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회사이 Feb 11. 2023

오늘도 무사히

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7-3)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복음서 4:18-22)



1.        

‘오늘도 무사히’

택시를 타면 자주 보았던 사진입니다. 아주 짧지만 그러나 정말 간절한 기도입니다. 매일 매 순간 택시 기사는 이 소녀를 보면서 그 소녀와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녀의 모습이 담긴 액자를 거기 놓아 둔 그 택시 기사의 아내나 남편, 자녀나 부모님 역시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오늘도 무사히’ 

그런데 이 기도, 그 간절한 마음이 그 택시 기사, 혹은 그 택시 기사의 가족만 간절한 기도이고 간절한 마음이어야 할까요? 


2.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날갯짓 한 번으로 되지 않습니다. 설사 날갯짓 한 번으로 9만 리 창공을 솟구쳐 날아오른다 해도,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는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날개가 있고 없고 그것이 이유가 아닙니다. 그 날개가 날갯짓을 계속 하느냐 그만 멈추느냐가 그 이유입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날개가 있었던 것을 기억만 할 뿐, 그 날개 짓을 하지 않아 퇴화되어가는 신앙이라면, 그때 그 하늘을 향해 잠깐 날개 짓 했던 그 날개를 추억만 할 뿐, 덩치만 커다랗게 자라난 타조로 있는 신앙이면, 날아야 할 새가 걷는 새로 살아가는 신앙이라면, 이미 추락한 신앙일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제 너는 사람을 잡는 어부가 될 것이다.” 


주님의 그 말씀을 들었고, 그들은 배를 버려두고 그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배를 옮겨 타는 것으로, 주님과 함께 길을 떠난다고 다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이신 주님을 따라 걸으며 계속해서 주님을 읽고 주님을 듣고 주님을 배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좋을 때도, 즐거울 때도 있을 것이고, 물론 고생스러울 때도, 고통스러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배를 버리고 주님의 배를 탔지만 거칠고 세찬 비바람을 맞을 것이고, 파도 역시 높을 것입니다. 배가 물 위를 스치듯 그렇게 내달리지 못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불안에 떨며 이리저리 예수님을 찾지만 어디서 주무시는 듯, 여기에는 계시지 않은 듯 여겨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죽게 생겼습니다’, 원망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따라 과감하게 배 바깥, 시커먼 물 위에 발을 내딛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한 두 걸음 후에 바로 천 길 물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할까, 그때 거기 그 바닷가에서 그 분을 만나지니 말 것을. 모른 채 할 것을. 나중에 가겠습니다, 할 것을. 아니 그냥 싫다고 할 것을, 왜 이 고생을 나는 사서할까’,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또 예배합니다. 


3.        

‘오늘도 무사히’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많아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은 시간이 없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다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겐 없고, 이런 저런 생각 다 해 볼 시간이 나에겐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설사 나에게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내가 하는 그 모든 것이, 그 모든 생각이, 그 모든 판단과 결정이 맞는지,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고, 그 끝을 알 수도 가늠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약하고 부족한 그런 나를 내가 의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지 않으면 그 시간이 있고 없음이 나에겐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어 기도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그리스도인은 할 일이 많지 않아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너무 많은 할 일들이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인지, 정말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일인지, 무엇을 놓고 무엇을 잡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 수많은 할 일들에 내가 치여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치여 사는 삶이 아니라, 무엇에 매달린 삶이 아니라, 정말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읽고 또 듣고 또 공부합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의 말씀을 알고, 나를 알고, 그리고 주님을 살고, 주님의 말씀을 살고, 그리고 참 나를 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무사히’


그리스도인은 갈 곳이 없어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길이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위해, 그리고 함께 주님의 길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 그 길 위의 삶을 나누기위해 교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다’ 하신 내 아버지, 그리고 나의 형제와 자매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신앙의 꾸준한 날갯짓은 바로 내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이고, 내가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말씀이고, 내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살고, 말씀을 살고, 예배를 살 때, 그리스도인에게 ‘추락’이란 단어는 사전에만 있을 뿐, 추락은 그리스도인에게 잠깐의 하강일 뿐, 높고 넓고 맑은 하늘을 주님과 영원히 날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무사히’ 지켜주시는 주님께 분주한 일상을 내려놓고, 번잡하고 시끄러운 생각과 마음을 버려두고, 교회로 그리고 공동체로 모여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리고 주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마 4:4)


허기진 배를 빵으로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께 드리는 기도로, 그리고 주님을 향한 찬양과 예배로 채우며, 동료 어부들과 함께 하늘 나라의 배를 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꾸준히 항해하는 2023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따라나설 것인가, 말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