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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Mar 29. 2023

나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 어둠 속을 걷는 법 4-1

사순절에 함께 읽는 욥기


1.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그물로 덮어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지나갈 수 없게 내가 가는 길을 높은 담과 어둠으로 가로막으신 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이젠 나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나의 가족도 나에게서 멀리 떠났고, 모두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친척들도 친구들도 나를 버렸습니다. 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조차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싫어하고, 친형제들도 나를 역겨워합니다. 게다가 나는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앙상하고 잇몸으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욥기 19:6-20)


절망입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낮이나 밤이나, 내가 주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내 기도가 주님께 이르게 하시고, 내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아, 나는 고난에 휩싸이고, 내 목숨은 스올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나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다름이 없으며, 기력을 다 잃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 몸은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 버림을 받아서, 무덤에 누워 있는 살해된 자와 같습니다. 나는 주님의 기억에서 사라진 자와 같으며, 주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와도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구덩이의 밑바닥, 칠흑 같이 어두운 곳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 . 주님, 어찌하여 주님은 나를 버리시고, 주님의 얼굴을 감추십니까?” (시편 88:1-6, 14)


주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셨습니다. 내 기도에 응답이 없으십니다. 나에게 관심이 없으십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2.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십니다. 들에 핀 꽃도 입히십니다. 아무 걱정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저기 공중에서 바람이 부는 데로 이리저리 속절없이 날아가는 빈 비닐 봉투와 같은 신세가 되었을까요? 


“오늘도 이렇게 처절하게 탄식할 수밖에 없다니! 내가 받는 이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그분이 무거운 손으로 여전히 나를 억누르시는구나!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 그분의 보좌까지 내가 이를 수만 있다면,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련만, 내가 정당함을 입이 닳도록 변론하련만. 그러면 그분은 무슨 말로 내게 대답하실까? 내게 어떻게 대답하실까? 하나님이 힘으로 나를 억누르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씀을 드릴 때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실 것이다.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하나님께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다 들으시고 나서는, 단호하게 무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욥기 23:2-7)


이제 ‘내가 아는’ 하나님께 ‘내가 모르는’ 하나님을 고소하겠습니다. ‘내가 모르는’ 하나님을 ‘내가 아’는 하나님께 고소하겠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흠이 없이 정직하게, 그리고 악을 멀리하며 살았던 나인데, 그런 나에게 닥친 이 고통과 고난의 그 이유를 내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 슬퍼만 하고 아파만 할 수는 없습니다. 친구들까지 나를 죄인 취급을 하는 것을 더 이상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내가 알아야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대로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께 고소하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재판을 열어주십시오, 내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재판정에 세우겠다 작정한 욥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친히 보셨으니, 가만히 계시지 마십시오. 주님, 나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 분발하여 일어나셔서, 재판을 여시고 시비를 가려 주십시오. 주님, 나의 하나님, 주님의 공의로 나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그들이 나를 이겼다고 하면서 기뻐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마음 속으로 ‘하하,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하고 고소해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드디어 우리가 그를 삼켜 버렸지’ 하고 말하지도 못하게 해주십시오. 나의 불행을 기뻐하는 저 사람들은, 다 함께 수치를 당하고 창피를 당하고 말 것이다. 나를 보고서 우쭐대는 저 사람들은, 수치와 창피를 당할 것이다.” (시편 35:22-26)


욥이 아는 하나님은 공정한 재판장이십니다. 시시비비를 가려주실 것입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옳은 것을 그르다, 그른 것을 옳다 하실 그런 재판장이 아니십니다. 욥이 알고 또 믿는 하나님은 분명 공정하게 재판하실 것입니다.  


3.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 북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구나.” (욥 23:8-9)


도무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내 발은 오직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만 성실하게 걸으며, 길을 벗어나서 방황하지 않았건만!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늘 마음 속 깊이 간직하였건만!” (욥 23:10-12)


그러니, 그 하나님만 계시면 되는데, 내가 찾기만 하면 되는데, 분명 나를 아시니, 그리고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셨을 것이니, 금방 판결을 내리실 수 있으실 텐데. 


