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도

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22)

by 교회사이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네 번째 일요일


“예수께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를 따라갔다. 그 곳에 이르러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신 뒤에, 그들과 헤어져서,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와서 보시니, 그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누가복음서 22:39-46)


슬픈 희망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읽는 데 십 초도 걸리지 않는 아주 짧은 문장, 아주 짧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정말 짧을까요?


아버지, . . .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 . .

내게서 . . . 이 잔을 . . . 거두어 주십시오. . . .

. . .

그러나, . . .

. . .

내 뜻대로 . . . 되게 하지 마시고, . . .

아버지의 뜻대로 . . . 되게 하여 주십시오. . . .




그·러·나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와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 사이에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그 ‘그러나’는 심연처럼 깊고 또 깊은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있는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흐르던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몸을 타고 흘러 땅을 적시고 골을 내어 붉은 내가 됩니다. 흐르고 흘러 깊어져 ‘고뇌의 강’이 되고, 모이고 넓게 흘러 하늘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너무도 큰 ‘그러나’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그러나’입니다. 나를, 그리고 우리를 바꾸는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에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까지는 참으로 길고 먼 길입니다. 누구는 평생이 걸리는 길입니다. 또 누구는 평생이 걸려도 못 가는 길입니다.


길 위에 선 마리아의 돌.jpg photo by noneunshinboo


우리는 ‘그러나’ 그 앞에 멈춥니다. ‘그러나’로 갈 생각도 않습니다. 겨우 ‘그러나’를 입 밖에 내도 곧 후회하며 힘겹게 이렇게 내뱉습니다.

“. . . 그러나 . . . 그래도 주님, 내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시면, . . .”


그래서, ‘그러나 기도’는 따라 하기 참 어려운, 따라 하기 참 쉽지 않은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그러나’이고, ‘그러나 기도’입니다.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깨어 기도하는 것보다는 주님을 따라 ‘그러나 기도’를 하는 것이 사실 우리에게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때로는 그래서 기도하다 자는 척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림절, 아버지께 하신 주님의 ‘그러나 기도’를 따라 기도합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의 앞과 뒤에 아주 긴 침묵을 두고, 주님의 ‘그러나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 . .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 . . . . . 그러나, . . . . . .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 . .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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