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밖 왕자와 거지

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16)

by 교회사이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세 번째 주 월요일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가,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도 죽어서 묻히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 (누가복음서 16:19-26)


The Rich Man and the Poor Lazarus, Hendrick ter Brugghen, 1588-1629.jpg The Rich Man and the Poor Lazarus, Hendrick ter Brugghen, 1588-1629


‘왕자와 거지*’의 그 소설 속에 있는 결말은 소설 밖에는 없습니다.

부자와 거지, 둘 다를 위한 ‘happily ever after’의 헤피 엔딩은 없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왕자는 왕자일 뿐이고, 거지는 거지일 뿐이다, 그게 소설 밖 현실이다.”

우리,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른 결말 찾아 판타지를 읽고, 영화관을 찾습니다.


여기 예수께서 들려주신 우화의 결말은 ‘왕자와 거지’의 결말과 다릅니다. 둘 다를 위한 헤피 엔딩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자는 계속해서 부자일 뿐이고, 거지는 계속해서 거지일 뿐이다, 이게 소설 밖 우리 사는 현실이다.”

그런 결말도 아닙니다.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도 죽어서 묻히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러니,

“있는 것이 죄고, 없는 것이 복이다.”

그런 말씀도 아닙니다.


회개의 길.JPG photo by noneunshinboo


“아브라함 나의 조상이시여, 소원입니다.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제발 나사로가 가서 내 형제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고통 받는 이 곳에 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6:27-28)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지금 부자가 보고 있는 것처럼,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던 그 거지 나사로를 그때 부자는 보았어야 했습니다. 왕자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왕자가 되는, 부자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부자가 되는, 그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어야 했습니다. 부자는 그때 거기, 거지 나사로를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예언자로, 그리고 나의 이웃으로 여겼어야 했습니다.


깨달음은 왜 항상 늦을까요?


대림절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 그리고 내 삶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를 가르쳐 주시고, 또한 그렇게 내가 살도록 도와 주옵소서. 아멘.” (시편 19:14)


*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소설 <The Prince and the Pauper>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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