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회사이 Sep 30. 2022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

사도행전, 그리고 교회다움 (17-2)


“그 때에 바울이 대답하였다.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만류를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하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21:13-14)


1.        

비유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누가복음서 8:9-10)


그 하나님 나라의 비밀, 그 하나님 나라로 향한 길,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비밀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 그리고 주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나 그 성령의 지시를 들어도 보아도 경험해도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고, 너무 크고,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니 자주 나도 나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 자신 역시 그렇다 합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 .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롬 7:15,19)

이게 무슨 ‘인간의 조건’ 인간으로 살기 위한 ‘필요 조건’이나 되는 듯, 우린 다 그렇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롬 7:24-25) 

그래서, 지금 이 바울의 고백은 그런 ‘인간의 조건’을 벗고자 몸부림 치는 한 신앙인의 솔직한 자기 고백, 신앙 고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2)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고전 11:3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나를 살피는 것. 주님의 길을 잘 가는 방법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2.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했던 사람들의 증오와 혐오와 살기가 여전한 곳. 예수를 따른다고 스테반을 향해 사람들이 던진 돌들로 만들어진 그 돌무더기가 아직 있는 곳.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다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성전 안팎의 사람들이 바울에게 내질렀던 악다구니와 고함과 욕설이 아직 들리는 곳. 무엇보다 성문 밖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살풍경이 여전한 곳. 

바울은 지금 그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거기 머물겠다, 살겠다, 버티겠다 하며 가는 길이 아닙니다. 거기를 지나 로마로 갈 것입니다. 그렇다고 로마가 최종 목적지도 아닙니다. 로마를 지나 또 다른 곳으로 갈 것입니다. 날아드는 돌들을 지나, 몸에 쏟아지는 채찍을 지나, 주님의 보혈을 지나, 주님의 십자가를 지나 하나님의 품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렇게 갈 것입니다. 


한 점에서 한 점으로, 한 점을 지나 또 다른 한 점으로 바울은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점들을 잇고 잇다 보면, 그 끝에 가 닿은 곳, 거기가 바로 바울이 지금 가는 ‘집’, 바로 ‘우리 집’ ‘우리 모두의 집’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 길 위에 있는 바울, 그 길 위에 가는 바울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 위에 있고, 그 길을 가는 우리입니다. 모르면 물어 가고, 힘들면 힘들다 서로 도와 가고, 옆 사람 지쳐 보이면 업고 끌고 가고, 그러다 너무 힘들면 함께 쉬었다 가고, 다시 힘을 내어 가고 또 가야 하는 집으로 가는 길. 고생스럽고 힘든 길. 그러나 우리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바울에게 묻고, 베드로에게 묻고, 요한에게 묻고, 시편의 다윗에게 물으며 가는 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보고, 모르면 묻고 또 묻고, 그렇게 그 살아계신 말씀에 의지하며 가는 길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 . .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하나님 앞에는 아무 피조물도 숨겨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히 4:12-13) 


하나님께는 무엇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겉 마음, 속 마음 이미 다 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 앞에 뭘 감출 생각 말고, ‘나 이렇습니다, 이미 다 아십니다, 그러니 나를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나를 좀 바꿔주십시오’ 하나님께 두 손 두 발 다 드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듣고, 또한 그 주님의 분별의 영의 도움으로 제대로 그 말씀을 깨우칠 수 있고, 그래서 제대로 그 진리의 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로 갈 수 있습니다. 


3.        

그 길은 나 혼자서, 우리끼리만 가는 길이 아닙니다. 

터벅터벅, 세상 다 끝났다는 듯 엠마오로 길을 가던 제자들 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모른 척 함께 걸어가십니다. 도대체 무슨 그런 맥없이 죽음을 맞는 메시아가 다 있을까, 풀 죽고 기 죽고 희망도 없고 무엇이 죽고 없는 채로 집으로 가는 제자들입니다. 그 곁에서 함께 걸으시며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마땅히 그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찬찬히 일러주십니다.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에 그 그리스도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 제자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십니다. 점점 제자들의 집에 다 와 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더 멀리 가는 척하십니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그렇게 예수께서는 그들의 집에서 들어가셔서,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십니다. 그제서야 그 제자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봅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사라지십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는 그들은 거기 집을 떠나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비로소 ‘집으로 가는 길’을 가는 두 제자입니다. (눅 24:29-35)


photo by noneunshinboo 


4.        

우리는 오늘도 집으로 가는 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을 갑니다. 

물어 가고, 더듬어 가고,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가고, 날리는 흙먼지 마시며 가고, 오는 비에 젖고 쌓인 눈 밟으며 갑니다. 때론 어둡고 험한 길, 손도 발도 찔리고 찟기고, 그렇다고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는 길, 오롯이  내 몫인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들어선 이 길,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말 집으로 가는 그 길이 맞는지, 내가 집으로 가는 버스는, 기차는, 비행기는 제대로 탔는지, 알아야 합니다. 멈춰야 하는지, 되짚어 가야 하는지, 아예 이 길은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야 하는지, 지금 타고 있는 차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당신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을 가십니다. 알려주십니다. 걸어가시면서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나를 샅샅이 살펴보셔 나를 환히 아시고,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다 아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아시고,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다 살펴 아시고, 그래서 나의 모든 행실을 다 아시고, 심지어 나의 입으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아시는 분. 그 분께서 도우십니다.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십니다. 내게 당신의 손을 얹어 주십니다.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니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를 계속해서 살펴보십니다. (시편 139:1-3, 23-24)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주님, 지금 여기, 당신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작가의 이전글 집으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