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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Sep 28. 2021

쿠거(cougar)의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의 거리

노는(遊)신부의 틈과 사이로 본 밴쿠버의 여백이 있는 풍경(5)

질문이다, 쿠거의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의 거리는?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가 아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한 거리, 그 거리 두기 얘기다. 그리고 그 거리는 2미터. 코로나 혹은 코비드 19는 커녕 무슨 코로나 맥주도, 발렌타인 19년산 양주와도 하등의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뜬금 없는 쿠거의 등장이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본 적 있을까 싶은 푸마 혹은 아메리칸 라이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실제로는 본적도 없는 쿠거의 크기가 궁금하냐고? 그럴리가. 


photo by noneunshinboo


하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2미터나 된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만큼의 거리를 두어야 안전하단다. 쿠거로 부터 안전하다는 얘긴가? 쿠거를 어디서 만난다고. 코요테라면 모를까 밴쿠버에서. 그런데 그게 아니다. 보이는 쿠거가 아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을 말한다. 그런데, 쿠거가 2미터나 된다구? 그렇게 크진 않아 보이던데. 그런데 굳이 쿠거의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의 거리라고 하는 걸 보니 그런가 보다, 한다. 굳이 우리가 직접 잴 필요는 없다는 듯, 그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 확실하게 해 두겠다는 듯, 그림까지 그려가며 2 미터. 때론 과하다 싶을 만큼 어떤 것들에 관해서 밴쿠버는 참 친절하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저 거리만 두면 우린 정말 안전한 걸까? 서로 간의 거리, 보이는 거리, 그 누구나 잴 수 있는 거리를 두기만 하면 되는 걸까? 정작 보다 필요한 다른 거리 두기는 없는 걸까?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리, 보이지 않는 거리는? 생각의 거리, 마음의 거리, 그리고 영혼의 거리 두기는? 내 것 혹은 내 것이라 여기는 것들, 그리고 내 것이어야 할 것들과의 거리 두기는?  나의 욕망과 이기와의 지금 거리는 괜찮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거리는? 존중받고 존중하는 거리는? 저기 수많은 타인과의 거리는? 다른 존재들과의 거리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과 것들과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거리 두기는? 이렇게 저렇게 가려가며 두는 그 수많은 거리들, 그 거리는 누가 정하고 그 기준은 누가 결정할까? 도대체 얼마나 두어야 내가 네가 우리가 모두 안전하게 될까? 여기 그림 속 쿠거의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 거리만큼이면 충분할까?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의 이기(利己)는 선을 넘다 못해 선이 없고, 또 선이 없다 못해 내가 내 마음대로 그 선 긋고 지우고 또 긋고 지우고, 애당초 지킬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줄곧 배고프고 배고파 여전히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의 욕망과 욕심, 그 거리 두기는 쿠거를 잡아 그 사이즈를 재기 이전 부터, 아니 그것을 쿠거라 이름 짓기 이전 부터, 애당초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내 것이 된 후에나 긋는 선과 내 맘대로 정하고 두는 거리는 내 안전, 내 것의 안전을 위한 것일 뿐. 그것 또한 언제든 나의 컨디션에 따라 탄력적이고 유동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켜야 할 선과 두어야 할 거리. 안전 선, 안전 거리.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무튼 나에겐 있고 저들에겐 없고, 나에겐 없고 저들에겐 있고, 때론 있다 때론 없다 때론 흐려졌다 때론 짙어졌다 하는, 매직으로 그리지 않은 매직 같은 선. 상황 봐 가며 사람 가려 가며 때론 두고 지키고, 때론 무시하고 때론 강요하고 때론 넓어지고 때론 좁아지는, 고무줄 보다 더 고무줄 같은 거리.  


사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이기와 욕망을 채우기 위한 나름의 안전한 – 도대체 누가 누구로부터,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안전한(?) – 거리를 두어 왔는지 모른다. 이럴 땐 이 거리, 저럴 땐 저 거리, 이런 사람들과 이런 것들 그리고 이런 삶엔 최대한 가깝게, 저런 사람들과 저런 것들 그리고 저런 삶엔 되도록 멀고 또 멀게. 

그런데, 그 맥주 이름도 양주 이름도 아닌 것이 묻는다, 앞으로도 주욱 그래도 될까? 지금 이 선, 이 거리, 그거면 충분할까? 그렇게 우리 이제껏 살아온 듯 또 그렇게 우리 살아도 될까? 살아질까? 




