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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Sep 28. 2021

PICK UP AFTER YOUR DOG

노는(遊)신부의 틈과 사이로 본 밴쿠버의 여백이 있는 풍경(2)

photo by noneunshinboo


“뒤처리를 부탁해” 무슨 살인청부 업체에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아니고, “뒷일을 부탁해” 무슨 절친에게 남기는 유언도 아니다. 

밴쿠버엔 개가 참 많다. 개 천지다. 정말 개가 살판이 난 개의 판이다. 예전에 들었던 얘기가 기억난다. 2년 예정으로 밴쿠버에 공부하러 온 한 분이 해 주신 얘기다. 한 1년이 지난 즈음인가 그 분의 조카가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밴쿠버 여기 저기를 며칠 데리고 다니셨고 한다. 그러던 중 밴쿠버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근처 바닷가 스페니쉬 뱅크(Spanish Bank)에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조카에게 물었단다. 

“밴쿠버의 인상이 어떠니?”

“개가 왜 이렇게 많아요? 여기 완전 개 판인데요.”

기껏 여기 저기 좋은 데 좋은 구경 다 시켜줬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밴쿠버가 완전 개판이란다. 한참을 웃었다고 하신다. 듣는 나도 웃고, 말하던 그분도 또 웃는다. 근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랬다. “개가 왜 이리 많아. 완전 개 판인데.” 사실 밴쿠버에는 개가 많다. 많다. 정말 많다. 그 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보도 듣도 못한 개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나 많은 개의 종류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혹 유전자 조작과 교배로 그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하고 또 그 수도 정말 많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개를 너무 좋아한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마는, 아무튼 무척 좋아한다.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적어도 개에게 만큼은 너나 할 것 없는 큰 관심을 보인다. 


듣거나 한 것이 아닌, 순수한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밴쿠버에서는 적어도 신분 세탁, 돈 세탁은 아니더라도 첫 인상 세탁 정도는 충분히 개를 통해 가능하다 싶다. 물론 어떤 개를 몇 마리나 데리고 다니는지에 따라 역 효과가 나기도 하지만. 아무튼 개를 통한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 특히 영 숫기 없어 땅만 보며 걷는다면, '너한텐 말 걸기 쉽지 않아' 라는 말 한번쯤 들어봤다면, 겨우 몇 마디 후에 마땅한 소재 고갈로 분위기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면, 여기 좀 특별나다 싶게 크거나 작거나 예쁘거나 잘 생겼거나 아님 아예 특이하게(?) 생긴 개 한 마리 빌려서 라도 구해 거리로, 바닷가로, 나가보길 권한다. 덕분에 높아진 관심으로 적어도 지나치는 이들과 어느 정도의 대화를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고 유쾌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는 시작되고 이후의 진행은 어찌됐든 개인기일 터이고. 혹시 어학연수온 분들은 꼭 한번 시도해 봄 직 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와 관련한 영어 단어들이 주를 이룰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하지만, 영어 울렁증 정도는 극복되지 않을까? 운동도 겸사겸사. 이것도 물론 내 생각이다. 아무튼 개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듯 싶다. 


photo by noneunshinboo


PICK UP AFTER YOUR DOG


그 애정만큼이나 이런 싸인이 그래서 곳곳에 있다. 때와 장소를 개들 나름으로는 가린다 하겠지만 사람만 할까? 으슥한 곳이면 그나마 낫겠으나, 개들도 깔끔하고 말끔하게 깍고 정리한 잔디밭이나 꽃밭이 저들도 좋은지, 애용하는 걸 자주 본다. 그래서 여기 이런 싸인들이 데코레이션처럼 흔하다. 결국, 개의 뒤처리를 확실하고 깨끗하게 하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다.  


밴쿠버의 개는 제 일만 보고, 사람은 뒤에 남아 그 일 뒤처리를 한다. 기브 앤 테이크. 그러나 이런 주고받는 애정의 관계가 늘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자주 목격한다. 시도 때도 장소도 없이 일을 보는 저들의 그 뒷일 처리를 그 주인들이 경솔히 혹은 소홀히 하거나, 남일 보듯 하거나 아예 고개 돌려 외면하는 경우들을 본다. 거기 범죄의 흔적, 사건의 증거가 아직 식지않은 그 범죄 현장, 사건 현장을 채 벗어나지 않은 그 범죄(?)견이 버젓이 그 주변에 있음에도,  “내가 안 했는데요.” 설마 주인이 했겠는가? “난 모르는 일인데요.” 글쎄 그럴까? “이 개는 제 개가 아닌데요, … 제 개가 맞긴 하지만 저 X은 제 개의 X이 아닌데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려 하는 공범 혹은 증인 혹은 목격자는 ‘네 목줄을 쥔 건 나다’ 하며 그 늦추었던 고삐를 다잡고 가던 길 그냥 내쳐 가려 한다. 대개는 성공한다. 그러나 또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한 듯하다. 

