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UP AFTER YOUR DOG

노는(遊)신부의 틈과 사이로 본 밴쿠버의 여백이 있는 풍경(2)

by 교회사이
개가 있는 풍경 2.JPG photo by noneunshinboo


“뒤처리를 부탁해” 무슨 살인청부 업체에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아니고, “뒷일을 부탁해” 무슨 절친에게 남기는 유언도 아니다.

밴쿠버엔 개가 참 많다. 개 천지다. 정말 개가 살판이 난 개의 판이다. 예전에 들었던 얘기가 기억난다. 2년 예정으로 밴쿠버에 공부하러 온 한 분이 해 주신 얘기다. 한 1년이 지난 즈음인가 그 분의 조카가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밴쿠버 여기 저기를 며칠 데리고 다니셨고 한다. 그러던 중 밴쿠버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근처 바닷가 스페니쉬 뱅크(Spanish Bank)에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조카에게 물었단다.

“밴쿠버의 인상이 어떠니?”

“개가 왜 이렇게 많아요? 여기 완전 개 판인데요.”

기껏 여기 저기 좋은 데 좋은 구경 다 시켜줬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밴쿠버가 완전 개판이란다. 한참을 웃었다고 하신다. 듣는 나도 웃고, 말하던 그분도 또 웃는다. 근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랬다. “개가 왜 이리 많아. 완전 개 판인데.” 사실 밴쿠버에는 개가 많다. 많다. 정말 많다. 그 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보도 듣도 못한 개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나 많은 개의 종류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혹 유전자 조작과 교배로 그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하고 또 그 수도 정말 많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개를 너무 좋아한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마는, 아무튼 무척 좋아한다.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적어도 개에게 만큼은 너나 할 것 없는 큰 관심을 보인다.


듣거나 한 것이 아닌, 순수한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밴쿠버에서는 적어도 신분 세탁, 돈 세탁은 아니더라도 첫 인상 세탁 정도는 충분히 개를 통해 가능하다 싶다. 물론 어떤 개를 몇 마리나 데리고 다니는지에 따라 역 효과가 나기도 하지만. 아무튼 개를 통한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 특히 영 숫기 없어 땅만 보며 걷는다면, '너한텐 말 걸기 쉽지 않아' 라는 말 한번쯤 들어봤다면, 겨우 몇 마디 후에 마땅한 소재 고갈로 분위기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면, 여기 좀 특별나다 싶게 크거나 작거나 예쁘거나 잘 생겼거나 아님 아예 특이하게(?) 생긴 개 한 마리 빌려서 라도 구해 거리로, 바닷가로, 나가보길 권한다. 덕분에 높아진 관심으로 적어도 지나치는 이들과 어느 정도의 대화를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고 유쾌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는 시작되고 이후의 진행은 어찌됐든 개인기일 터이고. 혹시 어학연수온 분들은 꼭 한번 시도해 봄 직 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와 관련한 영어 단어들이 주를 이룰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하지만, 영어 울렁증 정도는 극복되지 않을까? 운동도 겸사겸사. 이것도 물론 내 생각이다. 아무튼 개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듯 싶다.


pick up after your dog 1.JPG photo by noneunshinboo


PICK UP AFTER YOUR DOG


그 애정만큼이나 이런 싸인이 그래서 곳곳에 있다. 때와 장소를 개들 나름으로는 가린다 하겠지만 사람만 할까? 으슥한 곳이면 그나마 낫겠으나, 개들도 깔끔하고 말끔하게 깍고 정리한 잔디밭이나 꽃밭이 저들도 좋은지, 애용하는 걸 자주 본다. 그래서 여기 이런 싸인들이 데코레이션처럼 흔하다. 결국, 개의 뒤처리를 확실하고 깨끗하게 하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다.


밴쿠버의 개는 제 일만 보고, 사람은 뒤에 남아 그 일 뒤처리를 한다. 기브 앤 테이크. 그러나 이런 주고받는 애정의 관계가 늘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자주 목격한다. 시도 때도 장소도 없이 일을 보는 저들의 그 뒷일 처리를 그 주인들이 경솔히 혹은 소홀히 하거나, 남일 보듯 하거나 아예 고개 돌려 외면하는 경우들을 본다. 거기 범죄의 흔적, 사건의 증거가 아직 식지않은 그 범죄 현장, 사건 현장을 채 벗어나지 않은 그 범죄(?)견이 버젓이 그 주변에 있음에도, “내가 안 했는데요.” 설마 주인이 했겠는가? “난 모르는 일인데요.” 글쎄 그럴까? “이 개는 제 개가 아닌데요, … 제 개가 맞긴 하지만 저 X은 제 개의 X이 아닌데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려 하는 공범 혹은 증인 혹은 목격자는 ‘네 목줄을 쥔 건 나다’ 하며 그 늦추었던 고삐를 다잡고 가던 길 그냥 내쳐 가려 한다. 대개는 성공한다. 그러나 또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한 듯하다.

