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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Mar 30. 2023

지혜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

하나님과 함께 어둠 속을 걷는 법 4-2

사순절에 함께 읽는 욥기


1.        

“지금 여기는 어딜까?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고통과 고난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왜 그러셨을까? 도대체 난 뭘까? 내 인생은 뭘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깨달음, 진리,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그 지혜란 뭘까? 어디서 올까? 누가 알고는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계실까? 어디에 계실까?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을까, 잊으셨을까?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photo by noneunshinboo 


묻고 묻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앞다퉈 내 주위에서 이런 저런 소리들을 합니다. 다 헛소리로 들립니다. 모르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 . . 다들 그냥 척할 뿐입니다.  


“깊은 바다도 ‘나는 지혜를 감추어 놓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넓은 바다도 ‘나는 지혜를 감추어 놓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지혜는 금을 주고 살 수 없고, 은으로도 그 값을 치를 수 없다. . .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에서 오며, 슬기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져 있고, 공중의 새에게도 감추어져 있다. 멸망의 구덩이와 죽음도 지혜를 두고 이르기를 ‘지혜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하고 말한다. (욥 28:14-22)


그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있는 곳을 누가 알까요? 왜 욥이 이런 고통과 고난 속에 있어야 하는지, 누구도 뾰족한 대답을 내놓질 못합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을 아신다. 그분만이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오직 그분만이 땅 끝까지 살피실 수 있으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다. 그분께서 저울로 바람의 강약을 달아 보시던 그 때에, 물의 분량을 달아 보시던 그 때에, 비가 내리는 규칙을 세우시던 그 때에, 천둥 번개가 치는 길을 정하시던 그 때에, 바로 그 때에 그분께서, 지혜를 보시고, 지혜를 칭찬하시고, 지혜를 튼튼하게 세우시고, 지혜를 시험해 보셨다.” (욥 28:23-27)


하나님만이 그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십니다. 그 지혜로 이르는 길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2.        

“은을 캐는 광산이 있고, 금을 정련하는 제련소도 있다. 철은 흙에서 캐어 내며, 구리는 광석을 녹여서 얻는다. 광부들은 땅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땅 속이 아무리 캄캄해도 그 캄캄한 구석 구석에서 광석을 캐어 낸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 사람의 발이 가 닿지 않는 곳에, 사람들은 갱도를 판다. 줄을 타고 매달려서 외롭게 일을 한다.” (욥 28:1-4) 


어느 누구도 얼씬거리지 않고, 심지어 들짐승, 산짐승도 찾지 않고, 공중의 나는 새들도 찾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거기. 그러나 금이 있고 은이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우리는 땅 속이든, 물 속이든, 달나라든 화성이든 헤집고 다닙니다. 없는 길도 내어 어떻게든 기어코 찾아냅니다. 그리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한 끝에, 우리는 거기를 깨고 부수고, 필요하면 쌓고 만들고 세우고, 그리고 파고 또 파고, 캐고 또 캐는 우리입니다. 가만 있는 나무도 바위도 흙도 없애고, 말 못하는 짐승은 물론이고 나와 같은 사람도 안중에 없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다, 내 것이다, 내가 제일 높다, 내가 제일 넓다, 내가 제일 많다, 내가 다 이루었다, 내가 다 했다, 내가 다 가졌다, . . . 신이 따로 없습니다. 생명 연장의 꿈은 이미 이루었고, 영원불멸의 생명도 꿈이 아닙니다.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신하는 우리입니다. 점점 신이 되어갑니다. 정말 신이 된 듯 행동하는, 신인 듯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점점 목이 뻣뻣해집니다. 옆을 위를 아래를 뒤를 보기 힘듭니다. 그러다 점점 외로워집니다. 내가 맨 앞에 있으니, 내가 맨 꼭대기에 있으니, 내가 제일 넓은 곳에 있으니, 나 밖에 없으니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내 앞에, 내 위에, 내 옆에 없어야 성공입니다. 내 뒤에 내 밑에 누가 많아야 성공입니다. 내 뒤를, 내 밑, 내 옆을 나는 볼 이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땅 그 깊고 깊은 거기, 서로에서 멀리 떨어져, 갱도를 파고 내려간 거기, 줄을 타고 매달려 외롭게 일하다 외로워지고 그래서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난데없이, 이유 없이 잘 파 내려가던 갱도가 무너집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묻습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매뉴얼대로 했는데. . .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 . .”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하나님도, 사람들도 대답을 않습니다. 

