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구할까?

말씀과 기도로 여는 아침 - 요한복음서 6:1-9

by 교회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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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내 영혼이 깨어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주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니, 영광이 성부, 성자,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소서. 아멘.


오늘 시편 / 시편 115:1-4

1 주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리지 마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 영광은 다만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에 돌려주십시오. 2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하게 하겠습니까? 3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하고자 하시면 어떤 일이든 이루신다. 4 이방 나라의 우상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며,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 말씀 / 요한복음서 6:1-9

1 그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2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갔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가 병자들을 고치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 4 마침 유대 사람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7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8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9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묵상 노트

유대 사람들과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뒤로한 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갈릴리 바다의 동쪽에 있는 어느 산 위이고, 지금은 유월절이 가까운 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을 듣고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몸과 마음과 영이 지쳤고, 배 또한 고픈 사람들입니다. 당시 요한복음서를 읽고 듣는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곧바로 어떤 한 인물과 장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받기 위해 광야의 시내 산에 올랐던 유대인의 위대한 지도자이며 선지자인 모세, 그리고 여호와의 유월절과 출애굽, 그리고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주셨던 하나님의 그 한결 같은 사랑의 기적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민수기 11:4-6).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늘의 빵, ‘만나’로는 부족하다며 불평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마실 물을 땅에서 솟게 하셨고, 먹을 것도 하늘에서 내려 주셨는데. 마실 것과 먹을 것이 내 눈에 보이고, 내 손에 잡히고, 내 입에 들어오니, 이제 다른 것들이 생각납니다. 조금 괜찮다 싶으니,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대신 나에게 없는 것만 자꾸 생각납니다. 이 상황이 너무 힘겨운 모세가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신명기 11:11, 13).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저 나의 무능(無能) 과 무지(無知)와 무력(無力)만 확인할 뿐,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갑갑한 현실에 갇힌 너무 답답한 모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 6:5).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그때 그 광야의 모세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보기 위해,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물으십니다.


주님은 이미 당신이 하실 일,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 6:6).

그때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를 뿐,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를 뿐, 그러나 아들도 이미 알고 계셨고, 그 아버지께서도 벌써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주님께서 하실 일을 그때 그들처럼 모를까요, 알까요?

주님을 믿을까요, 믿지 않을까요?




기도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참 소망이시며 우리의 자랑이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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