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24)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네 번째 주 화요일
“이레의 첫날 이른 새벽에,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의 시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갑자기 그들 앞에 나섰다. 여자들은 두려워서 얼굴을 아래로 숙이고 있는데, 그 남자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아라.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서,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알렸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이 여자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이 일을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에게는 이 말이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렸으므로, 그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서 무덤으로 달려가, 몸을 굽혀서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누가복음서 24:1-12)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다 보면,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기다리다 보면, 정작 내가 살아 있는 것인지 죽어 있는 것인지, 내가 찾고 기다리는 이가 살아 있는 자인지 죽어 있는 자인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찾는다 기다린다 무덤가를 어슬렁거리다 힘이 들어 무덤가에 자리 깔고, 그러다 무덤가에 터 잡고, 그러다 그만 내가 무덤 되어 무덤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여태 거기서 기다렸단 말이냐?”
그때 제자들은 거기 무덤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더는 아닙니다. 더는 무덤가가 만남의 장소가 아닙니다. 기다림의 장소가 아닙니다. 추억의 장소도 아닙니다.
죽은 자들의 자리에 산 자가 터를 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산 자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산 자가 죽은 자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기다리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로 오시지 않고, 주님께 살아 있는 사람들, 주님 안에 영원히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오실 것이다.”
내가 기다리는 이는 살아 계신 주님입니다. 그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나 역시 살아 있는 나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께 우리 모두는 살아 있습니다.
대림, 살아 있는 내가 살아 계신 주님을 기다립니다.
성탄, 살아 있는 내가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한해. 내가 주님 안에 살아 있는 것이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는 것이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마다 반복하는 ‘한해살이’입니다.
그렇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하다 우리, 주님 안에 주님과 ‘영원살이’를 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니, 아침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말씀을 듣게 해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의지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의 선하신 영으로 나를 이끄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시편 143: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