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회사이 Sep 28. 2021

아! 풀이다, 아! 꽃이다

노는(遊)신부의 틈과 사이로 본 밴쿠버의 여백이 있는 풍경(4)


저기 틈새의 작은 풀-꽃. 집 앞 모퉁이에서 만났다. 거기 있었다. 풀인데 꽃이고, 꽃인데 풀이다. ‘그냥 풀’ '그냥 꽃'이란 말로는 조금 부족하고 조금 미안도 하고, 그래서 나는 ‘아! 풀이다, 아! 꽃이다’ 굳이 감탄한다.

   

길에서 밀려난, 좁디 좁은 틈 사이를 제 자리로 알고 잡았던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씨. 이젠 더 이상 작지 않고, 보인다. 씨 너머가 되어 너머를 산다. 그리고 그 너머로 나에게 왔다. 바쁘지도 그렇다고 바쁘지 않다고 하기에도 애매해 바쁜 척 지나치는 나와 저기 걷는 이들. 두며 살았던 관심들의 여백, 정성들여 붓고 쏟은 관심들의 틈, 온갖 기 쓰고 애쓴 관심들의 사이에 있는 풀-꽃. 눈 제대로 여겨 볼 이유 도통 없던 것이 눈 여겨 볼 필요 없던 곳에 자리한지 한참을 지난 여기. 관심 밖 소홀함으로 생겨난 여백과 틈과 사이를 겨우 제자리로 여겨 잡았던 그 어떤 작은 씨. 큰 것들에 이리저리 치이고 치여 눈치 없고 하릴없어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 나 역시 그 이들에 포함된다 – 의 채 쓰지 않은 여분의 관심을 겨우 끌어 여기 작은 것이 이제 비로소 눈에 보이고 이제 비로소 귀에 들린다. 


이제 더 이상 작은 씨 아닌, 풀-꽃으로 오가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하늘의 이치대로, 순리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사는 길을 알고자 하는가, 하고. 넌 지금 어디를 향해 걷는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너의 제 자리는 어디인가, 넌 무엇을 움켜쥐고 무엇을 놓아버리는가, 넌 무엇에 눈 팔고, 마음 팔고, 정신 팔고 있는가, 너에게 여백은 있는가, 너는 존재의 틈, 일상의 사이를 보는가, 넌 누구와 무엇과 어떤 연을 잇고 맺고 풀고 끊고, 어떤 사이로 있는가?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photo by noneunshinboo


움킨 것들, 움키려 애쓰는 것들, 아깝다 말고 다 놓친 듯 놓은 듯, 어깨와 목과 손에 묵직한 힘 빼라 한다. 아슬한 외줄 위 춤 추듯, 없는 바람도 넉넉히 돛 달고 물 위 미끄러지듯, 울창하고 어둔 길 없는 숲속 나는 듯, 울퉁불퉁 바위 사이 신작로 위 달리는 듯, 그렇게 살고 싶다면 힘 풀라 한다. 급할 것도 급한 것도, 온 곳도 갈 곳도, 처음도 마침도, 알 것도 모를 것도, 이것도 저것도, 여기도 저기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나도 너도, 없다는 듯, 아이 놀 듯. 노닐고, 거닐고. 여기 이 곳 내 것인 양, 내 것이 아닌 양, 머묾없이 여기 저기 넘노닐고, 자유한 삶, 자유한 영혼을 꿈인 듯 생시인듯 살고 싶다면 힘 놓아버리라 한다. 목 빼서 아프고 발꿈치 높이 들어 아프니 너머 너무 보지 말라 한다. 눈에 힘 풀라 한다. 그럼 보인다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고. 


여기다, 너 지금 앉은 자리가 너의 꽃자리다, 라고 말한다. 여기 어디가 내 자린가? 라고 묻지 말고. 나 더러 제 옆에 자리잡고 같이 꿈꾸는 장자가 되자는 건가, 아님 저기 공중 산책하듯 날고 있는 생시의 나비가 되라는 건가? 아님, 그 반대인가? 


좁은 틈새를 제 삶의 터, 제 자리로 사는 여기 꽃-풀은 넉넉하다. 여기 넉넉한 오늘을 산다. 여긴 아니다, 거기도 아니다, 저기다 내 자리는, 하며 빼고 재고 하며 갖은 애쓰지 말고 기 쓰지 말고 너무 힘 빼지 말고, 지금 여기 넉넉하다 여기고 또 넉넉하다 알고, 그래 넉넉하다 척 아닌 척하며 충실히 살고, 그러다 보면 그래 겨우 그제사 넉넉한 몸과 마음과 숨과 그리고 영혼 조금씩 되어 가고, 좁은 빈 틈 사이를 천방으로 뛸 빈 터로 알고 또 좁은 나 조금씩 넓어지는 빈 터 되고, 빈 틈과 사이가 노는 여백 되고, 점차 여기를 막힘이 없는 때와 곳으로 진정 사는 날 오지 않을까, 한다. 뒤를 살지 않고, 앞을 살지 않고, 여기 지금을 뒤와 앞 너머 오롯한 하나로 사는 날 오지 않을까, 한다. 장자와 나비가 하나로 손에 손잡고 돌며 걷고 날고, 바람을 탄 음악 되고 춤 되는 그 날을 여기 풀-꽃은 지금 영원으로 알고 산다. 풀이 꽃으로, 꽃이 풀로 푸르게 꽃으로 산다. 

사실, 이렇게 말 하기는 해도, 그런 생각 하기는 해도 그렇게 마음잡고 정하고 손발로 행하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다. 꿈에는 쉬워 보여도 생시에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난 너무 잘 안다. 안다는 게 탈이다. 그러나 여기 때때로 작은 것들이 깨우치니, 크게 티 나진 않으나 그 간극 조금씩 조금씩 좁혀간다. 아니 그렇게 여긴다. 어찌됐든 오늘 나만큼이나 작은 것들 보니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그간의 관심 밖 작은 것, 적은 것에 기꺼이 관심하고 관계한다면 여백과 틈과 사이가 주는 뜻 밖의 깨달음과 지혜를 얻는다. 밖에 있던 것들이 안으로 건네는 위로와 위안과 안심과 휴식은 곳곳에 있고, 그것이 선물임을 배운다. 졸업은 차마 엄두도 못 내는 나는 여전히 학생이다. 기꺼이 가르칠 선생은 도처에 무수하다. 다만, 배우려는 학생이 적을 뿐. 난 배우려는 학생인가, 배울 것 없다는 듯 섣부르게 가르치려는 선생인가? 그것부터 숙제고 고민이다. 


여기 틈새의 작은 풀-꽃이 크게 반갑고 고맙고 기쁜 오늘은 밴쿠버의 가을 초입이다. 남들 다 열매 딴다 부산스러운 가을이 내겐 겨우 싹 틔우는 봄이 되어도 난 더욱 좋다면 거짓일까? 여기 틈새 작은 풀-꽃 속에서 내 틈새의 주렁주렁의 열매로 가지 늘어진 나무를 본다면, 내 약한 시력 탓일까? 관심 밖의 것과의 뜬금없는 조우가 주는 헛 꿈이다. 


여전히 가을-철이 없는 나다. 





작가의 이전글 스카이트레인, 땅 속을 달려도 하늘을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