길을 잃은 욥입니다. 금방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나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며 흠 없이 정직하게 살았으니 곧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곧 찾을 수 있다, 곧 하나님은 나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곧 끝날 것이다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욥은 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은을 캐는 광산이 있고, 금을 정련하는 제련소도 있다. 철은 흙에서 캐어 내며, 구리는 광석을 녹여서 얻는다. 광부들은 땅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땅 속이 아무리 캄캄해도 그 캄캄한 구석 구석에서 광석을 캐어 낸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 사람의 발이 가 닿지 않는 곳에, 사람들은 갱도를 판다. 줄을 타고 매달려서 외롭게 일을 한다. 땅 위에서는 먹거리가 자라지만, 땅 속은 같은 땅인데도 용암으로 들끓고 있다. 바위에는 사파이어가 있고, 돌가루에는 금이 섞여 있다. . . 사람은 굳은 바위를 깨고, 산을 그 밑 뿌리까지 파들어 간다. 바위에 굴을 뚫어서, 각종 진귀한 보물을 찾아낸다.” (욥 28:3-10)


photo by noneunshinboo 


그런데 정작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을 모릅니다. 어디에 계신지 모릅니다. 어디를 파야 할지, 어디를 뚫어야 할지, 무엇을 찾아야 할지, 무엇을 깨고 부수고, 또 어디를 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기 땅 밑 그 아래, 깊은 곳 거기에 계신 줄 알았는데. 저기 높고 높은 곳, 거기에 계신 줄 알았는데. 금과 은,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처럼, 광물을 캐고 금과 은을 캐는 것처럼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찾고 또 찾고, 캐고 또 캐고, 오르고 또 오르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 될 줄 알았는데. . .  


아니었습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세상에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나의 쌓은 지식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이룬 부와 명성이면 권력이면 분명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쉽게 도달할 줄 알았는데, 찾을 줄 알았는데, 얻을 줄 알았는데,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리저리 찾고 또 찾고, 정신없이 헤대다 보니, ‘여기가 어디지 . . .’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이유 없는 고통과 고난이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려고 깊은 곳까지 내려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그런데, 거기 계시지 않습니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이 더 이상 아니십니다. 


길이 끊겼습니다. 


길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한번 뜻을 정하시면, 누가 그것을 돌이킬 수 있으랴? 한번 하려고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시는데,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많은 계획 가운데, 나를 두고 세우신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겠기에 나는 그분 앞에서 떨리는구나.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이 두렵구나. 하나님이 내 용기를 꺾으셨기 때문이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떨게 하셨기 때문이지, 내가 무서워 떤 것은 어둠 때문도 아니고, 흑암이 나를 덮은 탓도 아니다.” (욥 23:13-17)


욥은 지금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지금 내게 닥친 이 어둠, 그 고통과 고난도 무섭지만, 그러나 그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니 사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그게 더 두렵습니다. 그냥 어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 내가 모르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줄 알았는데 혹시 더 떨어질 곳이 있을까, 그게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눈을 뜨나 감으나 매 한가지인 어둠, 그 속에 무엇이 더 있을 수 있다, 내 앞에 내 옆에 내 뒤에 내 위에 무엇이 있어 나를 보고 있다, 언제든 나에게 달려들 수 있다, 나에게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모른다, 정작 나만 모른다, 그게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4.        

한 아이가 놀이공원에서 울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인 채로 넋이 나갔습니다. 신발은 어디에 있는지, 맨발입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을 찾았다가 엄마 아빠 손 뿌리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모릅니다. 아무리 소리치고 울어봐도 여기저기 찾아도 엄마 아빠는 보이질 않습니다.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 크게 울고 큰 소리를 내어 엄마 아빠를 부르면 될 텐데. 엄마 아빠가 그 소리, 그 울음을 듣고 찾아올 텐데. 어디 다른 데 가지 말고, 어디 다른 사람 따라 가지 말고, 그냥 거기 소리쳐 울면 되는데. 그럼 엄마 아빠가 그 목소리 알아듣고 올 텐데. 


“엄마 아빠, 왜 내 손을 놓치셨습니까? 왜 내 손을 놓으셨습니까? 왜 내가 길을 잃게 하셨습니까? 당신의 자식이 아닙니까? 내가 혹여 잠깐 손을 뺐다고 해도, 그건 내 손이 작아서, 내 손이 미끄러워 그런 것이지 . . . 그래도 엄마 아빠는 내 손을 놓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나를 찾고는 계십니까? . . . 나 여기 있는데 . . .” 


길을 잃어 울고불고하는 욥입니다. 실망과 좌절과 절망 속에 있는 욥입니다. 어둠 속을 걷다 주저앉은 욥입니다.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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