어디서 날아오는 따갑고 모진 시선을 느끼는 순간, 멈칫하는 범죄견과 공범. 그냥 갈까 말까, 할까 말까 짧고 굵게 고민한다.


“이 개가 니 개니?”

“아닌데요, 내 개 아닌데요,” 라고 할까?

“저기에 일 본 개는 누구 개니?”

“모르는데요, 내 개 아닌데요. 내 개는 일 안보는 개인데요,” 라고 할까?

“그럼, 이건 뭐니?”

“모르겠는데요, 내 개는 금이나 은으로 일 보는 개인데요,” 라고 할까?

“그럼 네 옆에 있는 개는 뭐니?”

“개 아닌데요,” 라고 딱 잘라 말할까?

하지만 누가 봐도 개 맞고, 누가 봐도 저건 개 X 맞고, 누가 봐도 내 개 맞고, 누가 봐도 내 개가 질러 놓은 X 맞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일 끝났으니 빨리 뒤처리 끝내고 가자고 날 저리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 사랑스런 개는 어쩔 건가?


할 수 없이 젠틀하고 교양 가득하게 작고 예쁜 비닐 봉투 – 개 목줄과 함께 주인들이 챙겨야 하는 필수품 중 하나로 현장에서 바로 뒤처리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조그만 비닐 봉투 – 를 꺼낸다. 물론, 그 양심과 교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꺼내야 한다. 때때로 그걸 챙겨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리곤 들키지 않도록 주위 의식하며 폼 나게 잘 주워 담는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이걸 들고 이 길을 갈 생각을 하면, 이건 영 폼이 안 난다. 휴지통도 없어 보인다. 주위를 살핀다. 그 시선들이 하나 둘 거두어진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론 끝내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을 어찌할까? 그러나 없다. 범죄 현장은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이젠 증거물만 처리하면 된다. 고개 돌리지 않고 재빨리 눈으로 은닉의 장소를 찾는다. 이게 진정한 뒤처리다. 아예 보이지 않는 곳은 안 된다. 그렇다고 훤히 보이는 곳도 안 된다. 청소하는 이에게는 보이고 지나가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을 만한 곳이 최적의 장소다. 비록 내가 치우진 않아도 남이 치우는 것을 방해하거나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교양인처럼 행동하자. 적당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곤, 산타 할아버지 선물 두고 가듯, 소리없이 은밀히 아이들 깰까 조심스럽게 내려 놓고, 총총총.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그 작고 조그마한, 누런 비닐로 된 선물 꾸러미를 볼 수 있다. 딱 보면 누구나 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보다 더 한 광경도 있다. 아예 노란줄도 없이 방치된 범죄 현장과 그 증거물들.




우리, 나의 뒤처리, 내 인생의 뒤처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뒤처리는 깔끔하고 확실하게 하자. ‘뒤처리를 부탁해’, ‘뒷일을 부탁해’ 하지 말고 뒤처리, 뒷일은 내가 잘 하자. 우린 질러 대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견공님들이 아닌, 그 님들의 친구이며 주인이며 동반자이며 하우스키퍼다. 무엇을 누구가를 사랑한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해야 한다. 값을 치러야 한다. 그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따르는 책임이고 의무이고 또한 즐거움과 함께 나누고 다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반려. 반려자. 반려견. 그 뒤처리, 뒷일이 싫다고 반려(反戾·叛戾), ‘배반하여 돌아서거나 도리에 어긋나’지 말자. 견공 따라 나 몰라라 하기 보다는 그 반려의 타이틀을 차라리 반려(返戾), 즉 ‘되돌려주고 반환’하자. 반려(伴侶), 즉 ‘짝이 되는 길동무’가 되는 것은, 좋으나 싫으나 냄새가 나나 안나나 그 뒤처리, 그 뒷일 기꺼이 즐겁게 기쁘게 떠맡고 안고 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는 이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로만 좋게 보고 ‘좋게 좋게’에서만 머물지 말고, 좋은 게 계속 좋을 수 있도록,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좋게 좋게 하고 좋게 좋게 사는 게 좋고 또 좋지 않을까? 개의 판인 밴쿠버를 걷다가 흔히 만나는, ‘PLEASE, PICK UP AFTER YOU. THANK YOU’의 간곡함이 나에게 들게하는 생각이다. 근데, 이게 흔히 말하는 그 ‘개똥 철학’ 아닐까?


해리 포터의 친구 도비(Dobby)가 말한다. 난 너와 네 친구가 어질러 놓은 것들 청소하는 집 요정(House Elf)이 아니다. “뒤처리는 깔끔하고 확실하게, 니가 해라!”

도비가 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걱정 말아요 그대 SHOULD I BE WORR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