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25)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네 번째 주 수요일
“. . . 사가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인데, 이름은 엘리사벳이다. 그 두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자이고, 두 사람은 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가랴가 . . .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 . .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분향하는 제단 오른쪽에 섰다. 그는 천사를 보고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 그 아들은 네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될 것이다. . . .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 . . . 엘리사벳은 해산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 . .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하고 쓰니, 모두들 이상히 여겼다. 그런데 그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누가복음서 1:5-25, 57-63)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알겠습니까? 나는 늙은 사람이요, 내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 말입니다.” (1:18)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거울 앞을 떠나지 않을 이유는 있습니다. 당장 집 밖으로 나서지 않을 핑계는 많습니다. 조금 늦는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내가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여태 내가 안 기다린 것도 아니고, 더 멋지게 보이고 싶고,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을 뿐인데. 구실은 넘쳐납니다.
그 사람도 이것저것 챙기느라 조금 늦겠지, 왔는데 내가 없으면 조금 기다리겠지, 거기 기다리다 내가 안 오면 여기 찾아오겠지, 여기 찾다 못 찾으면 내일 다시 거기 오겠지. 생각도 많습니다.
요리조리 한참을 살피다, 이참에 거울이나 몇 개 더 사다 놓을까, 생각은 엇나가 그만 딴 길로 새고 맙니다.
내가 기다리지 않을 이유, 내가 가지 않을 이유, 나는 아니다 할 이유는 많습니다.
그가 오지 않을 이유, 그가 나에게 오지 않을 이유, 그는 아니다 할 이유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이유는 늘 있고, 우리가 대는 핑계는 늘 많고, 우리가 가져다 붙이는 구실은 늘 넘칩니다.
그러나,
‘내가 . . . 않을 이유’는 내가 찾아낸 핑계일 뿐이고, ‘그가 . . . 않을 이유’ 역시 내가 만들어낸 구실일 뿐입니다.
“그 두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다.”
그러나, ‘은총’은 내가 나에게서 찾아낸 이유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은총’이 내가 그 분에게서 찾아낸 이유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은총’이 나에게 오는 이유는,
오직 ‘그 분’입니다.
오직 그 분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
그 ‘사랑’이 왜 나에게는 오지 않을까?
그게 알고 싶고, 그래서 여기저기 묻고 다닙니다. 묻고 묻고 또 묻고, 그러다 지쳐 나는 다시 그 이유를 찾고, 그 핑계를 대고, 그 구실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보아라,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네가 믿지 않았으므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1:20)
너무 오래다 싶을 만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상하다 여길 만큼, 사가랴가 주님의 성소 안에서 있던 그 시간 만큼, 주님 앞에 그리고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나를 돌아보셔서 사람들에게 당하는 내 부끄러움을 없이해 주시던 날에 나에게 이런 일을 베풀어 주셨다.” (1:25)
그러면 엘리사벳의 이 고백이 나중에 우리의 고백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입도 풀려 사가랴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까요?
성탄을 기다립니다.
바쁨은 뒤에 두고, 작심하여 주님을 기다리는 때,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봅니다.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멘.” (시편 1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