그런데 요즘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의 거리 두기가 괜한 유난을 떠는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낯설고 새삼스럽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고. 이해 못할 건 없다. 또 어떤 어떤 이들은 ‘자유를 허하라’ 하며 대놓고 거리를 무시하며 그 거리는 앞으로도 주욱 내가 정할 것이라며, 있던 거리도 좁히고 없던 거리도 넓히겠다고 난리다. 자유. 이 역시 아예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살아왔듯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예전의 방식과 방향이 우리의 최선이었을까? 그리고 저기 저들이 말하는 자유에 저들이 아닌 저들 밖의 다른 이들의 자유도 포함되는 것일까? 남들의 자유를 위해서도 저러는 걸까? 묻지 못했다. 물을 엄두가 사실 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어떤 어떤 이들은 저렇게 자기들의 안전을 지키는 거리를 손쉽게 확보한다. 나 같은 이들은 저 어떤 어떤 이들에게 쿠거의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의 거리 그 훨씬 이상으로 거리를 둘 뿐, 아예 다가갈 생각도 엄두도 나지 않는다. 저런 영리한 거리 두기가 또 있을까, 싶다. 거리 무시하고 다가오는 건 그들인데, 거리 두는 건 나다. 숨어 하는 독립운동은 철 지났다고, 대놓고 독립운동이라도 한다는 듯 당당하게 다이렉트로 나에게 걸어오는 또 다른 어떤 어떤 이들은 눈 짓과 어깨 짓으로 말한다. “거기 너! 나 그 쪽으로 간다. 거리를 두던가 멀찌감치 피하던가, 아님 내 편에 붙던가, 네 자유다. 난 내 길을 간다, 난 자유하다.” 그런데 가만 가만 저 어떤 어떤 이들 중 또 어떤 이들을 찬찬히 보니 지금까지 딱히 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한 적도 그렇다고 넓히려 한 적도 없던 이들이 많다. 지키고 말고 할 무슨 거리라는 것이 사실 저들에게 있었나 싶어 오히려 저들이 새삼스럽고 유난 떤다 싶다. 



쿠거 사이즈만큼의 거리를 지키려 애쓴지 1년 반이 훨씬 지난 지금, 이젠 제법 2 미터라는 거리가 익숙하고, 어림도 가능한데, 가끔은 모르고 싶고 또 귀찮다. 그러나 요즘처럼 친절할까? 군데 군데 바닥에 2 미터 간격으로 그어진 선은 지키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친절 봉사가 아닌, 친절 준수. 흐릿해진 짧은 선들 보며 작아진다. 선 앞에, 뒤에, 위에, 아님 아예 선과 선 가운데, 어디에 서야 잘 섰다는 소문이 날지 순간 멈칫한다. 선 조심하라고, 금 밟지 말라고, 넘지 말라고, 범죄 사건 현장은 아니지만 아무튼 줄만 서서는 안된다고, 줄 잘서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멈칫한 내게 결국 몇 초간의 인내심이면 충분하다는 듯 뒤에 선 사람 ‘흠흠’ 소리를 낸다. 이젠 앞으로 더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부스럭부스럭, 눈에 띌 듯 안 띌 듯,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움직임도 있다.  한 발 앞으로 내 딛는다. 목표점에 조금 더 가까이 가며 내가 여기 온 이유, 선을 넘는 이유를 다시 떠올린다. 

때론 재치 있다 여기는지 바닥에 발자국 표시를 해 놓은 곳도 있다. 우리 아들 컴퓨터 게임, 레고 시티의 셜록 홈즈 차림의 경찰이 생각난다. 다이하드의 맥케인 형사인 듯한 그 경찰은 돋보기를 손에 들고 범인의 족적처럼 보이는 것을 음악에 맞춰 따라가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습고 재밌었는데. 순간 나도 바닥에서 뭘 좀 찾아야 하나 싶다. 


다시 쿠거 그림을 본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리라. . .  

불현듯 드는 수상한 생각. 그런데, 저 쿠거로부터 안전한 거리는 얼마나 될까? 저 쿠거가 내 앞에 당장이라도 나타난다면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안전할까? 모르긴 몰라도 확실히 2 미터는 넘어야 될 것 같다. 근데, 저 쿠거는 다 자란 쿠거인가? 다 자란 쿠거의 사이즈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청년기의 쿠거의 사이즈인가? 궁금하다. 네이버 신 지식인도 아니고 쿠거의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의 사이즈를 알려 주다니. 하여간 2 미터라 하고, 실제로는 본 적도 없던 쿠거의 사이즈를 오늘 나 알았다.

그럼, 저 쿠거 말고 2 미터가 되는 다른 동물들은 또 무엇이 있을까? 꼬리는 빼고 2 미터가 되는 다른 동물은? 앉은 키 혹은 선 키가 2 미터인 것들은? 얼마전 스탠리파크에서 출몰해서 산책하던 사람들을 물었다는 코요테는 2 미터가 넘는 것이었을까? 몇 년 전 유비씨 캠퍼스 근처 숲길 앞에서 보았던 그 코요테는 꼬리까지 잰다면 얼추 2 미터는 되어 보이던데. 그땐 운전을 하고 있어서 안전한 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만약 차 밖이었다면 난 얼마나 거리를 유지했어야 했을까? 혹시 늑대는 사이즈가 어떻게 될까, 그것도 코 끝에서 꼬리 끝까지? 때 아닌 동물들 사이즈 궁금증으로 머릿속이 수선스럽다.  


아예 저 쿠거 한 마리 사서 데리고 다니면 거리 두기는 확실할 텐데. 팔기는 할지. 없는 게 없이 다 파는 아마존 닷컴에서는 팔까? 확실한 것은 다이소에는 없다. 다이소에 다 있지는 않다는 걸 난 안다. 허튼 생각이다. 

그런데, 우린 도대체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안전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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