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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Mar 11. 2023

하나님과 함께 고통을 걷다

하나님과 함께 어둠 속을 걷는 법 2-3

사순절에 함께 읽는 욥기 


1.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우스가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어디로 우리를 찾아오셨는지,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서 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런 우리를 누가 지켜 주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참되신 분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우상을 멀리하십시오.” (요한 1서 5:18-21)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그리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하박국 1:2-4)


photo by noneunshinboo 


욥은 입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 속에 있었습니다. 이제 침묵 속에 점점 나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솔직해지는 욥입니다. 내가 겪는 고통에 솔직하고 내가 느끼는 슬픔에 솔직해지는 욥입니다. 침묵 속에 가만히 고개를 떨군 욥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 고개를 든 욥입니다. 그리고 욥은 선지자처럼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살려 달라 외칩니다. 이유를 묻고 묻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하박국 2:1)


그 하박국 선지자처럼 내가 끝까지 주님의 대답을 기다려 보겠다, 욥은 작심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도 쏟아내고 하나님께 화도 퍼붓고, 내 깊은 곳에 켜켜이 쌓여가던 울분과 한을 하나님께 죄다 털어놓겠다, 여기 하나님의 바다, 그 바닷가에 꼼짝 않고, 여기를 떠나지 않고, 여기에 앉아 있겠다 하는 욥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침묵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침묵을 깨는 것도 필요합니다. 남들에게 경건하게 보이는 말, 신실하게 보이는 말, 거룩하게 보이는 그런 말이 아니라, 내 안에 정말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참았던 입을 열면 혹시 입으로 죄를 짓지나 않을까, 입을 꾹 다물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말을 하나 안 하나, 나를 다 보시고, 나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니, 차라리 내 입을 열어 죄다 쏟아낸다면, 그래서 비로소 텅 비워진 내 속, 그 안을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와 용서와 평화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만 되었다 하실 그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합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2.     

이생진 시인의 시 중에 <술에 취한 바다>라는 시입니다. 


<술에 취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만하고

바다는 제 말만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나의 고통과 슬픔을 술처럼 먹고 마시며 거기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는 욥, 거기 하나님의 바닷가에 주저앉아 쏟아내고 있는 욥입니다. 그리고 우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느새 그 욥과 우리가 겪고 내뱉는 고통과 슬픔에 취해 계십니다. 

바닷가를 따라 치는 파도는 계속 욥과 우리의 발을 툭툭 건드립니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는 계속 욥과 우리의 귀를 건드립니다. 고통에 힘겨워 헉헉거리는 욥과 우리 주위를 갈매기가 떠나지 못하고 맴을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도 소리와 함께 가만히 들려오는 한 소리가 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마가복음서 1:11)

요단 강가, 고통 속, 고난 속 사람들 무리에 섞여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고통의 바다, 그 물에서 올라오실 그때 하늘로부터 들려오던 그 소리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다.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 여기 나 있다, 여기 하나님, 너의 주, 너의 하나님은 어디 가지 않고 여기 네 곁에 있다, 내가 다 보고 있다, 내가 다 알고 있다.” 


욥의 고통, 그리고 우리 사람의 고통, 세상의 고통, 그 안으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욥과 우리의 고통에 취해 더 아파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바닷가를 떠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거기 계시니, 그 바닷가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 목소리를 들을 그때까지 그 바닷가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고, 흠이 없이 정직하게 살았던 과거의 욥에게만 들여왔던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엉망이 된 지금, 너무 고통스러운 지금, 침묵 속 주저앉은 현재의 욥에게 또한 들려올 하나님의 음성, 하늘로부터 들려올 그 음성을 내가 반드시 듣겠다, 그래서 거기를 떠나지 않겠다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놓칠 수 없는 희망입니다.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의 대한 답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희망입니다. 




3.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 .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 .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 . 나 주가 거룩한 성전에 있다. 온 땅은 내 앞에서 잠잠하여라.” (하박국 2:2-4, 20)  


오신다 하셨으니, 오실 것입니다. 더디다 하셨으니, 조금은 더디 오실 것입니다. 기다려라 하시니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라 하시니 믿음으로 기다리고 또 살아야 합니다. 또한 그 주님은 성전에 계신다 하시니,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셨다 하셨으니, 우리 안에 이미 그 주님은 와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 고통과 고난 속에 있던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욥의 기도이고 또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 (하박국 3:17-19ㄱ)


눈에 온통 보이는 것은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요, 잎들만 무성하고 포도나무요, 벌레로 가득한 올리브나무요, 밭에는 잡초만 무성할지라도. 양 우리에 양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마당에 있던 닭들도 자취를 감추고. 그래도 나는 주님 안에 있겠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거워하고, 슬프고 아픈 일이 있으면 솔직히 슬퍼하고 아파하고 하나님께 때론 원망 섞인 하소연도 하고 간청하고 기도하고, 그러다 좋은 일, 즐거운 일이 생기면 감사 속에 맘껏 이웃과 즐겁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겠다, 나는 꼼짝 않고 하나님 안에 있겠다, 작심하는 선지자 하박국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 그리고 이미 구원의 일을 하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 안에서 나는 기뻐하겠다는 선지자 하박국이고 욥입니다.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주님이 나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구원이 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걷지도 못하는 나의 발이 산등성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의 발과 같이 만드셔서, 여기저기 거칠 것 없이 치닫게 하실 주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Mark Rothko, Untitled (Black on Gray), 1969,70


4.      

다시 마크 로스코의 그림입니다. 


지금 침묵을 깬 욥은 아주 좁고 가파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한 쪽은 검고 어둡습니다. 다른 한 쪽은 아주 밝지는 않지만 회색 빛입니다. 그러나 그런대로 우리에겐 밝습니다. 그 사이, 경계선 위를 걷는 욥입니다. 


부활은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고통과 고난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주님께서 그 길을 가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욥의 고통, 욥의 침묵, 그리고 침묵을 깬 저주와 비탄과 애통, 그리고 수많은 ‘왜’라는 질문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답을 찾아 걷는 길이 부활의 길입니다. 그 길을 주님께서 욥,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나는 나의 삶의 무게를 어디에 둘 것인가? 저 검은 어둠은 계속해서 더욱 깊어지고 더욱 짙어질 것입니다. 저 회색의 밝음 또한 계속해서 점차 밝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리스도의 영광, 그 빛으로 찬란해질 것입니다. 그땐 모든 어둠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둠과 함께 사라질 존재가 아닙니다. 


사순절, 고통을 질문으로 안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걷는 길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길, 지혜로 향한 길, 그리고 부활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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