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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Nov 17. 2021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보고서

노는(遊)신부의 더 드라마, 길 잃은 양을 찾아 길 떠난 예수 (1)

Saint Luke the Evangelist. Russian Eastern Orthodox icon from Russia. 18 Century


"우리 가운데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 엮어냈습니다. 그런데 존귀하신 데오빌로님, 나도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 각하께 그것을 순서대로 써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각하께서 이미 배우신 일들이 확실한 사실임을 아시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누가복음 1:1-4, 새번역)


누가는 지금 ‘그때 거기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주려 한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먹고 마시고 걷고 뛰고 잠자며 몸으로 겪은, 그 일어난 일들의 현장과 사건을 살았던 사람들, 목격자로 증인으로 또한 이렇게 저렇게 연루된 그들의 거짓없는 이야기, 생생한 증언들, 그리고 살아있는 목격담들을 그때 거기 없었던 ‘데오빌로’ 그리고 오늘 여기의 수 많은 ‘데오빌로들’에게 마치 그들로부터 직접 보고 듣는 것처럼, 그리고 내 눈과 내 귀로 실제로 보고 듣는 것처럼, 누가는 그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을 그 일어난 일의 순서대로, ‘하나의 이야기’로 쓸 것이다.  


그 ‘하나의 이야기’는 누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상상력을 발휘해 여기 저기서 듣고 읽은 이야기들 섞고 조립해 재구성한 그럴듯하게 꾸며낸 이야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물, 허구의 소설이 아니다. 역사가로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일들이 일어난 바로 그 현장을 카메라와 노트를 들고 동행 취재를 한 기자로서도 아니다. 한 명의 신학적 다큐멘터리, 신앙의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일어난 사건들, 일어난 그 일들을 거짓 없이, 충실하게, 성실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전하는 한 명의 충직한 종으로, 신앙의 증인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사실들을 한데 모아 우리에게 전할 것이다.


photo by noneunshinboo


누가에 앞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발에서 발로 전해진 그 일어난 일들, 그 사건들, 그 사실들을 갖춰지고 통일되고 일관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들려주었다. 누가도 그것을 보았고 들었고 또 읽었다. 그리고 이제 누가는 그 ‘하나의 이야기’를 그 자신의 시각과 방식으로 ‘다르게’ 쓸 것이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지금 누가가 쓰려는 이야기가 그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새 이야기’ 즉 ‘다른 이야기’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전해져 온 그 ‘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틀렸기 때문에 누가가 다시 손을 댄다는 뜻도 아니다. 그 전해진 ‘우리 가운데 일어난 일들’ 그리고 그 ‘하나의 이야기’만이 누가에게 근거와 자료와 기준이 될 뿐이다. 그러나 누가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그 맨 처음부터 면밀하고 세세하게 다시 조사하여 그 일어난 순서대로 같은 그 ‘하나의 이야기’를 지금 새롭게 쓰려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누가복음서는 그래서 누가 자신의 허구의 소설도 순수 창작물도 독창적 연구서도 아니다. 물론 그 실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유일한 보고서 역시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을 누가가 그 시작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순서대로 정리하여 쓴 그의 복음서를 다른 세 개의 복음서들 – ‘그 일어난 일들’을 누가와는 또 다른 시각과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누가가 사용한 자료들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많은 자료들을 이용하여 다르게 그러나 똑 같은 그 ‘하나의 이야기’에 대해 쓴 마가복음서, 마태복음서, 그리고 요한복음서 – 과 함께 읽는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다른 목소리로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로 전하고 증언하는 네 명의 증인, 네 권의 복음서, 네 개의 증언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보다 입체적으로 읽고 본다. 




오늘 우리는 누가의 복음서를 오래 전 묻히고 잊히고 숨겨져 온 흥미로운 과거지사들을 생생히 기록한 역사책으로 읽지 말아야 한다. 이야기꾼에 의해 꾸며지고 덧붙여지고 만들어진 흥미진진한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감동과 교훈과 인생의 지침을 주는 한 권의 이야기책으로, 거기 그때에 일어난 일들과 사건을 요리조리 짜 맞추고 온갖 향신료 첨가해 만들어낸 실제 같은 허구, 현실 같은 상상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소설로, 혹은 한 위대한 인물이나 성인의 삶을 다룬 ‘내 어찌 저렇게 살까 난 못하지’의 위인전, 성인전으로 읽지 말아야 한다. ‘저 분 참 말 잘하네, 자기 얘기를 어떻게 내 얘기처럼 저렇게 말을 잘할까’ 감탄하며 어느 유명 초청 강사의 썰을 듣 듯 그렇게 들을 일도 아니다.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 그냥 연극 무대 혹은 영화 스크린을 오가는 배우들 보듯, 저들 나름의 열띠고 절절한 그러나 여기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처럼 사회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둔 채 방해하지도 방해받지도 않고, 그들 따라 울기도 웃기도 때론 분노도 환호도 하는 전혀 손해보는 일 없는 관객처럼 그렇게 보지도 말아야 한다. 


복음서를, 그리고 성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일’이다. ‘읽는 일’이고 그 읽은 것을 ‘사는 일’이다. 누가처럼, 마가와 마태처럼, 그리고 요한처럼, 지금 여기 우리는 한 명의 증인으로, 복음의 전파자로, 그들이 들려주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사는 일’로 읽어야 한다. 사실과 사건, 그 현장 속으로, 그 무대 위로 곧 올라가길 기다리는 배우, 그리고 이제 막 무대 위에 오른 배우, 그리고 지금 그 무대를 사는 배우가 되어 읽어야 한다. 나의 눈으로 당연하게 직접 보고, 나의 입으로 진실하게 말하고, 나의 몸으로 절절하게 겪고, 나의 생각과 마음으로 충분히 만지고 느끼고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photo by noneunshinboo


그리고 누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말라 한다. 내 주변의 수 많은 ‘데오빌로들’ –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오고 있는 다음 세대들 – 에게 들려주고 전해야 할 책무를 저들 복음서 저자들과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십자가라면 십자가일 것이고, 이것이 제자의 길이라면 제자의 길이라 하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어짐 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온 그 기쁜 소식, 그리고 그 비밀스럽고 놀라운 이야기의 무수한 증인들의 고리들, 우리 그 하나의 고리가 되어야 한다고 누가는 말한다. 우리에 앞서 그 기쁜 소식을 보고 듣고, 또 그 소식을 눈과 입으로 손과 발로 몸과 맘으로 살며 기쁜 소식의 증인의 책무를 짊어졌던 증인이 되자고 한다. 내일을 살고 내일의 증인들이 될 다음 세대를 위해 여기 지금 그 기쁜 소식의 증인이 되자고 한다. 그 길 함께 걷자 한다. 우리 비록 그 쓰는 재주는 보잘 것 없고, 그래 그 일어난 일들의 순서 정리는 엉망이더라도, 그 전해진 바 잘 듣고 잘 보고 잘 읽고 그리고 잘 배우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온 몸과 온 맘으로, 온 삶으로 함께 쓰며 가자 한다. 우리 비록 글씨 삐뚤고 맞춤법 허술하고 표현 어설프고 어색한 것은 그리 중요한 것 아니다. 그 말씀, 그 내용 충실하게, 복음을 복음으로, 복음을 복음 답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복음서는 오늘 우리에게 전해졌고 또 우리가 전해야 하는 이야기, 계속해서 쓰여져 왔고 앞으로도 쓰여질, 그리고 써야 하는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에게 열린 증언서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읽고 또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더 드라마(The Drama)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눅 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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