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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Feb 08. 2023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7-1)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 . .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복음서 4:12-22)


photo by noneunshinboo 


1.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머나먼 북녘바다에 큰 물고기가 살았는데, 얼마나 큰지, 그 길이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큰 물고기가 큰 새가 되었는데, 얼마나 큰지, 그 너비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큰 붕새가 솟구쳐 날면, 하늘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붕새는 큰 바다 바람을 타고 남녘바다로 날아 간다. 남녘바다는 하늘호수다. 붕새가 남녘바다로 갈 때는, 3천 리 파도를 일으키면서 회오리바람처럼 솟구쳐, 9만 리 하늘을 올라 큰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여기 붕(鵬)새라고 불리는 새는,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혹은 한 번의 날갯짓으로 9만 리를 날아오른다는 매우 큰 상상 속의 새입니다. 북녘바다에 살던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변해서 되었다고 합니다. 


장자는 묻습니다. 

9만 리 하늘을 올라 큰 바람을 타고 날아간 붕새, 지금 드넓고 드높은 하늘을 내 집 마당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그 큰 붕새의 마음을 우물 안의 개구리나 한 철의 매미가 알 수 있을까? 


아마 모를 것입니다. 우물 속 그 안을 세상으로 아는 개구리나, 한 계절 동안 보는 것을 세상으로 아는 매미는 모를 것입니다. 아마 알려고도 않을 것입니다. 이끼가 껴 미끄러운 우물 벽을 개구리는 올라갈 엄두도 내지 않을 것이고, 이 나무 저 나무를 넘어 굳이 저 높은 산 꼭대기 서 있는 나무로 날아오를 생각을 매미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그리 불편하지 않고, 그럭저럭 내 양껏 맘껏 힘껏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여기도 좋다, 그냥 여기 머물러 있는 것도 좋다, 하며 개구리와 매미는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은 우물 밖에 있는, 이 나무 저 나무 숲 속을 돌아다니는 비둘기 정도를 부러워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듣도 보도 못한 새가 나타납니다. 날갯짓이 요란합니다. 큰 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를 따라오너라. 이제부터 너희는 창공을 맘껏 날아다니는 새가 되게 하겠다.”

개구리와 매미, 그리고 비둘기에게 머물러 안주하고 있던 여기를 함께 떠나자고 말합니다. 저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자 합니다. 두렵습니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꼭 그래야 할 어떤 이유가 있을까? 개구리와 매미, 그리고 비둘기에게 없던 고민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여기를 떠날 것인가? 머물러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길을 떠날 것인가? 여기 우물 안도 충분히 넓은데, 우물 안 그 모든 것들이 다 내 것인데, 그러니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로 계속 살 것인가? 여름 한 철도 충분한데, 눈 내리고 추운 겨울은 싫은데, 여기 몇 그루 나무들이면 되는데, 그러니 나는 한 철 매미로 계속 살 것인가? 저기 보이는 산 봉우리도 충분한데, 거기서 바라보는 세상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그러니 나는 내 날개가 닿고 내 눈이 닿는 여기 숲 속 비둘기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날갯짓 한 번으로도 9만 리 창공을 솟구쳐 날아오르고, 날개를 한껏 편 채 거침이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기 붕새로 나는 살 것인가?


2.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베드로와 안드레에게는 주님의 그 한 말씀에 곧장 손에 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쉬웠을까요?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도, 배도, 그리고 아버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쉬웠을까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 그리고 ‘하늘 나라’.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께서 당신의 때가 되었다고 느끼셨는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시고는 바로 그 하실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셨는데, 사람들에게 그 ‘회개’란 것이 쉬웠을까요? 그 ‘회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무엇이 ‘회개’일까요? 




마태복음서 4장, 예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그 장면을 누가복음서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 . .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누가복음서 5:4-11)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더니 걸려든 물고기 때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입니다. 도와달라고 다른 배에 타고 있던 동료들까지 불러야 했습니다.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빈 배로 갈 것이 걱정이었는데. 만선의 꿈을 넘어 베드로는 지금 이 상황이 놀라움을 넘어 오히려 무섭고 두렵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엎드립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면 곧 나는 죽을 것이니, 아니 이미 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는 베드로의 놀라움을 넘어선 두려움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는 이제 살 것이다. 지금 살아서 나를 본 너는 복된 사람이다. 살아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너의 주를 본 너는 참으로 복이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살 것이다. 나를 보았고, 나의 말을 들었고, 이제 나와 함께 새 길을 가자. 생명의 길을 나와 함께 떠나자. 새로운 삶을 나와 함께 살자.”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지금껏 탔던 그 배에서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지금까지 부여잡고 놓지 못하던 것들을 내려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엉망으로 살아왔던 삶, 잘못 살아왔던 삶, 나 혼자 썩 잘 해냈다 자부하는 삶, 남들도 다 부러워했던 삶, 그 모든 삶들을 내려놓는 것, 버려두고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너의 주님으로 알고 믿고 의지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여기 그 그물을 내려놓는 것, 너의 배를 뭍에 대는 것, 그 배에서 내리는 것, 그리고 하늘 나라의 배, 하나님의 배로 옮겨 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새 배를 타고 나와 함께 새 목적지로 항해하는 것, 그 길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와 동료 어부들은 배를 뭍에 댄 뒤, 그 배에서 내립니다. 손에 들고 쥔 것 역시 모두 내려놓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들의 삶입니다. 그들의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나 미련 없이, 두려움 없이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7-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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