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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Oct 06. 2021

시계방의 시계는 지금 몇 시?

노는(遊)신부의 수상수런수다(1)

photo by noneunshinboo


풍경 1

시계방의 시계

봄 밤 어느 것이

정말인가


류시화 시인이 우리말로 옮긴 구보타 만타로의 하이쿠다.  

땅엔 벚꽃이 한창인 봄 밤, 밤 벚꽃 구경을 나간 풍경. 하늘엔 불꽃 놀이가 요란하다. 봄 밤의 풍경을 눈 앞에 보고 있는 듯하다. 땅 위 꽃 구경과 하늘 위 꽃 구경에 정신이 온통 빠졌다가 흠칫 놀라, “지금 몇 시지?” 마침 시계방이 저기 보인다. 커다란 윈도우로 보이는 족히 일, 이백 개는 넘어 보이는 크고 작은 시계들은 제 각각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도무지 난 알 수가 없다, 지금 몇 시인지. 오직 시계방 주인만 안다, 어떤 시계가 맞는 시계인지. 주인만이 그 ‘언제’를 알 수 있다. 문 앞에 외출중이란 팻말이 보인다. 기다리기로 한다. 혹시 시계방 주인도 밤 벚꽃 놀이를 즐기러 간 걸까? 한참을 기다리지만 좀체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사실, 이런 봄 밤에 문을 연다는 것이 난센스. 오늘은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싶다. 

쇼윈도 앞에서 서성이며 안쪽 무수한 시계들을 본다. “지금 도대체 몇 시나 되었을까? 저중에 어떤 시계가 맞는거지?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기는 한데, 좀더 꽃구경해도 되는게 아닐까?” 시간을 알 수 없으니, 조금은 난감하다. 불편하다. “근데 주인은 왜 이리 안 오는 걸까?” 시간이 가면서, “지금 언제지?” 에서 “주인은 언제 오지?” 로 바뀌어 간다. 이젠 시계가 아니라 시계방 주인이 언제 올지, 아니면 아예 안 올지, 그게 더 궁금해진다. “오늘은 올까, 안 올까?” 베케트의 연극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런 걸까? 


풍경 2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와 세상이 끝날 때에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저희에게 알려주십시오.” (마태복음서 24:3, 공동번역)


‘언제’가 우린 늘 궁금하다. 그런데 제 각각의 시계를 차고, 제 각각의 ‘시간’ 그 ‘언제’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 ‘언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마다의 시간 속에 저마다의 시간을 산다면, 그건 저마다의 삶의 기준과 판단의 준거를 갖고 저마다의 하루 하루를 정하고 산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저마다의 기대와 예상을 통해 내일을 꿈꾸며 기다리지 않을까? 그럴 때 ‘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각자의 ‘언제’가 있고, 그래서 각자의 ‘어떻게’가 있고, 각자가 생각하는 ‘누구’가 또한 있고. 혹 내가 갖고 있는 시계가 고장 난 것이라면, 그게 멈춘 것도 모른다면, 슬쩍 옆 사람 것을 보지만 그것 역시 신뢰할 수 없는 시계라면,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언제’ 보다는 ‘누가’ 맞는 시계를 갖고 있고, ‘누가’ 맞는 시간을 알고 있는지 아는 것이, 그리고 그 ‘누구’를 ‘어떻게’ 기다릴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봄 밤도, 벚꽃 구경도, 불꽃 놀이도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계속 넋 놓고 있을 수도, 계속 서성거릴 수도 없다. 늦지 않게 ‘누가’ 그 ‘누구’ 인지 알고, 늦지 않게 그 ‘누구’를 ‘어떻게’ 잘 기다릴 수 있는지 알면 좋겠다. 


photo by noneunshinboo


풍경 3 

엄마와 아이 사이의 대화에 ‘언제’라는 질문은 늘 따라온다. “언제 해줄 건데, 언제 사줄 건데, 언제 갈 건데, 언제 올 건데, 언제. . . , 언제 . . .” ‘언제’는 늘 중요하다. 그러나 그 ‘언제’에만 목매고 있다 보면, ‘어떻게’ 와 ‘무엇’ 그리고 더 중요한 그 ‘누구’를 놓치기 십상이다. 아이에게는 설득이 어려운 대목이다.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라는 예전 핸드폰 광고 카피가 있었다. 잠시 우리 머리 속 버튼을 눌러 ‘언제’라는 기능을 오프시키면 어떨까 싶다. 어차피 그 ‘언제’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언제’를 알려는 일, 아는 일이 사실 너무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다고 뭐 달리 뾰족한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시계방의 시계

봄 밤 어느 것이

정말인가


봄 밤, 벚꽃놀이에 정신이 팔려 집에 갈 시간에 늦지 말아야할 텐데…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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