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회사이 Sep 23. 2022

우리의 함께 달려갈 길

사도행전, 그리고 교회다움 (16-2)


“그런데 . . .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 떼를 마구 해하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바로 여러분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이탈시켜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어 있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행 20:29-32)


1.        

“깨어 있으십시오.”

바울 사도가 말합니다. 


“너희는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막 14:38)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우리의 엄마, 그 우리의 목자, 그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영으로 여기 당신의 자식들, 당신의 양들,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예수님께서 당신의 자식들에게, 양들에게,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깨어 기도해라, 나의 가르침을 기억해라, 나의 죽음을 기억해라, 그리고 나의 부활을 기억해라,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라. 그리고 나의 기도를 살고, 나의 죽음을 살고, 나의 부활을 살고, 나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살아라.” 


엄마가 비운 사이, 목자가 없는 사이, 이리들이 들어올 수 있다, 그게 현실이다,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굳이 감추시지 않으십니다. 알려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넋놓고 당하게 가만 놔둘 수는 없습니다.   


먼길 떠나는 바울의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그 사람들의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프시고, 예수님도 아프시고, 성령님도 또한 함께 아프십니다. 바울과 함께, 바울을 떠나보내는 사람들과 함께 달려가실 길이기에 성령께서 일러주십니다. 아플 것이라고, 아파도 많이 아플 것이라고. 너희들만 아픈 것이 아니라 나도 아플 것이라고. 


photo by noneunshinboo


2. 


그러나 그 성령께서는 또한 우리의 마음에 새 소망, 새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2:12-18)


아픔이 머지않아 기쁨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치고 숨었던 제자들의 어둔 방, 어둔 마음, 그리고 어둔 아픔이 부활하신 주님으로 기쁨이 된 것처럼. 하늘로 오르시는 주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허전한 마음, 그러나 성령이 오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던 제자들의 여전한 아픔이 영으로 오신 주님으로 기쁨이 된 것처럼. 주님의 제자들을 잡겠다 날뛰던 바울 자신도 모르던 깊은 아픔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남 부활하신 주님으로 기쁨이 된 것처럼. 그래서 온갖 핍박과 박해와 고난 속에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아픔이 기쁨이 된 것처럼. 아픔은 머잖아 기쁨이 될 것입니다. 


3.        

“첫째는 동생들 챙기고, 둘째 괜한 심술 부리지 말고, 막내는 형 누나 말 잘 듣고, 서로 싸우지 말고. 벨 누른다고, 누가 문 두드린다고 함부로 문 열지 말고. 먹을 거 나눠 먹고, 입을 거 서로 챙겨 주고, 혹시 누가 아픈지, 누가 어려운 문제로 힘들어 하는지 서로 챙겨주고 도와주고 가르쳐주고. 엄마 없다고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라. 무슨 일 있으면, 그리고 무슨 일이 없더라도 엄마한테 전화하고.”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지금 여기 자식들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바울, 그 바울의 마음은 여전히 여기 에베소 교회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엄마, 우리의 아빠, 우리의 목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은 지금 하늘 아버지 곁에 계시지만 오늘 여기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당신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수시로 열고 닫는 냉장고 문 앞에 써 붙여 놓은 엄마의 손글씨처럼, 주님께서 당부하신 말씀, 그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을 붙잡고 바울 사도처럼 ‘우리의 달려갈 길’을 살아가야 합니다. 


4.        

엄마가 외할머니댁에 며칠 가 계셔도, 목자가 들로 산으로 잃은 양을 찾아 몇 달을 떠나 있어도,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지금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셔, 내 곁에 지금 계시지 않으신 듯 보여도, 나를 잊으셨나 때론 그렇게 생각이 들어도, 그러나 그 엄마는, 그 목자는, 그 주님께서는 여기 내 곁에, 내 안에, 나와 늘 같이 계시니, 그 주님의 말씀에 눈과 귀 열어 순종하고, 그 주님의 영에 마음 열어 순종하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도우십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어 지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울 사도처럼,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을 굳게 잡고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께서 우리와 함께 달려가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바울은 머지않아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향할 것입니다. 성령에 매인 바울은 성령의 바람에 따라 계속 길을 갈 것입니다. 바람이 머무는 곳에 머물고, 또 바람이 부는 곳으로 따라 불어 갈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달려갈 길입니다. 그리고 여기 바울이 세운 교회, 바울이 가르친 사람들의 달려갈 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달려갈 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대신 달려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직접 달려가야 할 길입니다. 엄마는 지금 다 자란 자식들이 제 달려갈 길을 스스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자식들이 아플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 만큼 엄마의 마음도 아플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같이 달려갑니다. 그래서 아픔은 기쁨이 될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들은 단거리 주자가 아닙니다. 100미터든 200미터든 죽어라 냅다 달려 골인하면 끝나는 그런 단거리 주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트랙 몇 바퀴 달리는 장거리 주자도 아닙니다. 42.195킬로미터, 어떻게든 오늘 안으로 끝내면 적어도 완주했다고 메달을 받는, 경기가 끝나면 적어도 며칠은 달리지 않아도 되는 마라톤 주자도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4-27, 공동번역)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긴 장거리 주자입니다. 어제도 달리고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리는 장거리 중에도 장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죽어라 내내 앞만 보고 달리지만은 않습니다. 때론 걷고 때론 엉금엉금 기어서 가기도 합니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합니다. 쉬었다 가기도 합니다. 서로 돕는다고 해서 규칙을 위반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업기도 하고 부축하기도 합니다. 룰 위반이다, 규정 위반이다 실격 판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한다 칭찬을 받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응원합니다. 굳이 일등을 하려고 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딱히 승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게을러지기도 하고, 그래서 누구는 뛰려고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경주는 몇 배, 몇 십배, 몇 백배 더 어렵습니다. 출발선과 결승선이 딱 그어진 경주가 아닙니다.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 모릅니다. 오롯이 각자의 한 생(生)이 걸리는 아주 긴 거리를 가야 합니다. 


A Pair of Shoes, Vincent van Gogh, 1886. Amsterdam, Van Gogh Museum


6.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어느 노동자/농부의 신발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가는 사람의 한 생(生)이 보입니다. 치열한 삶입니다. 여기 이 낡은 신발은 그 달려간 길에서 얻는 값진 상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은 메달도, 월계관도 아니고, 메달을 따고 받는 연금도 아닙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간 사람의 낡고 허름한 신발이 우리가 받는 상입니다. 그 낡고 허름한 신발은 내가 애써 달린 길, 바로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고, 그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우리가 그 예수님 안에 하나가 되어 달려간 길, 구원의 길, 그리스도 예수의 길이 우리의 달려갈 길이면서 동시에 그 길 끝에서 받는 상입니다. 


우리가 함께 달려갈 길, 정신 바짝 차려 달려가야 할 길입니다. 런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달리면서도 이것저것 점검해야 합니다. 먼저 그 길을 달렸던 바울 사도는 그래서 우리의 훌륭한 달리기 코치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 . .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 . .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 . .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 . .” (엡 6:10-20)



작가의 이전글 나의 달려갈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