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로 여는 아침 - 요한복음서 3:1-3
주여, 내 영혼이 깨어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주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니,
영광이 성부, 성자,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소서. 아멘.
오늘 시편 / 시편 98:1-4
1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2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알려 주시고, 주님께서 의로우심을 뭇 나라가 보는 앞에서 드러내어 보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해 주셨기에,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다. 4 온 땅아, 소리 높여 즐거이 주님을 찬양하여라. 함성을 터뜨리며,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여라.
오늘 말씀 / 요한복음서 3:1-3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묵상 노트
바리새파 사람으로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밝은 낮이 아닌 어두운 밤을 택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사람들이 알면 곤란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성전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며 그들의 권력과 권위에 도전했던 예수를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 중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유대의 지도자들 중 한 명인 니고데모는 더욱 겁이 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막 11:18).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도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주님을 찾았을까요?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 징표를 보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고,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요 2:23-25). 기적을 보고 믿는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주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복음서 첫 장에서 요한은 말합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 1:9-12).
요한은 빛과 어둠을 자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와서 비추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내가 지금 어둠 속에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어둠을 집으로 삼아 살던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점점 빛이 낯설고, 빛이 불편하고, 빛이 두렵습니다. 빛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외면합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아예 등을 돌립니다.
어둠에 눈이 먼, 영적 눈멂(spiritual blindness)입니다.
그 어둠 속으로 주님이 오셨는데, 사람들은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조금도 어둡지 않다고, 충분히 밝다고, 오히려 지금이 좋다며 어둠을 고집합니다. 어둠이 어둠인지 모릅니다.
영적 어둠(spiritual darkness)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아무리 버티고 버텨도 결코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요 1:5).
어둠 속에 있던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어둔 밤, 두려움을 넘어 빛으로 나아옵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 1:12)
기도
빛이신 주님, 빛으로 오신 주님. 나에게 있는 어둠, 내 안에 있는 어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볼 수 있는 용기, 맞설 수 있는 용기, 빛이신 주님께 나아가는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