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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May 26. 2023

유목하는 인간

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14-1)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1.        

‘호모 노마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떠도는 ‘유목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전통적 의미의 유목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본래 태어나고 자란 곳에 정착하거나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계속해서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는 삶, 떠도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개념을 더 확장시키면, 인터넷을 통해 실제로 나의 몸을 통한 물리적인 이동은 없지만,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현실 속에서 공간과 시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역시 포함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우리는 ‘유목하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호모 노마드’의 삶, 유목민의 삶은 떠나는 삶입니다. 고향을 떠나고, 자란 곳을 떠나고, 부모를 떠나고, 친구를 떠나고, 가족을 떠나고, 하던 일과 직장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 . 그래서 길을 떠난 삶, 그리고 계속해서 길을 떠나는 삶입니다. 유목민은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자유의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든 곳, 정든 사람을 떠난 외로운 삶이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떠난 불안한 삶입니다. 


유목민의 삶은 자유롭지만 또한 불안정한 삶입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입니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입니다.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고, 또 못하니 뿌리를 내릴 시간도 없고, 뿌리를 내릴 공간도 없습니다. 언제 다른 곳으로 옮겨져 심겨질지 모르는 얕게 심겨진 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땅 위로 뿌리를 드러낸 채로 ‘그래 어쩔 수 없지’ 하며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까요?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이니 어쩔 수 없다’ 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하지만 하던 대로, 살던 대로, 되는 대로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고민을 하는 듯 하다 이내 멈춥니다. 두렵습니다. 떠나는 삶, 그 나의 선택이 틀렸을까, 틀릴까 두렵고, 떠나는 삶을 선택한 것이 나의 실수로 결론이 날까 두렵고, 누구인가로부터 원망을 들을까 두렵고, 그때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까 두렵고, 떠나지 않아 그러다 낙오자가 될까 또 두렵고.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할 시간 없다, 그런 질문을 한가하게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하며, 더욱 더 나를 바쁘게 몰아갑니다. 남들보다 바쁘고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야 나의 선택과 나의 길이 맞다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남들과 함께 가니 그런 확신이 사실 들기도 합니다. 고민을 멈추니 확신이 생깁니다. 잠깐 긴장을 늦추면 다시 고민이 들어올까 더욱 바빠집니다. 

그런데, 이러다 정말 우리는 사막 가운데서 물과 풀을 찾아 이리저리 정처없이 헤매는 정말 유목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다 우리의 아이들이 정말 뿌리 없이 떠도는 유목민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2.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창세기 12:1-4)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첫 번째 ‘호모 노마드’의 상징이자 모델입니다. 단지 살고 있던 땅, 태어난 곳,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는 그런 전통적 의미에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을 떠난 ‘신앙의 호모 노마드’,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델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궁금합니다.   

어떻게 나이가 일흔 다섯의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아브라함은, 안정적인 삶과 불안정적인 삶, 확실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불안정한 삶과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3.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 .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다가와 절하며 말합니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그리고 예수의 말씀대로 그 나병이 나았습니다. (마 8:1-4)


이어서 한 로마 지휘관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아닙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니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습니다. (마 8:5-13)


아브라함이 길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고, 여기 아픈 것이 나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었던 그 사람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아브라함이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했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고, 그 믿음이 그 병자이고 죄인이고 이방인이던 그 사람들이 병에서 나을 수 있었고, 죄를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길, 신앙인으로서 유목민의 삶을 선택하고 그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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