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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Nov 13. 2021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씨 되는 사람

노는(遊)신부의 수상수런수다 (7)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이 있는 풍경 (1)


여기 고흐*의 씨 뿌리는 마음이었을까, 씨 되는 마음이었을까? 


“우리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확신했던 고흐. 그는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한 명이 되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싶었다. 목사가 되고 싶었고,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다. 이렇게 저렇게 무엇을 재거나 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나운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거친 들판을 달리고 싶었다. 그리스도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복음을 향한 사납고 거친 사랑과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고흐에게 목사직 준비를 위한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는 시간 조차 낭비로 여겨졌고, 교회 안에서 설교 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평범한(?) 목사의 삶은 그의 소명이 될 수 없었다. 


“브라반트의 농부들은 너무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삶을 견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불쌍한 여인들은 무엇을 삶의 버팀목으로 삼고 사는가? 그리스도의 모습,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닌 놀라운 능력과 매력이 이 가련한 이들을 받쳐 주는 기둥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흐는 가난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가혹한 현실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죄, 회개, 심판이라는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의 복잡한 언어로 말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단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하루 하루의 힘겨운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소박하고 단순한 언어로 말하고, 또 함께 고난과 고통을 나누는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곤고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는 벽이 되고, 함께 버텨 줄 나무가 되고, 힘 없이 무너져내리지 않게 도와줄 기둥이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고흐는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구별되는 ‘평범한’ 목사가 되기를 거부한 고흐는 기존의 교회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목사가 되지 못했고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소명을 찾았다. 그리고 가난한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화가가 된 고흐는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와 쉼과 기쁨을 준다. 




가난한 그리스도,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마음의 가난한 화가 고흐. 격정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온 몸으로 살았던, 그리고 그 보다 훨씬 더 드라마 같은 그의 그림들. 여기 이 그림 속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일까? 그리고 씨 뿌리는 농부의 그 씨 뿌리는 마음은 그때 처음 가난한 사람들의 목사가 되고자 했던 고흐 자신의 마음일까?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새로운 소명의 길, 그 가난한 길을 가는 마음일까? 아니면, 언제나 늘 그가 갖고 있었던 한결 같은 그 마음일까? 

교회가 기대하는 평범한 목사가 될 수 없었던 고흐, 그는 실패한 목사, 아니 그냥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였을까? 그리고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 그러나 고흐는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았다 – 고흐는 교회에게 손실이었까? 아니면, 오늘날 더 큰 세상, 더 큰 교회를 위한 소중한 선물일까? 

여기 씨 뿌리는 사람, 그 농부의 손을 떠나 땅으로 뿌려진 씨는 고흐가 아니었을까? 그의 삶, 그의 그림들이 그 씨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의 외아들을 주실 만큼 하나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신 세상’****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 그림은 고흐에게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의 유일한 언어였다. 그리스도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복음을 고흐는 자신의 가난한 삶과 그림을 통해 그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사랑했고 살아냈고 전했다. 


여기, 씨 뿌리는 마음이고, 씨 되는 마음이고, 그리고 밭에 뿌려진 씨가 된 고흐와 그의 그림이 있다. 


photo by noneunshinboo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마가복음 4:30-32, 참조 마태복음 13:31-32; 누가복음 13:18-19)


지금 여기, 필요한 일은 씨 되고, 씨 뿌리는 일이다. 


아무 나무에 기대어 그 그늘의 작음을 소박하다, 이만 족하다 스스로 위안하기 보다는, 그나마의 작은 저들의 쉴 곳을 빼앗긴 채 깃들 가지 쉬어갈 그늘 찾아 여전히 공중 그 나무 위 배앵뱅 피곤한 날개의 새들에게 미안함을 갖기 보다는, 나중 더 큰 나무를 찾으러 가는 길 그 힘을 얻기 위함이라고 애써 이유를 대며 지금 여기 빼앗듯 얻은 그늘에 안도하기 보다는, 저기 저 풀들 그 사이 가시넝쿨 위라도 할 수 없이 내려 앉은 새들 보단 그래도 내가 낫겠지 하는 못된 쾌감 갖기 보다는, 여직 쉴 곳 머물 곳 없어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이들을 처량하다 속으로 혀를 차기 보다는,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씨 뿌리는 어리석은 듯한 그 수고로움과 고단함, 기다림이 낫겠다 싶어 나 지금 여기 씨 뿌리는 것이 좋겠다. 


크다 작다, 벌써 손에 쥔 씨 조차 비교를 해야 하고 비교를 당해야 할 무엇으로 보는 여전한 나의 좁아터진 철딱서니를 어찌할까마는, 그래도 무슨 굉장한, 어마무시한 것은 아니더라도, 크게 무엇을 이루어 내겠다는 큰 생각 없이, 적어도 나를, 내 가족을, 잘하면 몇몇 내 이웃을 위한 작은 그늘 드리울 수 있지 않을까, 혹시 하는 믿음과 미심쩍은 희망, 그리고 그들을 향한 아직 그리 크지 못한 사랑으로 여기 씨 되고 씨 심기를 주저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심고 또 옆에 네가 따라 심고, 또 그렇게 하나 둘 심다 보면, 어느새 초라함은 뒷전으로 밀려나 작은 숲 되고, 또 그렇게 제법 이룬 숲 이름 모를 새들 깃들어 음악이 되고, 지나는 나그네들 배낭 벗고 쉬어 가는 넉넉한 그늘 되고, 아이들 천방으로 뛰어 노는 놀이터 되고, 어른들 그간 씨 뿌리고 물 주던 얘기로 시끄러운 수다 가득 사랑방 되고, 어느새 시끌벅적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노는 제법 동네 잔치 마당되지 않을까? 


그렇게 그 하늘의 나라, 여기 숲 되고, 그렇게 여기 땅 위 작은 숲, 하늘의 그 큰 나라 된다. 씨 뿌리는 마음으로 오늘을 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렵지만, 힘들지만, 하늘나라 그 씨 되신 그 분 따라 나도 그 씨 되고, 그 씨 뿌리는 그 농부 따라 그 씨 나도 뿌리고 심고, 우리 서로 물 주고 서로 가꾸고 서로 지켜보고, 하면 좋겠다. 수고스럽지만, 그러다 보면, 가지 뻗고 그늘 드리울 날, 새들 깃들 날 오지 않을까? 나무 하나 둘, 그리고 그 나무들이 이루어 갈 숲을 그리며, 씨 되고 씨 뿌리고 물 주고, 기다리며 먹고 마시고 쉬고, 그리고 놀며 수다도 떨고, 함께 그러면 좋겠다. 


우리, 지금 여기 필요한 일은 그 씨 되고, 그 씨 뿌리는 일이다. 그리고 뿌린 그 씨에 서로 물 주는 일이다. 


“씨 뿌리고 물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 전서 3:6-7)



* 나는 ‘고흐’ 보다는 ‘고호’, ‘바흐’ 보다는 ‘바하’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친한 친구를 부르는 것 같아 좋다. 아마도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졸업해서 그런가 싶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개가 고흐와 바흐라 부르니 별 수 없이 나는 ‘고흐’와 ‘바흐’라 쓰고, 대신 ‘고호’와 ‘바하’라 읽고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고호를 고호답게, 바하를 바하답게’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 <빈센트 반 고흐, 태양을 보다> 발터 니그 지음, 윤선아 옮김, p. 21

*** 같은 책, p. 21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

***** 이 글은 저의 페이스북 노는(遊)신부(Noneunshinboo)의 ‘교회사이(ChurchShy)에 있는 저의 글을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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