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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Jan 27. 2023

함께 맞는 비, 함께 걷는 길

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5-2)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마태복음서 3:13-17)



1.       함께 맞는 비 


예수께서 죄인들의 무리에 서시어 함께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께서는 비를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와 함께 비 맞는 것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주님과 함께 맞는 비는 그러나 곧 함께 맞는 하나님의 은총의 비가 될 것입니다. 


요단 강, 그 회개의 강가에 내리는 비, 그 한 복판에 서 계신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 너희는 어떻게 입장을 정리하겠느냐? 저기 남의 일처럼, 난 죄인 아니다 하며 관객처럼 구경할 것이냐, 그래서 거기 속 편한 입장으로 설 것이냐, 아니면 불편하고 조금은 겁이 나더라도 나와 함께 이들과 비 맞으며 비 속에 있겠느냐, 그래서 함께 비 맞으며 함께 구원의 길 걷겠느냐?”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받는 세례입니다. 그 예수의 길 위에 나도 서겠다, 그 비 나도 함께 맞겠다, 주님 따라 나 그 길 걷겠다, 주님의 입장으로 살겠다, 다짐하며 받는 것이 세례입니다.  




2.       함께 비 맞아줄 사람


사는 것이 정말 힘에 겨울 때, 너무 힘들어 그만 멈추고 싶을 때, 아무리 둘러보아도 딱히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을 그 때. 우리는 누구를 찾을까요? 누가 봐도 잘나고, 누구라도 부러워하고, 누구보다 성공한 사람을 우리는 찾을까요? 나와는 완전히 다른 그런 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을 찾을까요? 아니면 나를 잘 아는 사람, 나를 이해하는 사람, 무엇보다 나의 처지에 있었던 사람, 혹은 지금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찾지 않을까요? 내가 겪는 이 아픔을 겪어 본 사람, 그 아픔을 아는 사람, 무엇보다 지금 그 같은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않을까요? 공감하며 동병상련의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않을까요? 


나에게 우산을 받쳐주었던 사람, 나에게 자기의 우산을 주었던 사람, 자기 우산을 함께 쓰자 했던 사람을 찾을 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내가 힘이 들고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 우리는 나와 함께 그때 그 시절 그 비를 함께 맞던 사람, 지금 나와 함께 이 비 맞겠다 당장 자기 우산 내려놓고 달려올 사람, 그리고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이 비를 함께 맞고 함께 걷고 함께 우는 사람이 아닐까요? 너무 비가 많으면 어느 처마 밑으로 나를 슬며시 데려가 함께 비를 피하고, 비 조금 잦아들면 또 함께 걷고 뛰고 . . . 그러다 어느새 함께 웃고 노래도 흥얼거릴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나중에 보니 우산이 없어 나와 함께 비 맞은 것이 아니라, 자기 우산 던져 놓고 나와 함께 비 맞던 그 사람을 우리는 찾지 않을까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서 23:41-42)

그 예수님은 그리고 끝까지, 죽음에 자리까지 우리와 함께 비를 맞으십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3.       핑계는 말고, 비 맞자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남자는 지금 그 떠난 여자의 입장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입장에 설 마음도 생각도 없습니다. 왜 웃으며 헤어지자고 했는지, 왜 자기를 웃으며 보내 달라 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남자는 그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남자는 그때 그 여자의 입장에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 여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입장에만 서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혹시 지금 이 남자가 고집스럽게 자기의 입장에만 서 있는 것, 그게 그 여자가 이 남자를 떠난 이유는 아니었을까요? 그때 여자가 서 있었던 입장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줄곧 힘들었고, 괴로웠고, 외로웠던 그 여자가 서 있던 입장에 대해 남자가 너무 무지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우산만 씌워주면 된다고 우산만 씌워줄 뿐,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홀로 맞던 그 비를 함께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함께 그 비를 맞아주어야 했는데, 너는 왜 바보처럼 비를 피하지 않고 가만히 그 비를 혼자 다 맞고 있냐고, 여기 우산 속으로 들어오라고 재촉만 하진 않았을까요? 그녀는 사실 비를 피할 곳이 없고, 비를 막아 줄 우산도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남자는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녀의 입장에 무지하고 또한 무시하진 않았을까요? 


그때 만약 여자가 처한 상황과 서 있던 입장 알았더라면, 그리고 이해했더라면 오히려 남자가 먼저 여자를 위해 먼저 헤어지자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그 여자의 입장을 내 입장으로 받아 안고, 그래서 함께 그 입장을 어찌어찌 함께 꾸려갔더라면 지금 여자는 어디 가지 않고 남자와 함께 있지 않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상상입니다. 




4.       함께 맞는 비, 제자가 되는 것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 8:19-20)

예수께서 가시는 것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서 계신 자리, 그리고 주님께서 서 계실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가는 것입니다. 

길 위에 계신 예수, 길을 걷는 예수,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 그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고 또한 그 길이 되시는 주님. 그래서 그 길을 가는 제자는 길 위에서 쉬지 않는 나그네, 순례자입니다.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머리 둘 곳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누울 자리가 되고, 비를 피할 굴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지금 여기 요단 강가, 회개의 세례의 줄에 예수님과 함께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지금 여기 요단 강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를 함께 듣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그 음성은 우리가 주님의 자리에 설 때, 주님께서 지금 서신 자리에 또한 우리가 설 때 우리에게도 거듭 들려올 것입니다. 또한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그만 멈추고 싶고, 그만 눕고 싶을 때, 그 목소리는 우리 안에서 들려올 것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5.       ‘하나님의 의’의 관계 속으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1:17-17)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또한 그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그 길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 올바른 관계는 단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자리에 서신 것처럼, 그래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슬퍼하시고 또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리에 서고, 또한 주님과 함께 우리 서로의 자리에 서고 앉고, 그리고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에서뿐 아니라 여기 땅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곁에 앉고 서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회복하고 살아야 할 올바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 서로가 맺고 살아야 할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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