어디서 날아오는 따갑고 모진 시선을 느끼는 순간, 멈칫하는 범죄견과 공범. 그냥 갈까 말까, 할까 말까 짧고 굵게 고민한다. 


“이 개가 니 개니?” 

“아닌데요, 내 개 아닌데요,” 라고 할까?

“저기에 일 본 개는 누구 개니?” 

“모르는데요, 내 개 아닌데요. 내 개는 일 안보는 개인데요,” 라고 할까? 

“그럼, 이건 뭐니?”

“모르겠는데요, 내 개는 금이나 은으로 일 보는 개인데요,” 라고 할까? 

“그럼 네 옆에 있는 개는 뭐니?” 

“개 아닌데요,” 라고 딱 잘라 말할까?

하지만 누가 봐도 개 맞고, 누가 봐도 저건 개 X 맞고, 누가 봐도 내 개 맞고, 누가 봐도 내 개가 질러 놓은 X 맞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일 끝났으니 빨리 뒤처리 끝내고 가자고 날 저리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 사랑스런 개는 어쩔 건가? 


할 수 없이 젠틀하고 교양 가득하게 작고 예쁜 비닐 봉투 – 개 목줄과 함께 주인들이 챙겨야 하는 필수품 중 하나로 현장에서 바로 뒤처리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조그만 비닐 봉투 – 를 꺼낸다. 물론, 그 양심과 교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꺼내야 한다. 때때로 그걸 챙겨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리곤 들키지 않도록 주위 의식하며 폼 나게 잘 주워 담는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이걸 들고 이 길을 갈 생각을 하면, 이건 영 폼이 안 난다. 휴지통도 없어 보인다. 주위를 살핀다. 그 시선들이 하나 둘 거두어진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론 끝내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을 어찌할까? 그러나 없다. 범죄 현장은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이젠 증거물만 처리하면 된다. 고개 돌리지 않고 재빨리 눈으로 은닉의 장소를 찾는다. 이게 진정한 뒤처리다. 아예 보이지 않는 곳은 안 된다. 그렇다고 훤히 보이는 곳도 안 된다. 청소하는 이에게는 보이고 지나가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을 만한 곳이 최적의 장소다. 비록 내가 치우진 않아도 남이 치우는 것을 방해하거나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교양인처럼 행동하자. 적당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곤, 산타 할아버지 선물 두고 가듯, 소리없이 은밀히 아이들 깰까 조심스럽게 내려 놓고, 총총총.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그 작고 조그마한, 누런 비닐로 된 선물 꾸러미를 볼 수 있다. 딱 보면 누구나 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보다 더 한 광경도 있다. 아예 노란줄도 없이 방치된 범죄 현장과 그 증거물들. 




우리, 나의 뒤처리, 내 인생의 뒤처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뒤처리는 깔끔하고 확실하게 하자. ‘뒤처리를 부탁해’, ‘뒷일을 부탁해’ 하지 말고 뒤처리, 뒷일은 내가 잘 하자. 우린 질러 대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견공님들이 아닌, 그 님들의 친구이며 주인이며 동반자이며 하우스키퍼다. 무엇을 누구가를 사랑한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해야 한다. 값을 치러야 한다. 그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따르는 책임이고 의무이고 또한 즐거움과 함께 나누고 다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반려. 반려자. 반려견. 그 뒤처리, 뒷일이 싫다고 반려(反戾·叛戾), ‘배반하여 돌아서거나 도리에 어긋나’지 말자. 견공 따라 나 몰라라 하기 보다는 그 반려의 타이틀을 차라리 반려(返戾), 즉 ‘되돌려주고 반환’하자. 반려(伴侶), 즉 ‘짝이 되는 길동무’가 되는 것은, 좋으나 싫으나 냄새가 나나 안나나 그 뒤처리, 그 뒷일 기꺼이 즐겁게 기쁘게 떠맡고 안고 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는 이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로만 좋게 보고 ‘좋게 좋게’에서만 머물지 말고, 좋은 게 계속 좋을 수 있도록,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좋게 좋게 하고 좋게 좋게 사는 게 좋고 또 좋지 않을까? 개의 판인 밴쿠버를 걷다가 흔히 만나는, ‘PLEASE, PICK UP AFTER YOU. THANK YOU’의 간곡함이 나에게 들게하는 생각이다. 근데, 이게 흔히 말하는 그 ‘개똥 철학’ 아닐까?   


해리 포터의 친구 도비(Dobby)가 말한다. 난 너와 네 친구가 어질러 놓은 것들 청소하는 집 요정(House Elf)이 아니다. “뒤처리는 깔끔하고 확실하게, 니가 해라!” 

도비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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