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4-1)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마태복음서 2:1-9ㄱ)
1.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별이 많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저 수많은 별들 속에서 고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고호는 저 별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고호는 별을 보며 혹시 어떤 소망을 가졌을까요? 별을 보며 혹시 누구를 기다리거나 혹은 누구를 떠올렸을까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한때는 목사가 되겠다 했던 고호였습니다. 그러다 화가가 된 고호는 지금 혹시 별이 빛나는 그 밤, 그 별을 보며 비록 몸은 교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그리스도 예수, 그 아기 예수를 떠올렸을까요?
그리고 오늘 함께 읽으신 마태복음서 2장에서 보이는 그 동방박사들은 별이 빛나는 밤, 그냥 그 별을 바라만 보지 않고, 그렇다고 고호처럼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아예 그 별을 따라 길을 왜 나섰을까요? 그 동방박사들은 그 별이 빛나는 밤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무엇을 소망했었을까요? 도대체 그 별을 통해 무엇을 보았길래 그 먼 길을 떠날 생각을 했었을까요? 그리고 별을 따라 사막과 광야를 건너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그 먼 길을 가면서 그들은 이 길 끝에 무엇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무엇을 보길 기대했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별이 멈춘 거기서 그들이 본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한 아기와 그 아기의 엄마와 아빠였는데.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그 먼 길을 떠나 보고 싶었고 기대했던 것이었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여행에서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을까요? 그리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동방박사들은 남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갔을까요?
참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그런 궁금증을 참아내지 못하고 아예 그 동방박사들을 연구 과제로 삼아 연구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또한 지금도 있습니다.
2. 별이 사라진 밤, 예루살렘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았고, 그래서 그 별을 따라 사막과 광야를 건넜습니다. 아마도 요단 강도 건넜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당연히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왔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나셨으니 당연히 예루살렘 성으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왕이 왕궁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보란듯이 하늘에 별도 떴었겠다, 저 멀리 서쪽 끝에서도 보였던 별입니다. 동쪽 여기로 향해 왔던 그 별을 당연히 유대 사람들이 보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온통 난리겠구나 싶었습니다. 설마 유대 사람들이 저들의 그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가 했던 예언의 말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 . . 많은 낙타들이 너의 땅을 덮을 것이며,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너의 땅을 뒤덮을 것이다. 스바의 모든 사람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다. . . .” (이사야서 60:1-7)
그 선지자 이사야의 말 대로 지금 이들은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까지 예물로 갖고 낙타를 몰아 그 먼 동방에서 여기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구원의 빛, 주님의 영광의 아침 해가 떠 오른 것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웬걸 너무 조용합니다. 헤롯 왕은 여전히 건재하고, 사람들은 별 일 없이 살고 있고,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합니다. 헤롯 왕뿐이 아닙니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함께 당황합니다. 헤롯 왕이야 내가 왕인데 다른 새 왕이 나타났다 하니 당황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그런데 왜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덩달아 당황할까요?
별 일 없이 사는 삶, 별 볼일 없이 사는 인생이라 별을 보고 별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는 동방에서 온 그 사람들이 한심해서 그랬을까요? 날 좋으면 늘 있는 별이 뭔 대수라고 별을 보고 별을 따라 이 먼 곳까지 온 이유가 뭘까? 자기들의 왕도 아니고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데, 무슨 속셈으로 왔을까? 여기 이렇게 예루살렘 안에는 헤롯 왕이 버젓이 있고, 그리고 예루살렘 밖에는 로마 황제가 있는데. 그래서 당황스러웠을까요?
3. 별이 있는 밤, 베들레헴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별만 바라보고 별만 쫓다 보니 중요한 걸 그만 놓쳤습니다. 급하게 서둘러 오느라 그랬는지, 산 넘고 물 건너 모래 바다도 지나 먼 길을 오느라 정신이 없어 그랬는지, 정작 중요한 걸 몰랐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와 동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선지자 미가가 한 예언의 말은 몰랐습니다. 그 미가 선지자의 말입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미가서 5:2-5)
유대를 넘어 온 세상의 왕, 유대인을 넘어 온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오실 평화의 왕은 여기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저기 별이 빛나는 밤의 작고 초라한 불 꺼진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엄마 마리아와 아빠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는 베들레헴 거기에만 들어갈 방이 없던 것이 아닙니다. 여기 예루살렘에도 들어갈 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그 예루살렘이 여기 이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새로 나실 유대인의 왕은 거기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 옛날 다윗 왕이 태어났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윗 왕이 태어난 곳에서 다윗 왕의 자손으로 태어나실 그 새 유대인의 왕은 그러나 유대를 넘어 온 세상의 왕이시라는 것, 그래서 새로 세우실 예루살렘은 땅 위에 사람의 손으로 세워질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늘에 뜬 그 별이 들어갈 빈 방이 없는 거기 예루살렘에서 새 왕은 나실 수가 없습니다. 계실 수가 없습니다. 거기는 살 곳이 아니라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곳입니다.
4. 다시 별이 나타난 밤
그런데 왜 별은 동방박사들에게는 보였고 헤롯 왕을 비롯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까요? 왜 예루살렘 성 그 안으로 동방박사들이 들어서자 별은 사라지고,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 성을 나서자 그 별은 다시 나타났을까요?
도시생활은 별과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도시에선 별 보기가 어렵다, 별이 사라졌다, 별이 많이 없다, 그런데 별은 늘 저 위, 늘 우리의 머리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를 벗어나면 보입니다. 잘 보입니다. 많은 별들을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도시는 너무 밝습니다. 별빛이 들어올 공간이 없고 여유가 없고, 별이 와서 머물 빈 방이 없습니다. 별을 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별은 사막에서, 광야에서, 무엇이 없는 바다에서 별은 더욱 빛나고, 그래서 거기에는 별이 빛나는 밤이 있습니다.
너무 밝은 도시의 밤. 밤에도 낮처럼 밝아야 일을 할 수 있고, 놀 수 있고, 욕망을 채울 수 있고, 내 손에 쥘 것이 많아질 것이고, 성공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밤을 잊고 삽니다. 별이 빛날 수 없는 밤을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별이 빛나는 밤을 잊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로마 황제와 헤롯 왕이 밝힌 불들이 찬란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밝힌 불들로 화려합니다. 줄곧 땅만 보고 사니, 하늘을 올려 볼 일이 적어집니다. 화려한 불빛에 넋을 놓으니 하늘에 떠 나를 비추는 별, 그 은혜도 잊습니다. 나에게 눈을 고정하니 서로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그런 그들 한 가운데로 낯선 이들이 불쑥 들어옵니다. 바로 동방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별을 보고, 별을 따라, 별을 쫓아 여기로 왔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구원의 빛, 그 소식이 낯선 곳, 낯선 사람들로부터 왔습니다. 여기 예루살렘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곳이다. 그런데 사실은 거기가 바로 별이 빛날 수 없는 곳이 되어갔고, 별을 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갔다는 것을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알려줍니다.
그러나 사실 동방에서 온 이들은 유대인들이 어둠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죄인이라고, 이방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먼 길을 와서는 당신들 유대인의 왕이 새로 오셨다고, 새로 나셨다고, 어디에 계시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아니라는 말에 동방에서 온 사람들은 곧 길을 다시 떠났습니다.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2:9-12)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 그 도시의 편안함과 안락함과 화려함과 웅장함 그리고 도시의 밝음을 두고 다시 어둔 밤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길을 걸어 마침내 별이 멈추어 머문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나신 유대인의 왕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여행의 이유가 있던 곳, 목적이 있던 곳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4-2,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그 사이’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