지금 바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요한의 세례에서 멈추어 있습니까?” 


성령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한 저들보다는 훨씬 낫지만, 여전히 회개의 신앙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계속 걸어가야 하는데, 그만 멈춘 신앙으로 여기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례는 단지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그 세례를 오늘 여기 매일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죄 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례 따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 따로, 그리고 바울이 손을 얹자 내려오신 성령의 임재 따로, 그래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는 것 따로. 그리고 신앙의 삶 따로. 그렇게 믿음이, 성숙한 신앙인의 삶이 따로 따로, 그리고 순서대로.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이것, 차례대로 되는 것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두자, 서두르지 말자, 하나씩 순서대로 코스를 밟아 인증서를 받고, 그렇게 믿음이 깊어지는 것이니, 우선 이것부터 받자 저것부터 하자, 여기기 쉽습니다. 느긋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곧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이며, 우리를 죄와 악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아들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죽고 또 사는 세례입니다. 부활의 삶입니다. (롬 6:3-4, 10-11)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리고 그 세례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그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과 함께 비둘기처럼 하늘로부터 이 땅 위,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머리 위에 내려오신 그 아버지 하나님의 영은 세례를 받는 우리에게 또한 내려오십니다. 변화산 그 짙은 구름으로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감싸 덮으시 듯 우리를 또한 당신의 사랑의 영으로 우리를 품고 안으시어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하십니다. 


그 주님의 영은 우리가 십자가와 빈 무덤의 삶, 부활의 삶, 구원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시고 이끄시고 도우시는 영이십니다. 그 영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 부활의 영, 생명의 영이 오순절, 주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속한다는 것은 성령이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이고, 그 성령의 생각은 곧 생명과 평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의 도(道), 그 주님의 길은 생명과 평화의 길, 하나님의 길이며, 성령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영이 이끄시고 도우시어 그 길 위에 선 사람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롬 8:5-9)


2.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바울의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아느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느냐, 너의 구원자신 것을 믿느냐,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을 아느냐, 하는 그런 질문이 아닙니다. 

‘너는 지금 주님의 길, 성령의 길을 걷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은 너는 성령 안에 있어, 성령이 네 안에 살아 계시니, 너는 성령의 삶을 살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갈 5:16ㄱ, 22-26)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은 방언이나 예언이나 치유의 은사, 혹은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체험과 기적의 삶이 아니라, 사랑이 있는 삶, 사랑의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을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삶, 그리고 그 사랑으로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 13:34-35)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안에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은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는 그 사랑으로 사람들은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3.        

정 호승 시인의 ‘봄 길’ 입니다.  


봄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흙먼지 날리고 돌맹이 구르는 광야에 물 길로 오신 분. 잡초와 넝쿨로 무성한 어둔 숲에 꽃길로 오신 분. 낙엽과 눈으로 덮힌 길에 봄 길로 오신 분.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시고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이 되신 분,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 길 먼저 가셨고, 이제 다시 오시어 함께 그 길 걸어가시는 분. 사람으로 오셨고, 이제 당신의 영으로 함께 걸어가시는 분. 세상에 하나뿐인 길(道)이 되신 분,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내가 아는 길, 그리고 이제 내가 걷는 길이 되신 분. 걷다 지쳐 앉고 때론 눕고, 그러나 다시 일어서 걷고 또 걷고, 그러다 어느새 내가 그 길이 되는 참 길이신 분,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어주신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이 그리스도 예수께로 가는 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사랑하라 하신 명령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땅 끝까지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그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길(道)을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그 길을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길이 되는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주님의 길을 걷고 걷다 그만 주님의 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길벗이 되어 함께 걷는 곳이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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