지혜롭게 산다 했는데, 살아가는 기술이 남다르다 했는데, 그게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살아가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지혜란 무엇일까? 그 지혜를 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3.        

우리는 압니다, 어떻게 돌가루에서 은과 금을 구별해 내는지, 어떻게 손쉽게 가려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바위를 뚫을 수 있고, 땅을 헤집을 수 있는지. 우리는 압니다, 어떻게 하면 저 바다 밑바닥까지 쉽게 내려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저 하늘에 뜬 별들로 날아갈 수 있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 감추어진, 그러나 나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거기, 그리고 거기에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돈이 되는 것들, 나를 높이 올려줄 것들을 내 손에 어떻게 넣을 수 있는지. 


그런데 정작 우리는 거기 먼 곳까지 왜 우리가 가야만 했는지, 왜 거기 아래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가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그것을 찾고 얻어서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그게 정말 잘 사는 길일까, 우리는 좀처럼 묻지 않습니다. 길을 잃을 그때가 되어도 우리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묻지 않습니다. 우리는 묻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정말 우리가 살 길, 가야할 길일까? 그게 어느 길일까? 이미 와버린 여기서 나갈 길은 있을까? 어느 길이 어느 길인지 어디에 내가 물어 그 길을 알 수 있을까? 그 길을 아는 지혜는 어디에서 얻으며, 어느 길이 정말 맞는지 그것을 분별하고, 그래서 어느 길인지 확실히 알고, 또 그 길을 가는 방법을 나는 어디서 그리고 누구로부터 알 수 있을까? 어디에 가야 그걸 알 수 있을까?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누가 그 길을 알까?” 


이따금씩 속에서 생겨나는 그 질문을 애써 잠재웁니다. 슬쩍 서로에게 묻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다 길을 잃습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4.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와 숨바꼭질을 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의 눈에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 아빠도 자기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숨바꼭질을 할 때, 자기 눈을 가립니다. 책상 밑에 소파 옆에 커튼 뒤에 숨어 자기 눈을 가립니다. 그럼 엄마도 아빠도 자기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어디에 숨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손이 아무리 커도 엄마 아빠의 눈마저 가릴 수는 없습니다. 숨는다 숨어도 압니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 더 깊이 들어갑니다. 제 눈을 가리고 계속 더 안으로 깊숙히 들어갑니다. 


“아가야, 그래도 너의 눈은 가리지 말아라. 너무 꽁꽁 숨지는 말아라. 너무 깊이 숨으려 하진 말아라. 그러다 막상 네가 거기서 나오고 싶어질 때, 나와야 할 그때에 거기서 나오기 힘들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알고 있는 그런 하나님에 대한 너의 생각, 이해, 관념, 너의 갇힌 믿음과 턱없이 강한 확신 그 뒤에 숨지 말아라. 네가 나를 보지 못한다고, 내가 너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의 기대와, 너의 뜻과, 너의 생각과 너무 다른 하나님이라고. 그래서 그건 내가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그래서 더 숨겠다고, 다른 하나님 찾겠다고 하지 말아라. 나는 그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식이 아니라고, 지레 짐작하지 말아라.” 


그리고 물으십니다.  


“그 길 잃은 아이만 엄마 아빠를 찾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너만 나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여기, 

한참 뒤에 철이 든 자식의 고백입니다.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시편 139:7-12)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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