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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Feb 04. 2023

광야로 간 예수

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6-1)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1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2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5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7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마태복음서 4:1-7)


The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Briton Rivière, 1898, Guildhall Art Gallery


1.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십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예수께 내려왔습니다.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여기 요단 강가, 회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서 있는 이 예수는 누구인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지은 죄도 없고, 그러니 회개의 세례를 받을 필요도 없는데, 굳이 그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이 예수는 누구인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까지 예수님을 쫓아다닌 질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2천 년간 인류가 끊임없이 물어왔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 어떤 답을 내느냐, 그리고 그 예수를 누구로 아느냐, 그 예수를 누구로 믿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삶의 결은 많이 달랐습니다. 


2.        


“예수는 누구인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런데 왜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그 질문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을까요? 혹시, 그때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정체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메시아상(像)과는 전혀 다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는 아닐까요? 


누가 보아도, ‘그래, 이분이 바로 메시아다,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왕 중의 왕,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시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정말 메시아라면 보다 확실하고 명확하고 뚜렷한 증거를, 그래서 누구나 ‘와~!’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조금의 의혹도 생기지 않도록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어야 하는데. 충분합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하셨어야 하는데. 자신을 좀더 증명하셨어야 했는데. 부족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계속되는 이유가 정말 그 증거가 부족하고, 그 설명이 약하고, 그 증명이 충분치 않아서일까요? 


3.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광야로 가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데려간 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는 영 맞지 않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를 시험하러 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시험을 받기 위해, 그것도 악마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 시험일까요? 통과를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닐까요? 지금 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맞긴 할까요? 


궁금합니다. 사탄이 따로 없습니다. 악마, 혹은 마귀라고 불리는 사탄은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을 잘 압니다. 사실 사탄은 이 예수가 누군지 몰라서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을 귀신같이 압니다. 그러니 사탄입니다. 우리의 가려운 곳을 잘 압니다. 때로는 우리를 가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그 가려운 곳을 긁어줍니다. 긁어주니 시원합니다. 시원하니 더 긁어 달라고 합니다. 긁고 또 긁고 . . . 조금씩 우리를 상처 냅니다. 결국에는 우리를 상하게 만듭니다.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4.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시오.”

사탄이 던진 첫 번째 시험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마음 속에는 이미 그 사탄의 마음, 그 시험관의 마음이 있습니다. 차마 대놓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진 못하니, 은근히 사탄이 지금 던진 그 시험 문제에 우리의 마음을 얹습니다. 우리의 가려운 곳입니다. 이 순간만큼은 내심 우리는 사탄의 편에 서 있습니다. 사실 우리 대신, 나 대신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탄이 그리 싫진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면 굶을 이유도 없고, 굶을 필요도 없고.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까짓 돌멩이를 빵으로 만드는 것이야 일도 아닐 테고.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걸 내 눈 앞에서 증명해 보이시오.”

이유 있어 보입니다. 

“밥이 하나님이다, 빵이 구세주다.”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거든, 우선은 배고픔, 그것부터 해결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면 적어도 그 문제만큼은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돌들을 빵으로 만드시면 그걸로 끝날까요? 나에게, 우리에게 돌을 빵으로 만들고, 나아가 돌을 금으로 만드는 그 능력을 눈 앞에서 보여주시면 그것으로 사탄은 그리고 우리는 충분하다 할까요? ‘이제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그럴까요? 나의 배고픔과 필요가 해결되고,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그럴까요? 


그 재주와 능력을 나에게 달라고 하지 않을까요? 씨만 뿌려도 알아서 쑥쑥 자라는 논과 밭을 달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사면 오르고, 내가 팔면 내리고, 그 귀신같이 사고 파는 능력을 달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들어주시면 우린 그걸로 만족할까요? 충분하다 할까요? 의심 없이 주저함 없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을까요? 그분께서 가시는 곳이면 군말없이 따라가고, 가라 하시는 곳이면 ‘네, 감사합니다’하며 갈까요? 흔쾌히 십자가를 질까요?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빵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모여 있는 그 5천 명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모두를 먹이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는 것은 곧 나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배 고픈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은 것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오히려 제자들 편에 서신 분이십니다. 배고픔, 그리고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빵에 매달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사탄의 시험의 핵심은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돌이 빵이 되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네가 너인 것을 증명해라’ 하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내 눈 앞에서 증명해라, 네 능력을 통해 너 자신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둘째이고, 우선은 너를 증명하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를, 네가 그럴 만한지를 나에게 증명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로 충분하니 네가 너를 증명해라, 너는 너로 혼자 설 수 있으니 그 하나님은 잠시 뒤에 두고, 너는 너를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NO!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나는 증명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뜻, 그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기에 왔다. 나는 내 아버지께 복종하겠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그 일을 나는 하겠다. 나에겐 우선 순위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photo by noneunshinboo 


5.        


악마는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려가 그 꼭대기에 세웁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시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악마도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용할 줄도 압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당연히 너를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니, 여기서 뛰어내려 보아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정말 네가 믿는다면 두려워 말고 뛰어내려 보아라. . . . 여기는 하나님의 집, 너의 아버지께서 계신 집이다. 성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냐. 그러니 맘 놓고 뛰어내려 보아라.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 주실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살던 이집트를 빠져나오기 전에 이집트에 떨어진 하나님의 재앙들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을 가로막았던 홍해가 눈 앞에서 갈라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라는 것이 내려와 그것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째 물을 먹질 못했습니다. 목이 너무 말랐습니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출애굽기 17:1-7)

“도대체,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 것인가?”




지금 나에게 마실 물을 주시면 하나님께서 계신 것이고,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계시지 않은 것일까요? 내 조건과 요구 사항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면 나의 하나님이고, 들어주시지 않으면 남의 하나님인가요? 조건을 통해, 그리고 상황에 따라 계시기도 하고 계시지 않기도 하다면, 그 분이 정말 하나님이 맞으실까요? 어제는 계셨고, 오늘은 부재중이신 하나님, 내 요구와 필요에 따라 존재하신 하나님, 너의 하나님 다르고 나의 하나님 다르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당연히 내일 역시 달라질 하나님이면 그 분이 하나님이 맞으실까요?   


그런데 지금 저들의 투덜거림이 사실 여러분과 제가 드리는 기도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나를 눈동자처럼 돌보시는 하나님, 나의 피난처, 나의 목자, 내가 머물 곳이신 하나님.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계시지 않는, 내 기도는 들으시지 않는, 나를 외면하시는 하나님. 나를 모르시는 듯, 나를 버리신 듯 나에겐 대답이 없으신 하나님. 그런데 내가 드리는 기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주시면 그땐 나에게 계시는 하나님이 되시고, 내 뜻과 기대에 맞지 않으면, 아예 내 생각과는 정 반대로 상황이 진행된다면 그땐 나에게는 계시지 않는 하나님이실까요? 


그렇게 되면 나의 기도는 사실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요구이고, 그래서 일종의 거래는 아닐까요? 어느새 나의 기도의 내용이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조건이 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나의 요구사항을 적은 리스트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냥 램프의 요정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 누가 하나님일까요? 나에게 하나님이신 것을 나에게 증명하라 요구하는 내가 하나님은 아닐까요? 내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누구에게도 증명하실 이유도 필요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능력을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여기에 오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위해, 그 아버지의 사랑을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그리고 그 아버지 하나님은 무엇을 증명하실 필요와 이유가 없으십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을 할까요? 


( 6-2 광야로 살지 않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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